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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y 28. 2023

고치고 정리할 수 있어 좋다

글쓰기도 삶도




뭐든 마음먹으면 바로 시작해야 속이 후련합니다. 

특히, 밀린 집안일이 그렇죠. 계속 아이들 장에 쌓여 뒤죽박죽 이 모양 저 모양 뒤집어진 옷을 보면 늘 가슴 한쪽이 답답합니다. 오늘은 꼭 정리해야지! 생각하고 다른 일에 밀려 뒷전이 됩니다. 그래도 계절에 한 번은 꼭 장을 정리합니다. 작아진 옷을 뺍니다. 입지 않는 옷도 정리합니다. 반팔, 반바지, 긴팔, 긴바지, 내복, 속옷, 양말 각각 꺼내 입기 쉽게 정리합니다. 늘 그렇듯 정리하고 난 후 서랍이나 장롱문을 열면 후련한 마음에 광대가 절로 올라갑니다. 두 남자 녀석은 말 그대로 옷을 '휘딱' 벗어 놓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내가 저 방을 어떻게 한 번 뒤집지!'라는 생각은 실상 매 주 합니다.  


오늘 시간이 남아서 정리하려던 게 아닌데, 외출하고 돌아와 불현듯 '오늘이야! 지금이지!'라는 마음으로 방을 들어가 봤습니다. 난장판이 따로 없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책, 여기저기 윷가락처럼 서로 기대어 엎어진 연필과 필기류, 옷과 장난감은 왜 책상에 올라가 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바닥은 어떻고요. 징검다리 건너 다녀야 할 판입니다. 옷이며 장난감이며 여기저기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급기야 발로 장난감 통을 밀고 들어가게 됩니다.


"하이고......"


깊은 한숨과 함께 이미 옷을 다 꺼내야겠다는 굳은 의지로 손을 뻗칩니다. 앉을자리도 없어 옷을 엉덩이로 밀면서 앉습니다. 이미 엎어놨으니 이제 시작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망설이기보다 그냥 질러버리는 게 때론 도움이 됩니다. 엎어진 물을 얼른 닦아야 하기 마련이니까요.


어린이집 근무 시절, 교구 배치를 분기별로 바꿨습니다. 매일 똑같은 위치와 구조로 지내다 보면 아이들에게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집안 가구도 그렇죠. 일상의 생기를 불어넣는 한 방편으로 물건을 새 걸로 바꾸지 않고 새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이 가구 재배치입니다. 어린이집에서도 집에서도 저는 1년에 1-2회는 꼭 가구를 재배치합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이 성격 머리 때문에 신혼 초 남편은 종종 당황을 했습니다. 키도 쬐만한 게 가구를 옮긴다며 낑낑거리면 측은하게 와서 '이 오빠가 도와줄게' 라며 도와줍니다. (참고로 저는 절대, 남편은 오빠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단 한 번도 오빠라고 부른 적이 없죠. ) 지금이야 14년 살아왔으니 익숙해져 제가 일을 벌이면 와서 한 번은 거들떠봅니다. '또 시작했구나'의 눈빛으로요. 뭐, 요청하면 도와주기도 하는데 굳이 본인의 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묻지도 않습니다. 그저 한번 거들떠본 걸로 만족해야죠.


그렇게 마음먹으면 일을 해치워야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입니다. 이제 점점 더 추워지는 날씨에 겨울 옷을 정리해야만 했거든요. 옷 정리에는 빠질 수 없는 단계가 있습니다.


"요엘아 일루 와 봐! 이거 입어봐 맞나 보게. 작아? 작으면 벗고, 저기 내놔야지."


분류 과정이죠. 오늘도 어김없이 요엘과 다엘은 모델이 되었습니다. 조금은 귀찮아하면서도 입어 줍니다. 어쩌면 작은 옷을 내놔야 새 옷이 또 생길 거라는 기대감이 있을까 싶은 순간입니다. 무튼, 옷을 절반은 걸러냈습니다. 옷장이 단출해졌어요. 목적 달성입니다.


"에휴, 옷이 또 작아졌네. 이건 안 되겠다. 벗자!"라고 하니, 8세 요엘이 제가 그럽니다.


"엄마! 엄마는 그것도 몰라요? 옷이 어떻게 작아져! 내가 큰 거지!"


백번 맞는 말이죠. 순간 띵 했습니다. 쬐만한 녀석이 똘똘한 말을 던집니다. 요즘 예비작가들의 글을 읽고 첨삭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고쳐 쓰고, 공저 원고를 퇴고하면서도 또 글을 고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 실수한 걸 꼬맹이가 고쳐줍니다. 허허 웃음이 났습니다.  


"그래그래, 네 말이 백번 맞다. 꼬맹이, 훌륭한데?"


작가가 되고 보니 문법에 예민해지고, 주어 서술 관계를 유심히 봅니다. 가끔 남편이 주어를 빼고 말할 때면 심지어 짜증도 확 올라옵니다.


"그러니까, 누구 말하는 건데? 주어가 없잖아. 주어가, 알아듣게 정확히 좀 말해줄래."


18번 대사입니다. 뜬금이 동사부터 말하고 마치 내가 지금 누구 말하는지 맞춰보라는 식의 말을 할 때다마 약간의 곤두선 말투로 대하지만, 또 사납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싸나운 여자는 아닙니다. 직업병이라고 할까요. 이제 직업병이 생기는 타이밍이 됐나 봅니다. 제가 쓴 글에서도 오타가 수 없이 나옵니다. 초고는 원래 그런 거죠. 브런치 스토리나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고 발행할 때도 꼭 맞춤법 검사를 합니다. 그런데 원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제 원고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안 보이는 부분은 프로그램이 찾아줍니다.

더 아이러니한 건 이 기계도 종종 틀리게 잡아내서 발행하고 나면 또 오타가 보이는 날도 많습니다. 그럼 발행 후 시간이 지나 꼭 다시 읽어보고 수정하곤 합니다. 완벽하면 좋겠지만, 완벽하긴 쉽지 않습니다.


오늘은 미뤄뒀던 옷장 정리도 했고, 막내 요엘이 덕에 정신머리 정리도 했습니다. 그리고, 글도 고쳤지요. 이 글을 발행하고 나면 또 어딘가 오타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인생도 그러니까요. 우리 인생도 어디 틀리지 않고 똑바로 만 살 수 있겠습니까, 어찌 늘 완벽하게 살 수 있을까요. 인생을 다시 되돌려 다시 살 수는 없지만, 잘 못 된 건 바로 잡으면 되고  실수한 건 다음에 조심하면 됩니다. 너무 완벽해도 인간미 없잖아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글을 쓸 수 있고, 정체성을 가지고 살 수 있고, 일상에서 실수에도 허탈하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그렇게 살다 보니 밤 12시가 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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