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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n 18. 2023

7만 원으로 산 잊지 못할 추억  

J-Hope in the box in S.A. BTS

J-Hope in the box in S.A. BTS



D-Day.

오늘 남편은 별이와 별이 친구들을 위해 영화 티켓을 쐈다. 3주 전 별이가 연예인이 되고 싶은 병에 걸려 꿈을 놓고 목놓아 울었던 날 남편과 나는 신음이 깊었다. 지나갈 시기인 걸 안다. 그러나, 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아둔 것 같은 약간의 죄책감 이었다. 남편은 한참 고민을 하다가 BTS의 다큐가 영화로 방영된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렇게 별이에게 선물해 주겠으니 보고 싶은 친구들을 모으라고 했다. 오늘 예매해 둔 티켓 6장을 받아 아이들을 영화관 안으로 들여보냈다.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보통 은행카드 제휴 시스템으로 30 ~ 50%까지 할인받을 수 있다. 당연히 할인될 줄 알고 시원하게 쏘겠다고 한 건데 별이는 친구 4명을 초대했다. 그 사이 티켓을 예매하러 들어갔는데 아무리 할인 적용 버튼을 찾아도 안 보이는 거다. 맙소사, 특별 다큐로 나온 영화여서인지 할인 적용이 안 됐다. 이미 뱉은 말 어쩔 수는 없고 그냥 계획대로 좋은 마음으로 해주라고 했다. 그 사이 인원은 2명이 더 늘어났다. 그렇게 하루하루 손꼽아 날을 세며 드디어 오늘 영화관 앞에서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수다스러운 아이들을 만났다.  어찌나 들떠있는지 남아공에도 한류 열풍이 곳곳에 있다. 아니, 한류 열풍이라기보다는 K-POP을 사랑하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 그야말로 ARMY가 곳곳에 있다. 남아공 중국 스토어에 가면 BTS 짝퉁 물건도 종종 볼 수 있다.


티켓 교환을 기다리며 잔뜩 들뜬 아이들은 팝콘과 음료를 담은 박스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상영관으로 향했다. 히히덕거리며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모습을 보니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건 비현실적이지 않아?
나는 그래서 별로 좋아하는 연예인 없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예 없던 것도 아니다. 가요도 곧 잘 따라 불렀고, 발표회에서 그룹 댄스도 췄다. 단지 열성적이지 않았을 뿐이다. 팬클럽 회장하는 친구가 신기했고, 회원가입하고 스케줄 외워가며 따라다니는 친구들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내게 연예인은 외모가 예쁘고, 멋있고 동경의 대상으로 보는 쪽에 가까웠다.


내가 나중에 지민(BTS멤버)이랑 결혼하면 너한테 청첩장 줄게!


작고 똘똘한 별이 친구 조디(Jodie)가 하는 말에 귀여워 웃음이 터졌다. 이런 농담을 들은 게 언제인지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이고 이상적인 아줌마란 첫 번째 확인 사살이 됐다. 아이들을 영화관 안쪽 좌석까지 안내하러 들어간 순간 막 커튼콜이 시작됐다. 이미 상영관 안에서는 얇고 높은 여자 아이들의 목소리로 꽉 찼다. 화면까지 암전 된 영화관 안에 제이 홉의 목소리와 함께 빛이 새어 나오자 소리는 비명과 함성으로 바뀌었다. 순간 나도 모른 채 양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시끄러워서 못 들어주겠네. 빨리 나가야지." 작은 영화관 안에 빈 좌석도 많았지만 소리만은 흘러넘쳤다.


시끄러운 소리가 싫다. 영어 소리 코치를 하고 난 이후로 귀가 이전보다 더 예민해졌다. 작은 소리가 더 잘 들린다. 장르에 따라 비트가 빠른 음악도 좋아했는데 요즘엔 영 거슬린다. 아이들이 듣는 가요가 시끄럽기만 하다. 귀가 예민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나이 먹은 중년이 되어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해본다. 조용한 음악이 좋고, 고요한 적막이 좋다. 시끄러운 가운데서도 집중할 수 있어야 좋은 집중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게 진짜 집중력이다. 실제로 시끄러운 가운데 집중해야 할 일이 생기면 주변 소음이 안 들린다.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마치 영화에서 주변 소음이 어느 정도의 볼륨 이하로 뮤트 되듯 잠수했을 때 들리는 소음 정도로 변한다. 경험해 보니 그랬다. 그런데 이런 이유와 상관없이 그냥 시끄러운 음악이 거슬린다.



 


별이 친구 이나야(Inaya) 엄마는 디자이너다. 아이들이 우르르 BTS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니 1주일 동안 고민하면서 단체 티셔츠를 제작해 줬다. 아이 생일이나 행사 때마다 재능을 활용해서 특별한 날을 만들어준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인데 덕분에 별이도 하나 얻었다. 별이는 아빠가 자기 친구들 티켓까지 다 사주면서 영화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어 어깨에 힘이 실렸다. 엄마 아빠가 부자는 아니지만 이렇게 자기와 친구들을 위해서 시간도 내주고, 자리도 마련해 주었다는 사실로 말이다.


생색내려는 차원이 아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 알아채주고 할 수 있다면 지원해 주려는 남편 마음이 고마웠다. 내가 하라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 남편이 별 마음을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와는 다른 방법으로 별이 생각을 하고 있던 거다. 평소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다 들어주지 않는다. 안 되는 건 확실하게 선을 긋고 가능한 건 가능성을 열어두되 약간의 시간을 가지고 허락한다. 바로바로 즉각적인 피드백은 잘하지 않는다. 부모로서도 시간을 좀 가지고 허용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생각해야 하는 탓이다. 


나는 아이의 교육에 열성적인 부모가 아니다. 부모역할이 쉽지 않다. 아이 셋을 키워보니 성격, 성향, 식성, 취향도 다 다르다. 하다못해 달걀하나를 먹어도 프라이인지, 스크램블인지, 찜인지 아니면 말이인지도 다 다르다. 누구는 치즈를 좋아하고, 누구는 싫어한다. 누구는 토마토파스타를 좋아하고 누구는 크림파스타를 좋아해서 매번 만들 때마다 두 가지 모두 만들었던 때도 있었다. 어디 뭐 하나 하려면 누구는 간다고 하고 누구는 안 간다고 한다. 메뉴를 고를 때마다 다 살 수는 없는데 고민하게 된다. 좋아하니까 맞춰주고 싶은 부모마음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지쳤다. 여유가 될 때는 기꺼이 해주지만, 평소 바쁠 때는 '그냥 입 닫고 주는 대로 받아먹어'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너는 왜 그렇게 까다롭니, 나는 그렇게 안 키웠는데'로 시작해서 결국 투덜거리면서 맞춰주고 있는 나를 자주 봤다. 13년간 육아해 오면서 느낀 건 '그럴 필요 없다'였다. 또한, 항상 안 되는 것도 아니고 항상 되는 것도 아니다. 육아에도 규칙이 있고 나만의 방법이 있어야 하지만 늘 융통성에는 문을 열어놔야 해서 육아가 어려운 거라고 생각한다.  



BTS를 좋아해서 매일 노래 듣고 춤추는 집에 같이 사는 10대 소녀를 보면서 가끔은 좀 그만했으면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아이가 노래와 춤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건강한 때란 생각도 든다. 멤버 누구를 좋아해서 사진도 수집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희 때' 할 수 있는 열정이란 생각에 내버려 둔다. 남편 덕에 약 7만 원의 돈으로 6명에게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줬다. 덕분에 함께 모인 6명 아이의 부모들도 아이의 함박웃음을 보면서 서로 감사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열정이 있다는 건 살아있는 거다. 살아있어야 추억도 만들 수 있다.  

별이의 20년 후에 지금을 돌아보며 '그땐 그랬지' 웃을 수 있는 추억이 생겼다.

나의 20년 후에 지금을 돌아보며 '그때 내가 그 일을 시작했고, 그 순간이 있어서 지금이 있지'라는 말을 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살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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