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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n 15. 2023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

프리지아 대신 하이페리쿰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꽃 10가지 >
데이지 칼라 릴리 연꽃 물망초 장미 카네이션 하이페리쿰 헤이즐 수선화 

그리고 프리지아. 

프리지아의 꽃말 :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 


누군가의 시작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면 노란 프리지아를 선물하라는 말이 있다. 




"무슨 꽃 좋아하세요? "


오래전 누가 나에게 물었다. 

당시 그냥 장미가 좋았는데, 나도 모르게 잘 알지도 못하는 꽃인데 "프리지아요" 하고 대답했다. 벌써 20년 전이다. 그 당시 무척 좋아하던 꽃이 아니었는데 프리지아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서로 어울리는 꽃 이야기 해줄까?"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에게 어울리는 꽃을 얘기해주자며 이야기가 나왔다. 이것도 오래전 일이다. 가끔 오랜 기억이 머릿속에 스치듯 떠오른다. 사물과 연결된 기억은 향수 뚜껑을 열듯 폴폴 기억난다. 사람의 기억력은 무섭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주선이는 프리지아! 프리지아 같아." 


이유는 뭐라고 이야기해 줬었는데 그냥 노란색이 나 같다는 말 밖에 기억이 안 난다. 그 뒤로 프리지아만 보면 나랑 닮은 꽃이라는 연결고리가 내게 생겼다. 기억에 없던 일이, 어제 남편이 선물한 한 결혼기념 꽃다발로 떠올랐다.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1주일 전 남편이 내게 물었다. 


"이 나라에도 프리지아 팔아?" 

'글쎄? 나 본 것도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 


기억이 날리 없다. 언제 봤는지, 어디 봤는지, 봤다 해도 그리 주의 깊게 본 적 없다 

뜬금없이 왜 물어보나 싶었는데 그냥 물어보는 일은 없는 남자다. 이미 14년간 파악 끝났다. 


결혼기념일이었던 어제 아침 지인이 장미 한 다발을 안겨 줄 때 남편은 "아 늦었다."라고 말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자기는 꽃은 이번에 안 사도 되겠어! 뭐 사모님 주신 걸로 됐지 뭐." 


진심이었는데 남편은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말한다. 


"나는 뭐 살지도 다 생각해 뒀다고!" 


뭔지 묻자 프리지아라고 했다. 


"내가 왜 프리지아 살려고 했는지 알아? 다 의미가 있어서 그렇지!" 


그리곤 오후까지 꽃에 대한 이야기는 안 했다. 장을 보면서 마트 2곳을 갔는데 남편은 가는 곳마다 꽃 코너 주변에 목을 빼고 샅샅이 훑어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일에 집중했다. 

그렇게 집에 가려는데 차를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더니 꽃 가게 하나를 찾았다. 꽃 가게에 간지 15분 만에 남편이 한아름 꽃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차로 걸어와 문을 열었다.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


남편이 내민 곳은 프리지아는 아니었다. 결혼기념일에 무슨 시작을 응원한다는 말인가 싶어 생뚱맞다고 여겼다. 결혼 14주년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내가 새로 시작한 라이팅 코치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남편의 마음이었다. 남편은 로맨틱하지 않은 듯 로맨틱한 구석이 있다. 


부부이든, 가족이든, 지인이든.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기억해 주고 축하하는 마음은 참 귀하다.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닌 진심을 담은 말은 표가 난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탓이다. 

남편은 나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다. 정확히 말하면 한 공간에서 꽤 오랜 시간을 같이 있는다. 그런데 각자의 시간을 따로 흘러간다. 서로의 일에 집중하느라 공간은 같이 있지만 시간은 다르다고나 할까, 


지난 14년간 가장 가까이에서 나의 아픔과 시련을 지켜봤고, 성장과 변화를 지켜본 사람이다. 위험하거나 험한 일 빼고는 단 한 번도 나에게 '그건 안돼. 하지 마'라는 말을 한 적 없다. 


그래? 원하면 해봐. 잘할 거야. 할 수 있어. 넌 대단해.


지지리 궁상 맘에 안 들어 코를 막 확 비틀어 버리고 싶은 날도 좀 있는데, 매일 현실과 이상 사이의 사투를 벌이는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사람이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찾다 결국 프리지아는 못 찾았지만, 같은 의미를 가진 하리페리쿰을 내게 내밀며 했던 남편의 응원에 찐하게 감동이 되는 날이었다. 


그래 뭐 사랑이, 부부가 다를 소냐. 

이런 게 사랑이고 부부가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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