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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l 18. 2021

쫄보가 백신을맞이하는 자세.

코로나 백신 맞고 죽으면 어쩌지?


삐! 삐!

하루에도 몇 번씩 체온계를 이마며, 목이며, 손목이며 가져다 대고 체온을 체크하는 남편이다. 46세면 아직 청춘인데도, 이비인후과 쪽 잔병이 많아서인지 늘 건강 염려증을 달고 산다.


"내가 먼저 가면......"


말인지 방귀인지, 인생 반백년도 안 산 주제에 가끔 이런 말을 농담인 양 건넨다. 지난 금요일, 가까운 코로나 백신 예방접종 지정 장소를 찾아가면 예약을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대기시간이 다소 오래 걸릴 수는 있겠지만, 가능하다고 했다.


"자, 엄마 아빠 뽀뽀! 포옹하고~!! "


백신 접종하면 한동안 조심해야 하기에 아이들과 신체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나니, 유난을 부리는 남편을 따라 아이들도 긴장 모드다.


"엄마!! 나랑 뽀뽀하고 가야지~!!"


막내 엘이는 그냥 문을 닫고 나가는 나에게 달려와서 스위트 한 뽀뽀를 날린다. 남편에게도 잘 안 부리는 애교를 막내에게 부린다. 우리 집에서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남자다. (남편 미안)

오전 10시쯤 집에서 나서 찾아간 3곳에선 모두 퇴짜를 맞았다. 하루 지정 분량이 벌써 다 소진되었다는 것이다. 월요일 아침에 오라는 말을 듣고 오늘은 틀렸구나 싶어 그만 돌아다니기로 했다.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백신을 못 맞고 온 덕에 주말 내내 경계 없이 편안하게 지냈다. 집에 온 뒤로 남편은 주변 지인들과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저는 6시간 걸려서 맞고 왔어요. 와... 첫날 너무 무리해서 그런지, 죽는 줄 알았네요. 첫째 날은 두통이 심하더니 둘째 날은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었어요. 하루 끙끙 알고 나니 오늘은 좀 살 것 같네요! 뭐 이거 할만해요. 하하하"


며칠 전 예방접종을 하고 온 지인은 죽을 것 같았던 고비를 넘기고 나니 할만하다고 말했다. 남편은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리가 자주 쓰는 비밀번호는? 내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는 OOOOOOOOO이야."


"갑자기 그건 왜?"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 <<힘 빼고 육아>>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날린다. 뭔가 냄새가 스멀스멀 난다. 혹시나 백신 맞고 무슨 일 있을까 봐 걱정이 됐나 보다. 갑자기 졸린다며 침대행이다. 백신 맞기 전에 컨디션을 잘 만들어둬야 된다며 어제저녁은 일찍 잤고, 오늘 아침에는 늦게 일어났다. 낮잠도 잘 모양인가 보다. 올 초 남편도 나도 코로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아팠던 것 중에 손에 꼽힐 정도로 많이 아팠다. 그때 느껴본 두통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두통이었다. 열이 나진 않았지만, 우리의 짐작대로 라면 아무래도 코로나는 한번 다녀간 것 같다. 그러나 저러나, 백신 맞고 또 아플까 봐 걱정인 거다. 그에 비하면 나는 덤덤한데 내가 겁이 없는 걸까 남편이 겁이 많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지인의 사촌이 어제 저녁 코로나에 걸려 고열이 났고, 응급차를 불러서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했다. 이쯤 되면 쫄보의 심장이 더 쪼그라들었지 싶다.


최근 양가 외할머니도 코로나로 인해서 돌아가셨고, 주변에서도 코로나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 소식을 꽤 들었다. 아무 증상 없이 걸렸다가 회복되었다는 사람도 있었고, 감기 증상으로 양성 판정을 받았다가 두통약만 먹고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아, 뒷목도 뻐근한 거 같고, 감기 기운 있는 것 같은데."


삐! 삐!  2시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목, 이마, 손목 등을 돌려가면서 같은 소리를 몇 번이고 울려댄다. 그러더니 주방으로 가서 귤 하나를 들고 걸어오면서 예쁘게도 깐다. 알맹이 하나 전체가 입안으로 쏙 들어간다. 내일 아침 일찍 나서야 할 것 같다. 남편은 오늘 밤에도 일찍 자려고 준비를 하고, 예방접종하고 나면 샤워를 못할 테니 미리 샤워도 할 거다. 이렇게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인지 12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처음 알았다.


코로나 백신 접종을 준비하는 자세는 이렇다.

1. 좋은 컨디션 만들기

2. 충분한 수면을 취하기

3. 잘 먹고 잘 쉬기

4. 비타민 듬뿍 들어간 과일도 먹기


그리고,

아내에게 통장, 공인인증서 비밀번호 알려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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