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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n 08. 2023

잠시 100세가 되었다.

문제는 시간이 해결주지만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지난 주간 얼굴에 피부 트러블이 생겼다. 그냥 뾰루지 정도의 트러블이 아니다. 부었던 눈이 이제는 피부트러블로 이어져 이건 건선인지 아토피인지 습진인지 모르겠는 피부병이 생겼다. 이대로 쭉 회복되지 않으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심각하다. 벌겋던 피부는 이제 까끌까끌해졌다. 로션을 바르면 따가워서 못 견딜 정도다. 집에 있던 피부 연고를 찾아서 발랐다. 바르고 잔 다음 날, 피부는 쭈글쭈글 해졌고 눈뜨고 봐줄 수가 없었다.

마치 족히 100세는 되어야 생길 법한 주름 같았다. 논바닥 갈라지듯 갈라진 하얀 태, 주름 깊게 잡힌 피부, 벌겋게 달아 오른 피부 주변으로 보이는 기미 주근깨. 급기야 스트레스가 확 올라왔다.


"어... 어떻게 하지? 이거 돌아오는 거 맞겠지."


평소에 바쁘다고 잘 보지도 않는 거울을 하루 종일 10번은 족히 들여다본 듯하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하루, 이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도 않는다. 진짜 좋아지는 걸까, 고민이 깊어졌다. 내가 나이 들어 100세 할머니가 되면 이렇겠구나 싶었다. 세월의 흐름, 의학적인 기술을 빌리지 않는 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약해져 가는 모습은 받아들여야만 한다. 안다. 그러나 벌써 60년 후의 내 모습을 보고 온 듯한 느낌에 약간 충격을 먹었다.  


다음 날 아침, 급기야 허옇게 피부가 일어나 각질이 생겼다. 부기가 가라앉더니, 이제 벌겋게 테를 둘러 국소적인 이상이 눈에 띄었다. 마치 뜨거운 여름 바닷가에서 신나게 물놀이하고 나서 얻은 피부가 벗겨지는 현상과 같았다. 세수하고 로션 바르니 껍질이 로션의 결을 따라 벗겨져 나왔다. 허물 벗듯이.

순간, 아기 피부처럼 돌아갈 수 있는 자연박피이길 간절히 바랐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밀려난 피부 위에 물기가 마르기 전에 보습을 충분히 해줬다. 로션을 바를 때마다 따가워 폴짝 거리며 사방을 뛰어다녔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 진정되기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좋아지겠지. 회복되는 과정이려니, 생각했다. 내 바람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자 건조의 극치를 달렸다. 이러다 악건성 피부가 되는 건 아닌지,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내 얼굴인데, 신경이 쓰였다. 더 많은 각질이 일어나고 피부가 땅기기 시작했다. 당장 피부과로 뛰어가 시술이라도 받고 싶었다.  

결국, 화장품 샵에 가서 가장 순한 프리파라벤 토너와 로션을 사 왔다. 그리고 세수부터 한 뒤 조심스럽게 두드려 발랐다. 따가워 미칠 것 같은데 다른 방법이 없다. 비스테이로이드 연고를 얇게 펴 바르고 일단 진정을 시켰다.



햇볕이 뜨거운 남아공에 산 이후로는 기미 주근깨를 달고 산다. 그것만 없어도 거울 보는 게 신날 것만 같다. 그러나 현실은 아무리 선크림을 덕지덕지 쳐 발라도 기미 주근깨는 계속 늘어난다. 한숨도 같이 는다. 오ㅔ모지상주의적 시선이 어니다. 지극히 나 중심적 시선이닼 할 수 있는 건 기미 주근깨 방지 크림을 바르는 것뿐이다.   자기만 아는 세월, 이제 나만 느끼는 게 아닌가 보다. 남편이 요즘 동조 한다.


"너도 나이 드는구나. 피부가 에고…..“


틀린 말은 아닌데 기분이 썩 별로다. 그래도 현실을 직시해야지. 나이가 드는 건 나쁜 것만은 아닌데 얼굴에서 드러나는 세월은 늘 아쉽기만 하다.


나도 여자다. 패션 감각이 액세서리, 화장을 짙게 안 해도 좀 더 젊어 보이면 좋겠고, 좀 더 예쁘면 좋겠다. 주름도 기미 주근깨 걱정도 없는 피부이고 싶다. 다이어트 신경 안 쓰고도 적당히 먹고 가볍고 예쁜 라인이면 좋겠다. 삶을 날로 먹겠다는 마음은 아니지만, 여자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드라마틱한 기대는 포기한 지 오래다. 이제 세월이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자꾸 아래로 아래로 처지다 보니 양쪽 볼태기도 아래로 내려온다. 페이스 괄사로 부지런히 밀어 보겠다며 책상 옆에 뒀다. 소용이 없다. 한 시도 가만있을 수 없는 손은 두 개뿐이다. 설거지 청소 집안일 할 때는 물론이고 앉으면 글을 쓰니 얼굴에 손댈 겨를도 없다. 이 와중에 얼굴에는 자글자글한 피부질환 주름이 생겼으니 이제는 괄사고 기미 주근깨고 다 필요 없다. 그냥 당장 이 피부가 왜 이렇게 됐는지 궁금할 뿐이다. 어서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하루아침에 100세 할머니가 된 듯한 기분에 괜히 거울만 여러 번 들여다본다. 단지 국소적인 부위이지만 볼 전체를 덮을 것 같아 우울해진다. 피부를 늘였다 줄였다 손으로 별 짓을 다 해본다. 그런들 피부 재생이 하루아침에 안 될 거다.


이렇게 매일 얼굴에만 신경 쓰다가는 해야 할 일을 못할 것 같아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그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일단 취한다. 그리고 잠시 일하는 동안에는 잊어야만 한다. 아니 잊는다. 온갖 잡다한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니 정신이 없다. 이 문제에 집중하면 이 문제만 커 보이지만 다른 더 큰 문제를 하다 보면 그렇게 큰 문제도 아니다.


그렇게 5일 정도 흘렀나 보다. 제법 회복 중이다.


살다 보면 별일을 다 만난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시간이 필요한 일이 있다.  가능한 일은 노력해서 해결되면 하면 된다. 그러나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에는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면 된다. 그렇다고 한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맡겨야 한다.


결국, 문제를 대하는 태도다. 문제가 일어났다고 호들갑 떨거나, 지나치게 문제에 집중하며 하루 종일 문제에만 집중하면 점점 더 힘들어진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는 신경 쓰이고 아프기도 하지만 한 걸음 뒤에서 보면 조금 더 해결하기 가벼워지는 경우가 많다. 문제 안에 있을 때는 안 보였던 게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문제 앞에서 뒷걸음질 치라는 말은 아니다. 외면하거나 그냥 덮어버리면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이 안 된 채로 계속 곪아갈 수도 있을 거다.


피부 트러블로 인해서 잠시 요란 법석하게 병원도 다녀오고, 로션도 사바르고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여기까지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이 될거다. 이 경험으로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얼굴에 늘어나는 주름만큼, 내 인생의 경험이 하나 둘 늘어나고 세월이 쌓아주는 연륜에 만족하면서 살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이가 들어 패인 주름의 깊이만큼 나는 인성이나 지성이나 영성이나 개성까지 두루두루 깊을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필요한 조언과 사랑을 아끼지 않고 부어 줄 수 있는 연륜이 내게 있을까. 피부는 잠시 100세까지 갔다 온 기분이지만 아무리 짐작해보려고 해도 나의 100세 인성, 지성, 영성, 개성은 보이질 않는다.


글 쓰면서 계속 상상해 보지만, 40년을 넘게 살았어도 지레짐작 초자 할 수 없는 순간이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어떤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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