겸손과 노력은 인정을 끌어당긴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겸손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전하고 싶은 메시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겸손이다.
발췌독> 우리 몸은 필요한 것을 감각적으로 끌어 당긴다.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66p>
독창적주제> 겸손과 노력은 인정을 끌어당긴다.

전혀 연관성 없는 메시지와 책의 문장으로 하나의 핵심 주제 만들어보기.






어렸을 때 겸손은 나를 낮추는거로 배웠다.

조금 더 성장한 후에는 겸손은 나를 낮추는 게 아니고 남을 높이는 거로 배웠다.

겸손이 미덕인 세상.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나를 낮춰야 하는 건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남을 높여야하는 건지는 배우질 않았다. 그 탓에 누군가 나를 칭찬하면 숨기에 바빴다. 칭찬하면 광대가 핑크빛이 되면서도 늘 손사레치며 '아니야, 그렇지도 않아.', '아니에요. 천만에요.'가 먼저 나왔다. 간혹 칭찬을 그대로 받아들여 한 수 더 치고 나가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쳐 내며 '내가 쫌 그래.' 식으로 반응 하는 사람을 볼 때면 내 낯이 더 화끈거렸다. 그렇게 반응하는 건 겸손이 아니라는 생각 탓이었던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가 자기 잘났다고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어디서 부터 시작된건지 기억도 안나지만, 이게 정상적인 생각이라 느꼈다. 그저 잘 해도 못하는 척, 못 해도 못하는 척, 예뻐도 안 예쁜 척, 안 예뻐도 안 예쁜 척하는 게 미덕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칭찬은

늘 100퍼센트 흡수하질 못했다. 조금이라도 나를 내세우는 건 교만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성장해 중,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다른 사람을 높이는 게 겸손이라고 배웠다. 그 덕에 나는 착하다 못 해 칭찬러가 됐다. 안 좋아도 좋다. 싫어도 괜찮다. 안 멋져도 멋져. 원하지 않아도 그냥 상대방을 먼저 챙기고 배려했다. 배려와 겸손을 다른 의미인데 왜 그게 늘 붙어다녔는지 모르겠다. 나중엔 이 둘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예의 바르고 겸손한 사람으로 불렸다. 모범적이고 성실한 이미지까지 가져다 주었다.

언제 바뀌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 때와는 다르다.

아닌 걸 맞다고 이야기 하지 못 한다. 안 예쁜 건 안 예쁜거고, 잘 못한 건 못한거다.

그런 딱 한 가지는 그 때나 지금이나 같다. 늘 그렇지는 않지만, 종종 안 괜찮은 데 괜찮다고 한다.

첫째 별이를 낳고 약 10개월 정도 됐을 때 일이다. 이제 막 붙잡고 온 방을 걸어다니며 호기심 천국을 살던 어린 아이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면서 서랍장 모서리에 눈 밑을 찧었다. 빵 터진 울음소리와 함께 깊게 패인 살 속에서 핑크색 자국이 점점 빨갛게 변했다. 급하게 저녁 예배갈 채비를 하느라 주의깊게 별이를 보지 못한 자책감이 들었다. 가까 있는 사람이라곤 이웃집에 살던 사모님 뿐, 밖은 해가 이미 넘어가고 하늘은 회색 빛이었다. 그것도 추운 겨울, 이사한 지 두 달 채 안된 낯선 부산에서 아이를 안고 병원에 가야하는 마음은 착잡했다.저녁예배는 이미 못 갈것 같고, 별이 치료가 우선이었다. 병원에서 세 바늘을 꿰메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틀 뒤 교회에 가서 사람들을 만났는데 나에게 "괜찮아요?" 라고 건넨 말에 웃으면서 "네 괜찮아요." 라고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같은 연배의 다른 애기 엄마가 나에게 버럭 화를 냈다.


"안 괜찮잖아요? 왜 괜찮다고 해요? 안 괜찮으면 안 괜찮다고 해야지 사람들이 알아요. 왜 맨날 괜찮다고 해요?"


그 말을 들으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이제 치료했으니까 괜찮죠. 괜찮아요."

그리곤 잠시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아, 나 안 괜찮구나.' 그제야 내가 안 괜찮다고 말해야 되는 구나 알았다. 계속 그렇게 삶이 괜찮아도 괜찮고, 안 괜찮아도 안 괜찮은 채로 살아왔기 때문에 스스로 자각을 못했다.


"별이 엄마는 사람이 참 괜찮은데, 그럴 때는 안 괜찮다고 해야 되는거에요. 티 좀 내고 살아요."


아이도 같은 나이라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는데 그런 말을 내게 할 정도로 오래 된 사이는 아니었다. 이사하고 알고 지낸지 두 달 밖에 안됐으니까. 나를 완벽히 잘 모르는 사람이 나를 이 정도 파악했다니 좀 놀라웠는데 법대를 나와서 그런지 눈치도 빠른 건가 싶었다.

그저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거조차도 편치 않은 삶을 살아왔나보다.

그냥 그저 겸손이 미덕이고, 착해야 하고, 양보하고 배려하고,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 속에 박제되어 살아 온 기분이다. 싫은 티 내면 다른 사람이 싫어할 거 같고, 너무 좋아해도 호들갑 떠는 거고, 그냥 덤덤하게 좋아도 흥, 싫어도 흥, 하면서 살아 온 시간이 20년이 넘는다. 아주 어릴 땐 안 그랬으니까, 관계와 경험 속에서 만들어진거고, 때론 나 스스로 만들어 낸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무조건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관계를 맺다보면 좀 가까워지는 사람이 있다. 학교, 학원, 교회, 회사 이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자주 연락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록 가까워진다. 서로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주고 받고 힘이 되어 준다. 이렇게 관계가 가까워지면 쓴소리 하기는 참 쉽지 않은데, 서로의 발전을 위해 격려, 칭찬은 물론 아낌없는 쓴 소리도 하는 관계가 있다. 서로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다.



오전에는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영어 코칭하는 회원 중 한 명이 내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내용인즉,


"코치님 영어 소리 너무 멋져요. 영어 발음이 전문 아나운서 같고, 원어민보다 더 아나운서 같고, 전문 성우 발음 같아요. 더 명확하고 깨끗하다고 느껴져요. 발음기호를 완벽 숙지하셔서 그럴까요? 코치님 코칭은 진짜 너무 좋아요. 예전에 닮고 싶은 사람 롤 모델 삼아 연습해보라고 했을 때 그런 사람 없었는데, 이제부터 코치님이 제 롤 모델이십니다. 최대한 코치님 닮도록 노력해봐야겠어요."


와, 최고의 칭찬이었다.

설령 다른 사람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지라도 이 말을 듣고는 어깨뽕 상승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덜컥 겁이 났다. 이건 좀 오바인듯 싶고 괜히 나 따라하다가 나처럼 굳어지는 거 아닐까 생각했다. 여전히 하루 1시간 씩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훈련 한다. 그래도 나는 내소리가 200퍼센트 맘에 들지 않는다. 소리도 바꾸고 싶고, 영어 규칙에 의해 내는 소리를 더 부드럽게 만들고 싶은 탓이다. 그러니 나를 따라하겠다는 회원의 말에 덜컥 겁이나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런 과찬을요. 저는 코치니까요. 롤 모델은 원어민 삼으셔야죠! 우리는 우리 목표를 향해 열심히 뜁니다. 그날까지 버티지 말고 즐겨보아요! "


최근 코치들도 주기적으로 보는 역량 시험을 보고 통과 했지만, 약간 미흡한 부분이 있어 석연치 않는 상태였다. 회원의 반응을 보며 뿌듯했다. 내게 칭찬과 격려가 필요한 시기였구나 생각했다. 종종 여러 회원이 감사와 감탄을 보내지만 그저 그냥 내가 먼저 선 사람이니까 받는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는 내가 할 일은 연습과 연구다. 어떻게 하면 더 이 회원을 잘 이끌 수 있을지, 더 소리를 발전 시킬 수 있을 지 말이다.

노력은 당시에는 반짝이지 않는다.

꾸준한 노력은 시간이 지나면 빛을 발하게 되어 있다. 영어 코치로서도 맡은 바 임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글쓰기 코치로서도 발전하기 위해 글 쓴다. 오늘은 약간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글이 흘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억지로 연결고리를 찾는 훈련을 해보기 위해 생각하고 고민하며 쓰다보니 자정이 훌쩍 넘었다.




사람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자신은 모릅니다.
알고 있었다고 믿었는데 모르고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런데 모르고 있다고 믿었는데 실은 알고 있는 것도 있거든요.
이 영역이 제가 글을 쓰는 장소라고 생각해요.
- 후루이 요시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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