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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l 14. 2023

남아공 롤러장은 추억을 타고.

경험이 주는 기억. 




마음이 급해 헛발질이다. 넘어지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싶은 마음으로 바라본다. 양쪽 발 균현을 못 맞춘 채로 어기적 어기적 한 발이 딸려간다. 그래도 즐거우면 됐다. 


"여기 매일 올 수 있어요?" 

"어... 어... 그... 그건." 


에너자이저급 요엘은 에너지를 땀과 함께 머리로 발산 중이다. 뭐든 경험해 보고 재밌는 것, 먹어보고 맛있는 건 하고 싶다는 말 앞에 '매일'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요엘이다. 

처음 타보는 네 바퀴 롤러스케이트, 예상외로 즐거움에 푹 빠진 막내 요엘은 "또 오면 안 돼요?"를 2시간 동안 중간중간 10번은 말한 거 같다. 넘어져 다칠까 겁이 나 헬멧에 보호장구를 팔꿈치, 무릎 손목까지 다 착용했다. 안내 요원의 도움을 받아 무릎을 잡고 엉거주춤 걷는다. 다엘이도 제법 탄다.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2시간이 마감되어 갈 무렵 제법 속도가 났다. 셋 중 혼자만 인라인 경험도 있고, 아이스 스케이트 경험도 있는 별이는 시큰둥하다 "재미없어..." 이 말만 4번은 했다. (네가 친구들이랑 왔으면 달랐을 텐데.)

그렇다고 아주 잘 타는 것도 아닌데 재미가 없다는 별이에게 새로운 방법으로 타보라고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해 줬다. 유튜브를 보고 팁을 얻어 다시 장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 방학이다. 거의 한 달가량되는 이번 겨울 방학에는 놀러 가지고 못하고 거의 집콕이다. 남아공의 겨울은 0도까지 내려가는데, 눈은 안 온다.  며칠 전 눈 내린 지역이 있어서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눈을 들고 인증 사진 찍은 지인도 있었다. 뉴스에는 하늘에서 내리고 있는 눈이 보도 됐다. 바닥에 제법 쌓인 눈과 함께. 

기상 이변인데 한쪽에서는 이제 남아공도 눈이 내려 눈을 볼 수 있다고 좋아한다. 나는 그 보다 기상 이변으로 이 나라가 망하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먼저 됐다. 얼마 전에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 이 나라에 지진도 일어났다고 하니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반면 나는 동심이 부족한 걸까, 지나치게 현실적인 걸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튼 이 추운 겨울, 실외보다 추운 집을 하루 벗어나 밖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고, 다음 주면 개학이다. 아무것도 안 해줬다는 기억은 주고 싶지 않아 아이들이 원하는 걸 하기로 했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풍차 갈 사람?" 


대답이 뜨뜻미지근하다. 얼마 전 풍차 가면 안 되냐는 별이의 말이 기억나서 나름 생각해서 던진 건데 관심 없나 보다. 빠르게 접었다. 50분가량 걸려 풍차에 가면 3가지 특 장점이 있다. 거기서만 파는 와플 혹은 프런(prawn) 피시 앤 칩스를 먹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식재료와 과일을 저렴한 가격에 사 올 수 있다. 셋째는 넓은 잔디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기름값도 꽤 들어가는데 어쩌면 내가 진짜 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가고 싶었다. 아이들은 원치 않아서 패스했지만, 얼른 두 번째 후보를 올렸다. 


"짚 라인 타러 갈 사람?" 


저요!

저요!

저요!


이거였구나. 그래 그럼 가자고 했다. 생각해 보니 날이 춥다. 남편은 안 올라간단다. 막내 유엘이는 혼자 올라가기는 무리다. 그럼 어쩌나, 날 풀리면 가기로 한다. 

세 번째 후보를 올린다. 


"롤러스케이트 타러 갈 사람?" 


몇 달 전 새로 생긴 롤러스케이트 장이 궁금했다. 저렴하진 않지만 2시간을 한 세션으로 놀 수 있고, 실내라는  점, 셋 다 탈 수 있고 신나게 놀 수 있다는 점에서 낙찰이다. 역시 기대감에 가득 찬 눈망울로 가겠다고 한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바로 향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어렸을 때 집 근처에 '롤러장'이 있었다. 이름을 아무리 기억해보려고 해도 기억나질 않는다. 미아동에 있던 롤러장인데, 꽤 컸다. 당시 신발 대여료만 내면 입장은 무료인 곳이 있어서 문턱이 닳도록 들락 거렸다. 신나는 음악, 북적거리는 사람, 학교 끝나고 친구들, 동네 언니 오빠들과 함께 놀았다. 처음 배울 때는 엉덩방아 찧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많이 했다. 잘 타보겠다는 신념하에 매일 탔더니 나중에는 크로스로도 타고 거꾸로도 탈 수 있게 됐다. 길게 기차형태도 서서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줄을 이어 따라 꼬리 타기도 했다. 신발에 달린 바퀴에 몸을 싣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움직이니 신이 났다. 롤러 슈즈를 신을 때는 늘 긴 끈을 신발 밑창바깥으로 돌려 발등에 꽉 당겨 묶었다. 이건 아이스스케이트 탈 때도, 롤러스케이트 탈 때도 썼던 방법이었다. 넘어지면 발목 삐끗할까 봐 끈으로 꽁꽁 잘 묶어 고정하는 방법이었다. 몇 십 년이나 지났나.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엘이가 신발이 약간 큰 것 같다고 말하자마자 끈을 잡았다. 끈을 잡고 생각지도 않은 오래전 방법으로 끈을 돌려 묶고 있었다. 


"어? 맞아. 나 옛날에 이렇게 끈 묶었는데, 나 이거 왜 생각나지?" 


오래된 기억이 머리로 기억해 내기도 전에 몸이 기억해 내는 일이 종종 있다. 몸으로 익힌 일은 시간이 지나도 몇 번의 반복 혹은 자극이면 재생되는 기분이 든다. 이번에도 그랬다. 단단하게 돌려 묶어주고 들여보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저 멀리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직원들이 구급상자를 들고 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1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롤러장 바닥에서 옆으로 누워 움직이지도 못하고 울고 있었다. 그 안에 있던 사람은 모두 일제히 그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부러진 거야? 머리야? 다리야? 삐인걸까? 울어? 봤어? 어떻게 된 건데? 엄마는?" 


언제나 사건 사고 앞에서 묵직하게 말이 많아지는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사건, 사고가 나면 왜 그렇게 질문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사건의 경위를 조사하는 조사반처럼 말이다. 인대가 늘어났는지, 휠체어 실려 나왔다. 그리고 함께 했던 친구, 부모들은 모두 함께 퇴장했다. 단체 손님이었기에 쑥 빠져나가고 나니 실내가 조용했다. 이렇게 사고가 일어나면 마음에 조바심이 난다. 우리 아이들도 다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한 번 도 주의를 준다. 조심하라고, 반대 방향으로 타지 말라고, 천천히 가라고. 


애들하고 놀아주러 나왔지만, 결국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놀았다. 같이 들어가서 타줬어야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애들만 들여보낸 후 앉아서 책 읽으면서 기다리는 건 같이 놀아주는 게 아니지 않은가,라는 생각말이다. 그런 생각을 해도 이미 늦었다. 다음번에는 직접 같이 타야 하나 싶다. 함께 들어가 놀아주기에는 다소 비싼 금액이라 그 돈으로 다른 걸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이 생각이 아이들을 위한 걸까, 뭐 그런 생각이 자리 잡기 전에 나는 앉아서 <편애하는 문장들> 이북을 들여다봤다. 앉은 내 자리에 수시로 왔다 가며 음료도 마시고, 땀도 닦는다. 나는 이 시간조차 아까워 책을 읽는다고 하지만, 나만의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어제 반권을 읽었고, 오늘도 이어서 읽었다. 슬로 리딩하는 책은 따로 있다. 내용을 나눠서 읽고 문장을 음미한다. 의미를 해부하고 각색해 본다. 줄거리 독서 책은 또 따로다.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가면서 내용에 빠져서 읽는다. <편애하는 문장들>을 읽는 내내 카피라이터 출신 작가 이유미가 궁금했다. 어떤 사람일까, 이 책은 문장도 보이고 인용한 다른 책의 문장도 같이 볼 수 있다. 글의 문체나 표현법, 일상의 에피소드도 낯익다. 술술 익힌다. 나도 비슷하게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공감 포인트가 많았다. 그와 동시에 나는 왜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로 책을 못 쓰고 있나 싶은 마음도 든다. 동시 글을 더 맛깔스럽게 쓸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렇게 고민하는 사이 아이들의 놀이 시간 2시간은 끝이 났다. 


어린 시절의 나를 추억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설명해 줬다. 해맑게 좋아하는 놀이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인 동시에 아이들은 내게 무엇을 바랄까 생각해 보았다. 잠시였지만, 

이후에도 다른 놀이를 하면서 하루의 절반,  (잠시 책 읽은 시간 말고는) 다른 스케줄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웃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좋아서 폴짝거리는 폼도 요렇게 조렇게 쳐다봤다. 뭐라고 말하는지도 유심히 지켜봤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 기억에는 이 기억이 어떤 모양으로든 머릿속에 저장이 될 거다. 일상의 별 의미 없는 일과 순간 같아도 사람에 따라서 모두 다르게 저장이 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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