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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l 09. 2023

타조를 쫓아내는 지혜

막대기를 두드려!






"엄마, 우리 달려야 될 거 같은데요?" 


"안돼. 우리가 뛰면 타조가 따라올지도 모르잖아. "


"다른 방향으로 뛰면 되죠. "


"일단 가만히 있어봐. 타조가 엄청 빠르거든 우리가 괜히 뛰다가 성질 건드리면 위험할 수도 있어. "



몇 주만에 간 하이킹. 

마지막 코스를 돌아 나오던 길에 타조 3마리가 길을 막았다. 이렇게 길을 막고 있던 때는 없었던 지라 순간 어떻게 해야 하나 몹시 망설였다. 나와 별, 엘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타조가 움직이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마침, 뒤에서 아이 셋 과 엄마로 보이는 백인 가족이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헬로! 하고 가볍게 인사를 마치고, 아이 엄마는 바로 숲으로 가서 긴 막대를 집었다. 순간 나는 저걸 들고 훠이 훠이 저리 가라고 휘두르려나 싶어 긴장했다. 막대는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였지만, 꽤 길고 두꺼웠다.

엄마 옆의 아이들은 자주 경험해 본 듯 긴장한 기색도 별로 없었다.  덩달아 다엘과 별은 손에 들고 있던 물병을 몽둥이처럼 치켜들었다. 


자주 가는 하이킹 코스라 타조를 여러 번 마주쳤었다. 그때마다 숲에 있거나 지나가길 기다렸다. 오늘처럼 타조가, 그것도 3마리가 동시에 길 한가운데를 막고 서 있던 때는 없었다. 적잖게 어리둥절하던 찰나였다. 


쿵! 쿵! 

아이 엄마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며 바닥을 막대로 내리 찧었다. 

그러자 타조 3마리가 각각 반응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두 마리는 오른쪽 숲으로 빠졌고, 한 마리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앞을 향해 걸었다. 길고 부러질 듯하게 얇은 다리로 깃털을 들썩이며 걷는 뒷 폼에 웃음이 절로 났다. 우아하다고 하기엔 조금 웃겼기 때문이다. 마치 마이콜이 목을 빼고 학 흉내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우리는 그 아이 엄마 뒤를 따라가면서 타조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아이 엄마가 몇 번 더 연달아 막대로 바닥을 찧자, 앞에 가던 타조 한 마리가 거의 줄행랑치듯 뛰어서 커브를 틀며 오른쪽 숲으로 가버렸다. 뒤에 있던 백인 아이 3명과 우리도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만화에 나오는 타조 캐릭터가 뛰는 모습이랑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만화를 만들 때 실제 모습을 본 따서 만들었겠구나 싶을 정도로 비슷했다. 


거의 1시간 반, 5.5km의 하이킹을 마치고 지쳐서 나오는 마지막 코스에서 한바탕 웃고 나니 다시 기운이 차려지는 것 같았다. 약 9 천보를 걷고 만보가 안 채워져 아쉬웠는데 웃음으로 만보를 채운 기분이었다. 




나 중,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회초리가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수학시간도 선생님도 무척 싫었는데, 수학 시험을 못 보면 사이코 같이 화를 내며 회초리를 내리쳤기 때문이다. 틀린 개수만큼 손바닥을 때렸고, 종아리를 때렸다. 급기야 막대로 여자아이들 치마를 들추며 수치스럽게 혼냈다. 중학교 수학선생도, 고등학교 수학선생도 사람은 같은데 야단치는 방식이 똑같았다. 당시 수학 선생님은 다 사이코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절대 수학 선생이랑은 만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한 번은 자기 분에 못 이겼는지 때리다 못해 발로 날아 차기를 해서 교실 구석에 내동댕이쳐진 친구도 있었다. 


느닷없이, 오늘 그 타조를 좇는 모습을 보면서 수학 선생이 생각났다. 선생'님'자는 빼고 싶다. 수학 교사가 사이코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사이코였다고 본다. 때리면 무서워서 잘할 거라 생각했을까, 혼내면 무서워서 열심히 할 거라 생각했을까. 그 당시에는 협박과 으름장이 교육에 한 몫한다고 잘 못 생각했던 세대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처벌받아 마땅한 행위였는데 말이다. 어쩌면, 그 선생도 어렸을 때 그렇게 자랐고 교육받았기에 으레 당연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계시려나. 제대로 살고 있으려나.


단지 타조를 좇는 모습을 봤을 뿐인데 아이의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경고가 필요할 때 바로 몽둥이를 들지 말고 신호만 줘도 동물도 알아듣는구나. 나는 몽둥이를 휘두르면 도망가겠구나를 먼저 생각했지만, 그 아이 엄마는 신호를 줬다. 어쩌면 몽둥이를 휘두르면 공격할 수도 있기에 지혜롭게 잘 대처란 거라 생각했다. 

사람과의 관계, 동물과의 관계에서도 연민과 존중이라는 게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났을 때, 혹은 길을 잘 못 가고 있거나 어떤 행동에 경고가 필요할 때 무작정 윽박지르고 세게 공격하며 나를 방어하기보다, 소통과 공감을 활용하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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