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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n 01. 2023

쌀국수, 월남쌈과 아무 말 대잔치

요리와 글쓰기



역시 추운 날에는 국물이 당긴다. 낮에 마트에 가서 쌀국수와 월남쌈 재료를 샀다. 전혀 생각 없이 두부랑 라면을 사러 갔는데, 매장에 진열된 물건을 보면서 '그래. 오늘은 너다!' 쿨하게 재료를 담았다. 한국에 갔을 때 먹고 안 먹었으니 6개월 만이다. 남아공에서 살면 못 먹는 음식이 많다. 못 사 먹는 대신 재료를 사다가 만들어 먹는다. 그 탓에 남편과 나는 중국집 주방장도 됐다가, 일식 조리사도 된다. 한식은 기본이고 분식집 아줌마도 된다. 오늘은 쌀국숫집 주방장이다. 그렇게라도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면 된다. 맛이고 비주얼이고 일단 차후 문제다. 구색을 맞추고 맛있다고 주문을 걸고 먹으면 된다. 때로는 말조차 떼지 못할 때도 있지만...... 남아공살이 6년 차 되니까 못하는 음식이 없다. ( 확인하고 싶으면 와서 직접 확인하시길! )


모처럼 특식을 먹는 아이들은 이미 냄새에 야단법석이다. 뭘 만드는지는 이미 벌려놓은 재료를 봐서 다 알고 그저 만들어지기만을 기다린다. 다행인 건 손이 빠른 덕에 아이들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원래 둘 중 하나만 하려고 했는데, 둘 다 먹고 싶어서 둘 다했다. 월남쌈도 쌀국수도, 다른 음식도 뭐든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이 최고라며 늘 식탁 앞에서는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 덕분에 요리할 맛 난다. 한 그릇 요리가 요리하기에도 설거지하기에도 좋아서 최근에는 비빔밥, 계란밥, 국에 밥, 볶음밥 등 대충 반찬 없이 한 그릇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밥을 많이 먹어서 특식 앞에서는 더 잘 먹는 것도 있다.


닭가슴살은 대충 잘라 간장, 미림, 설탕을 넣고 잘 볶아 주었다. 당근, 오이, 빨노초 파프리카는 세로로 먹기 좋게 듬성듬성 잘라 놓았다. 새싹 채소가 있어서 옆에 곁들여 놓았다. 한번 판 벌일 때보다 오늘은 가짓수가 조촐하지만 동그란 쌀피에 딱 들어갈 만큼이다. 알록달록하니 보암직도 하고 입에 한쌈 싸서 땅콩소스와 스위트칠리소스에 찍어먹으니 먹음직도 하다. 아이들도 좋아하는 메뉴다.  


쌀국수는 육수를 끓여 액젓으로 간을 맞추고 마법의 가루인 쇠고기 다시다를 조금 넣었다. 가능한 조미료를 안 쓰고 음식을 해왔는데 가끔 한국에서 파는 식당 맛을 느끼고 싶을 땐 쇠고기 다시다가 탁월한 감칠맛을 내준다. 쌀국수는 물에 20분 정도 불려뒀다가 끓는 물에 넣어서 우르를 끓여냈다. 차돌박이는 없어서 그냥 얇게 저민 소고기를 넣어서 한 솎음 더 끓였다. 숙주를 듬뿍 넣고 미리 절임 해둔 양파까지 얹었다. 남편 그릇에만 청양고추를 넣었다. 스리라차 소스와 굴소를 섞어 국수용 소스까지 만들어 한상을 완성했다.


웃음이 넘쳐흐르는 식탁이었다. 여기서 넘쳐흐른다는 말은 행복한 웃음만을 뜻하는 게 아니 기괴한 웃음까지 더해진 탓이다. 난데없이 <아무 말 잔치>를 하자는 별이 덕에 식탁에서 나는 못할 말을 하고 말았다.

 

<아무 말 대잔치> 게임은 요즘 예능프로에도 많이 나온단다. 제대로 본 적 없어 잘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판이 돌아가는 걸 보니 이해가 됐다. 별이와 남편이 게임을 시작했다.


별: "아빠! 아빠는 엄마가 좋아요. 우리가 좋아요?"


남편: "어 밖에! "


별: "나 내일 탕후루 만들건대, 냉장고에 딸기 있나."


남편: "걔는 머리털이 없는 거 같던데"


별: "아, 나 방학 때 어디 가까운 데로 놀러 가고 싶은데 빨리 시험이 끝나면 좋겠어. "


남편: "아까 요엘이가 방귀 뀌었잖아."


게임의 룰은 상대방과 전혀 대화하거나 말리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아무 말이나 이어가는 거다. 여기에 글로 옮겨 놓으니 썩 재미가 안 사는 것 같지만, 식탁에서 주고받는 둘의 표정과 말투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갑자기 박장대소하면서 말을 뱉었다. 그러자 다엘, 요엘, 별, 남편까지 모두 다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아, 진짜 또라이 같아."


사실, 이 말은 내가 자주 쓰는 최고의 귀여운 욕이다. 나는 욕을 딱 2가지 쓰는데, '미친 거 아니야?'와 '또라이' 다. 아이들도 남편도 이 정도 말은 귀엽게 받아쳐준다.


식탁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서로 실없는 소리를 해도 웃을 수 있는 게 가족이다. 쌀국수와 월남쌈을 먹다 보니 예전에 먹었던 음식 이야기가 주르르 쏟아진다. 음식을 앞에 두고 실없는 소리를 해도 맛있는 식탁에서 곁들여진 이야기가 웃음꽃을 피웠다. 웃었다가 인상도 찌푸렸다가 서로의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했다가 말이다.  




나는 요리 시험을 봐야 하는 수강생도 아니고 주부다.  요리를 할 때 자로 잰 듯 3색 파프리카는 길이 3센티미터로 맞출 필요가 없다. 닭가슴살을 폭 1센티미터, 세로 3센티 미터로 자로 잰 듯 똑같이 자르지 않는다. 오늘 지단을 안 했지만 달걀지단을 부쳐 폭과 길이를 똑같이 맞추어 자를 필요가 없다. 그저 그냥 먹기 좋고 보기 좋게 균일하지 않지만 비슷하게 썰어서 접시에 가지런히 올리기만 하면 된다. 내가 만든 음식을 내놓을 때면 가족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궁금하다. 이왕이면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주부 14년 차가 되니 먹기 싫다는 거 억지로 안 먹이고, 더 먹고 싶다고 할 때는 기꺼이 더 준다. 그래도 먹기 싫다고 할 때 속이 안 좋거나 배가 불러 못 먹는 경우가 아니라면 기분은 상하기 마련이다. 초보 주부일 때는 음식 할 때 가능한 예쁘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그렇게 모양을 내도 보기에는 좋지만 음식 맛에는 그다지 큰 영향이 없었다. 오히려 막 대충 한 날 음식 맛이 따봉이라며 대체 뭘 넣었냐고 묻는 날도 있었다.



글을 쓸 때도 똑같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초보 작가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 지금 보다 더 왕초보 작가 시절에는 가능한 잘 쓰려고 애를 무척 썼다. 시간을 질질 끌었다. 더 좋은 아이디어, 더 깊은 이야기, 더 진한 감동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재밌는 건 잘 써보려고 용을 쓰든 그냥 있는 내용을 일단 쭉 써 내려가든 별로 차이가 없었다는 거였다. 이왕이면 잘하면 좋겠지만 그게 내가 애를 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같은 재료로 음식을 해도 어떤 날은 좀 더 맛있고, 어떤 날은 좀 맛이 덜난 날이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너무 자로 잰 듯 따박따박 글을 써 내려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여기엔 뭘 쓰고, 저기엔 뭘 쓰고 머리 아프게 재면서 쓰지 않아도 된다. 어떤 날은 생각이 잘 풀어져서 쭉 써지는 날이 있고, 어떤 날은 적어놨다 저장해서 닫았다가 다시 열기를 반복하는 날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으니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쓰면 된다. 내가 쓴 글을 독자가 어떻게 읽든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그저 내가 경험한 일 혹은 생각을 누군가에게 편안하게 이야기하듯 써 내려가면 된다. 어떤 날은 내 글이 어떻다 저떻다 말하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날은 공감이 됐다며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위로가 됐다며 고맙다고 하고, 에피소드에 함께 웃는 날도 있다. 내 글을 읽는 건 독자 몫이다. 이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손님에게 대접하듯, 좋은 글을 독자에게 내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다. 하지만, 너무 부담을 가지고 음식 하는 날에는 꼭 음식이 망한다. 평소 잘하던 음식도 중요한 손님맞이용으로 하는 날에는 문제가 하나씩 생기곤 했다. 글도 특별하려고 하지도 말고, 너무 과하게 꾸며서도 안된다. 그저 집안 일 하듯, 편안하게 집 밥 만들 듯이 써 내려가면 된다.    


글쓰기는 집안 일 하듯 쓰는 거다.

애써 과하게 꾸미지도 말고, 특별하게 보이려고 하지도 말자.

가끔 타박해도 있는 그대로의 내 솜씨를 좋아하는 가족들처럼,

내 글을 좋아해 주는 독자도 있다는 걸 기억하자.

남들이 뭐라고 한다고 주눅 들지 말고, 그냥 나는 내 이야기를 쓰면 된다.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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