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y 31. 2023

책 이야기

읽고 쓰고 말하고 



혓바늘이 돋았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하루 중에 여유 부릴 시간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럼 난 더 바쁘게 살아야 할까? 잠깐의 여유도 없이 살면 아마도 뭐든 금방 포기하게 될 거 같다. 숨통은 트여야지. 

숨통 트는 시간에도 뭐라도 한다. 타고났다. 


어제는 한국 휴일이라 영어코칭도 없고 시간이 평소보다 남아서 그 시간에 독서를 실컷 해보겠다며 태세를 갖췄다. 늘 틈새 독서를 하는 탓에 진득하게 앉아서 책 볼 시간이 없다. 차 안 혹은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올 기다리면서 독서를 한다. 아무래도 새벽 시간을 써야겠는데, 저녁에 12시 넘어서 자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6시 30분이다. 한 시간을 당기기가 쉽지가 않다. 어제는 독서한다며 온몸을 무장했다. 책상에서 벗어나 소파에 앉았다. 같은 집 안이어도 장소만 바꿔도 기분이 전환된다. 

예를 들면 책상에서 글 쓰다 노트북을 들고 거실로 간다던지, 패드 들고 책을 읽다가 소파로 간다던지이다. 실내가 무척 추워서 곰처럼 무장을 했다. 털 수면 잠옷을 입고, 도톰하고 복슬복슬한 털의  수면 양말을 신는다. 그리고 그 위에 또 수면 가운을 입는다. 이렇게 입으면 오래 앉아서 글 쓰고 책 읽어도 추운지 잘 모른다. 혹시 또 추울까 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옆에 가져다 놓고, 곰돌이가 그려진 베이지색 포실한 담요를 무릎에 덮는다. 이제 패드의 밀리의 서재를 열어 책을 읽는다. 

책을 읽겠다고 이렇게 구색을 잡아 앉아 본지는 꽤 오랜만이다. 시간적 여유. 가 주는 마음의 여유였다.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일부러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해 볼 수 없을 일이라 일부러 자리를 만든 것도 있다. 너무 둔하고 따뜻해서 책 읽다 10분 졸은 건 안 비밀이다. 


엄마가 그렇게 자리를 잡으니 막내 요엘은 왼쪽 와서 앉아 책을 소리 내서 읽고, 다엘은 오른쪽 대각선으로 앉아 윔피키드를 꺼내 읽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이라며 반복해서 읽는다. 조용히 읽기는 틀렸다. 그냥 소음 속에서도 집중하는 게 익숙하지만 고요한 순간을 누려보렸더니 틀려먹었다. 그래도 좋다. 아이들이 엄마 옆에 와서 같이 발을 비집고 담요에 찔러 넣고, 한 공간에서 있는 게 좋은가 보다. 너희가 좋으니 나도 좋다. 


그러다 이야기가 나왔다. 


"다엘, 요엘아, 엄마는 어렸을 때 책을 정말 안 읽었거든? 삼촌은 별명이 책벌레였는데 엄마는 친구들이랑 나가서 노는 게 더 좋았어. 동네 친구가 많았거든, 엄마는 만화책도 잘 안 봤어. 그래서 정말 후회가 많이 돼. 너희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 두면 좋은 점이 많아. 티브이보다 책이 더 좋은 거야. 엄마가 유명한 사람을 직접 가서 만날 수 없는데, 책을 읽으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어서 너무 좋더라고, 그래서 엄마는 어른 돼서 책을 열심히 있는 거야. 엄마는 더 똑똑해지고 싶거든. " 


다엘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나를 부른다.  


"엄마, 그러면 책 많이 읽으면 공부 잘 해져요?" 


"그럼 책을 많이 읽다 보면 내용도 잘 파악하게 되고, 그렇게 이해도 되고 요약도 잘하면 학교에서 나오는 문제도 금방 이해가 되겠지? 그럼 나중에 힘들게 공부하지 않아도 너는 책 열심히 읽고 내용 정리만 했는데도 저절로 공부를 잘하게 되겠지? 그냥 책을 많이 읽어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정보를 읽고 글을 읽으면 생각하게 되거든, 궁금증도 생기고 그 과정이 중요하지. 그럼 세상 살면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될 때마다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된다."  


여기가 모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대략 이런 내용의 대화였다. 약간의 잔소리 같지만, 잔소리만은 아닌 사실을 이야기했다. 독서의 중요성말이다. 그렇게 얘기한 후 다엘이 내게 물었다. 


"그럼 엄마는 공부를 못했어서 지금 이렇게 바쁘게 사는 거예요?" 


왜 이야기가 그리로 샜을까,  순간 웃음 터져서 한참을 웃었다. 

아니, 엄마는 공부를 잘 못하지 않았...... 

더 말하지 않았다. 




요즘 우리 집의 가장 큰 이슈는 유튜브 보지 않고 게임하지 않기다. 그랬더니 엘 형제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줄곧 육아를 해오면서 티브이를 없앤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티브이가 없으니 처음에는 아이들이 어떻게 할 줄을 모르더니, 며칠 지나니까 없으면 놀이를 만들어했다. 책을 봤다. 밖에 나가 놀았다. 가지고 놀다가 처박아둔 놀잇감들을 다 꺼내서 놀았다. 그런 걸 보면 다른 집 애들 다하는 게임기 없어서 안타깝다며 사준 내가 잘못이 크다. 그것도 어렵게 한국에서 공수해서 들오는 사람 편에 받아 크리스마스 선물로 떡 하지 안겨줬다. 그 게임기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실랑이를 하게 됐다. 책을 읽으라는 말이 잔소리로 들리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첫째 별이는 책도 좋아하고 알아서 할 일도 다 하기에 잔소리를 안 하는데, 엘 형제는 쓴소리 하게 된다. 내 탓이다.   


아이들 눈에는 엄마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이나 보다. 한국 시간에 맞추어 낮 시간에 호닥거리며 줌 미팅 시간을 맞추고 매일 책상에 앉아서 쓰고, 읽고, 말하고 살고 있으니 그 모습만 봐도 이제는 알아서 문을 닫고 나간다. 그렇다고 매번 미안하지는 않다. 나는 나대로 열심히 살면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도 채워주려고 하기에 방관하지 않는다. 다만, 본인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넓혀주고 터치하지 않는다. 정말 필요한 부분만 참견한다. 바쁘지만 매일 열심히 사는 엄마의 모습이 좋은 자극제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같이 읽고 같이 써 보려 한다. 말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면 된다. 

작가의 이전글 초등생 딸의 연어덮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