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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y 09. 2023

초등생 딸의 연어덮밥

부족해도 그럴 땐 고맙다로 끝내




어버이날입니다. 6년 전부터는 매년 어버이날은 전화와 선물 배달 혹은 현금 이체로 퉁 칩니다.

양가 부모님께 늘 죄송스럽습니다.


어버이날이 되면 삼 남매는 호들갑스럽게 엄마 아빠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합니다. 남아공에는 어버이날은 없지만 Mother's day와 Father's day가 있습니다. 두 남자 녀석은 특별히 뭘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자생적으로는 잘 못합니다. 그런데 딸은 달라요. 더 어렸을 때부터 엄마아빠를 위해 늘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했습니다. 이게 딸 키우는 맛 아니겠습니까!

가끔은 뭔가를 너무 해주고 싶은데 자기는 돈이 없어서 다 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럴 때마다 안 해줘도 된다며 워워 시키면서 달래는 날도 있습니다.


올해로 14세가 된 첫째 별이는 한 때 꿈이 파티시에였습니다. 지금은 살짝 고민하는 중인데 여전히 요리는 좋아합니다. 베이킹과 요리를 유튜브로 배우고, 엄마 옆에서 서당개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가끔 깜짝 놀라는 날도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 빵을 만들고, 쿠키를 만들어 내놨을 때는 스스로 엄마 아빠를 위해 무언가를 자기가 만들었다는 자체에 무척 뿌듯해했습니다. 본인 스스로 더욱이요. 저도 놀랍고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 유치원에 다녀오면 집에 예쁜 쓰레기를 많이 가지고 왔습니다. 그걸 버릴 수도 없고 소장할 수도 없고 고민을 하며 잘 모셔놨다가 한 번에 안 볼 때 버릴 때도 있었습니다. 개 중에는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는 편지도 있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해서 이것저것 다 해주고 싶은 것처럼 아이도 그런가 봅니다. 그렇게 부모에게 자연스럽게 배워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본능인 듯합니다. 아무튼, 별이는 그게 강한 아이입니다. 덕분에 앞으로 더 많이 얻어먹을 일만 남은 듯합니다.


며칠 전부터 어버이날 선물로 코스요리를 해주겠다며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연어로 요리를 해주겠다면서요. 사실 이렇게 호들갑스럽게 준비하며 마트를 가자고 할 때 저는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태연하게 준비물 살 수 있게 도와주고, "기대할게!" 한마디만 던집니다. 별이가 커 갈수록 실력도 수준급이 되어갑니다.


학교 끝나고 바로 마트로 갔습니다. 연어가 필요하다기에 사줘서 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옷 갈아입고 부리나케 주방으로 갑니다. 달그락 거리며 냄새를 풍기고 바쁘게 움직입니다.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데 급하게 불러 내려가보니 요리가 한창입니다. 코스요리여서 대기를 하고 있어야 된다더군요.




오늘 요리는 비스킷과 치즈 애피타이저로 시작했습니다. 본 요리가 나오기 전에 앉아서 먹고 있으라며 테이블 세팅도 해줍니다. 아직 열네 살 밖에 안된 초등학생이 키는 저만합니다.  머지않아 우리 집에서 제가 제일 작아질 겁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본 요리가 나오기 전까지 열심히 비스킷에 코티지치즈를 발라서 먹었습니다. 점심을 늦게 먹어 배가 안 고픈 상황이었는데, 그냥 먹었습니다.

본 요리는 연어구이 덮밥이었죠. 비주얼이 그럴싸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소스도 직접 만들었고, 연어도 프라이팬에 구웠습니다. 30분 전에 제가 해둔 밥이 흑미 밥이라서 흰밥이 필요하다며 밥도 직접 냄비에 했습니다. 한 숟가락 입에 넣고 깜짝 놀랐습니다.

고급 레스토랑에 온 줄 알았습니다. 남편과 둘이 칭찬일색하며 시끄럽게 떠들어대니 별이 얼굴이 웃음이 번집니다.

"정말요? 맛있어요? 정말요?"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정말요'를 몇 번했는지 모릅니다.


음식을 먹다 보니 밥 알이 설익었습니다. 청경채가 없어서 대신 산 브로콜리와 컬리플라워를 자르지 않아 너무 커서 베어 먹기 힘들었습니다. 이미 점심을 늦게 먹어 배도 약간 부른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남편이 산통을 깹니다.


"별아, 밥이 안 익었네! 여기는 한라산 정도 되는 정도로 지대가 높아서 산에서 밥 한다고 생각하고 해야 밥이 잘 익어!"


제가 툭툭 다리를 치면서 조용히 하고 그냥 먹으라고 했습니다.

아차 싶었는지 남편도 그냥 조용히 맛있다며 먹습니다. 그런데 또 계속 구시렁거리면서 밥은 설익어서 다 못 먹겠다고 하죠. 결국 저도 남편도 밥만 절반 정도 남겼습니다. 너무 배가 불러서 못 먹겠다고요.

별이는 가장 공들인 연어와 야채를 다 먹었으니 괜찮다며 기분 좋게 웃어 보입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입니다.


"담 번에는 밥도 잘해볼게요!"


순간 콧등이 짠해졌습니다. 산통 깬 남편 주둥이를 꽉 잡아주고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눈치 없게!


후식은 아이스크림이었는데 그 사이 두 남자 녀석이 먹어버린 걸 몰랐나 봅니다. 아이스크림이 없어서 한국 초코파이와 약과로 대신했습니다. 여기선 초코파이 약과도 비쌉니다. 며칠 전에 어린이날 행사로 할인을 해서 사 왔습니다. 마침 대체할 후식이 있다고 좋아했죠.갑자기 나가버린 전기로 캄캄한 어둠 속에 렌턴을 켜고 저녁식사를 마쳤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도시락 싸서 친구들도 가져다주고, 소풍 갈 때도 쌌던 기억이 납니다. 그 어렸을 때는 중학생 즈음이었던 것 같네요. 어른이 되고 보니 어렸을 때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나는 언제 엄마 아빠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드렸나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엄마 아빠를 위해서 빵이나 간단한 간식은 몇 번 만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기억에 남는 건 결혼한 첫 해 아빠 생신상을 상다리 휘어지게 차렸던 기억입니다. 엄마 아빠가 당시 깜짝 놀라셨죠. 집에서 하나도 안 해서 못하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요리를 할 줄 알았냐고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제가 제대로 차려드렸던 첫 밥상이었던 듯합니다. 글 쓰면서 몹시 죄송스러워집니다. 물론 그 이후로는 자주 해드렸지만, 그전에는 학교, 친구, 교회, 회사 등 내 일로 바빠서 부모님들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나 봅니다. 더 세세히 들여다보면 제가 철이 없었구나란 생각도 들고요.  멀리 떨어져 와서 살고 있으니 있을 때 잘하라는 말도 더 와닿습니다. 불효하는 것 같아 매 기념일마다 죄송스럽기도 하고요.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게 효도겠죠. 별이가 저보다 낫습니다. 고마운 마음이 가득 들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늘 이런 딸 하나 더 있었으면 더 행복하지 않았겠냐 말하는 남편은 막내도 딸이었어야 한다고 합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말이죠.  그냥 이대로 저는 족합니다. 공장 문은 닫은 지 오래입니다.

글 쓰다 보니 그렇게 잘하는 딸 칭찬이나 가득해줄 것이지 속 없는 말 한 남편이 얄미워지네요.

아까 못 잡았는데 옆에서 코 골며 곯아떨어진 주둥이랑 코를 꽉 한번 잡아 볼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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