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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n 25. 2023

평범해서 고민인 사람에게




나는 평범하다. 늘 지극히 평범해서 고민이다. 이 고민은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왜 잘하는 게 없을까? 아니, 이것 저것 할 줄 아는데 왜 특별히 잘하는 게 없을까. 

저 사람은 저 분야에 굉장히 뛰어난 사람인데 나는 대체 어느 분야에서 뛰어날 수 있을까. 


평범함이란 뭘까? 평범하다는 건 개성이 없다는 것과 같다. '개성'이라는 말이 처음 내게 진하게 각인 됐던 때는 <잘못된 만남>의 김건모 노래를 들을 때였다. 노래의 비트, 랩도 특이했지만 외모도 내게는 꽤나 특이하게 느껴졌다. 작은 키에 잘 생기지도 않고 목소리마저 특이했다. 노래를 잘했고 랩처리 실력이나 풍기는 느낌에 '나 개성'이라고 쓰여있는 듯했다. 

그게 개성이라면 나는 그런 개성은 못 가질 것 같았다. 때로는 " 너 개성 있다."는 말이 " 너 특이하다."는 말로 들리기도 했다. 왜 그렇지 않은가, 지금이야 그런 의미로 안 쓰이지만 1990년대에는 그 단어는 누군가가 " 나 예뻐? " " 걔 잘 생겼어? "라고 물으면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하기 곤란해서 하는 " 음... 개성 있어! " 의 의미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개성이 있어야 나를 어필하기 쉽다. 누군가에게 각인이 잘 된다. 그러니까, 튀는 사람이 눈에 잘 띈다. 


내가 평범해서 고민이라면,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어떤 개성을 가지고 있지? 

개성 있는 사람은 노력해서 그 개성을 갖게 된 걸까? 

부모님 중 누구의 개성을 닮았지? 

그 사람이 돋보이는 이유는 뭘까? 

그럼 평범한 건 나쁜 걸까? 

평범하기 조차 힘든 사람도 많지 않나? 


스스로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은 생각 확장을 잘한다. 그냥 막 던져보는 거다. 나 역시 혼자 막 던져봤다. 


그러다 여기서 멈췄다. 

정말 좋아하는 게 뭘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매일 하고 있나?  지금까지 얼마나 지속해 왔을까? 


요즘에는 똑똑한 독서법, 효율적인 독서법에 꽂혀서 여러 가지 동기부여 자료와 자기 계발 영상, 서적을 찾아보고 읽고 있다. 강의를 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그전에 나는 똑똑해지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똑똑해지고 싶고, 생각을 확장하고 싶다. 보통 10년 정도는 무언가를 지속해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타인에게도 신뢰가 될만한 자료를 내밀 수 있다. 조금 빠른 사람은 3년, 5년 만에도 그 일을 이루어내기도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데이터를 쌓아나간다. 


말콤 글레드 웰 저자는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말한다. 하루에 3시간씩 10년 이 년 1만 시간이 된다. 하루 3시간씩 10년 동안 한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도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하루 3시간씩 한 게 뭘까, 딱히 기억이 안 난다. 최근 2년 정도 디지털 드로잉을 하루 2시간씩 한 날도 있었고, 영어 공부를 3시간 이상 한 날도 많았다. 글 쓰느라 골머리 썩으며 2시간가량 붙잡고 있는 날도 있었지만 1만 시간? 택도 없다. 


1만 시간을 넘긴 일은 집안 일과 육아다. 육아도 집안일에도 뭔가 규칙을 세워서 하다 보면 노하우가 생긴다. 그런데 세상에 육아도 제대로 못하고, 집안일도 지리리 못하는 사람도 많다. 가끔 나도 내가 집안일을 참 지지로 못하는구나 생각한다. 손이 빠르지만 뭔가 효율이 안나는 느낌이랄까. 아무리 치우고 치워도 왜 미니멀라이프 하는 사람 집 같은 비주얼이 안 나올까 하는 생각말이다. 


아무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직장에서 일했던 시간 외에 20세 이후 1만 시간 동안 집중해서 한 것이 있는지 생각해 봤다. 일곱 살 때, 윗 집 쪽방에 사는 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긴 파마머리에 야리야리한 몸매를 가진 천상 여성스러운 언니였다. 나이는 20대 초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60대의 멋진 중년을 살고 있겠지 싶다. 그렇게 피아노를 배우다 이사 한 뒤로 는 못 배웠다. 초등 고학년쯤 학원에 갔다. 남자 원장 선생님이 직접 가르쳤다. 당시 생긴 건 남자인데 말투도 행동도 여자 같은 게 꺼려졌다. 연습 많이 시키는 것도 싫었다. 친구들 다 나가서 노는데 나만 연습하러 학원에 처박혀 있는 것도 지겨웠다.  그렇게 꾸역꾸역 다니다가 6학년 어느 날 거짓말 하고 학원에 가지 않았다. 그 뒤로 다시는 피아노 학원에 발도 못 붙였다. 그렇게 학원과 이별했지만, 중학교 때부터는 평일에도 교회를 놀러 가 피아노를 치며 놀았다. 악보만 보고 강약 중강약 , 2박자 4박자의 박자만 맞춰 또박또박 치던 피아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코드를 보고 쳐야 하는 가스펠 송은 어떻게 치는지 알 수 없었다. 배워야 했다. 나보다 잘 치는 친구들을 보면 왜 학원에서 도망을 쳤을까 싶은 생각에 후회가 됐다. 적어도 체르니 40번은 쳐야 되는데 나는 30번에서 도망친 거다.  잘하고 싶어 잘하는 언니, 친구들을 보면서 흉내를 냈다. 맘대로는 안되지만 누군가 내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를 수 있는 만큼은 쳤다. 그렇게 그때부터 메인 예배 찬양팀에 서고 싶어서 틈만 나면 연습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신시사이저를 접하고  따로 레슨도 받고 시시때때로 훈련했다. 그 뒤로 10년을 계속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메인 피아노 선율을 치는 반주 말고, 서브로 스트링 연주 및 다양한 악기로 소리를 넣는 연주를 하게 됐다. 교회에서 그렇게 서브 신디 반주자라 하면 바로 나를 떠올릴 정도가 됐다. 나에게 어떻게 치는지 알려달라는 후배가 늘었다. 그 당시에도 메인 반주자는 나보다 잘 치는 친구였다. 전공자도 아니지만 청음도 리듬감각도 제법 뛰어난 친구였다. 메인 반주자가 없는 날에는 당연히 메인 자리에 앉았다. 10년을 했는데도 서브 자리였다는 게 억울하단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10년을 했으니까 전공하지 않았지만 서브 자리에 앉았고, 메인을 하면서도 내 옆에 앉은 다른 서브 반주자에게 팁을 알려줄 수 있었다. 지금은 사역지에서 허술한 매주 한 번씩만 키보드로 반주하는 게 전부이지만 멈추지 않았다면 지금은 유튜브로 내 노하우라도 전수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다. 신시사이저 이야기가 길었다. 나 같은 사람도 찾아보면 꽤 많을 거다. 특히 교회에서 자랐으면 흔하게 찾을 수 있다. 


내게는 어떤 분야에서 '개성'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건, 독특한 방식과 노하우로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고 도움을 주는 거다. 세상에서 딱 나만 이거 해! 하는 독보적인 사람이 되는 것까지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내 분야에서 그래도 제법 하는 사람으로 서고 싶은 바람이다. 나는 무척 평범하다는 생각, 개성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살아오는 내내 하면서 살았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최고'가 될 만큼의 노력을 했었나 되짚어 보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당시 정말 죽을 만큼 최선을 다했지만 지금은 다른 결과가 나왔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조금 더 노력했다면, 더 훈련하고 씨름했다면 지금은 어떤 분야에서든 다른 모습으로 서 있을 거다. 


10년간 하루 9시간씩 보육교사로 일하고 연구했다. 노동에 들어가는 시간도 많지만 머리로 생각하고 고민한 시간도 많았다. 나 말고도 이렇게 하는 사람 많다. 많은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 일하고 노력하며 시간을 들인다. 그렇게 일했다고 해도 특별할 게 없다. 그냥 평범한 보육교사인 거다. 그나마 그렇게 쌓은 지식과 경험으로 현지에 어린이집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이렇게 도전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건 어쩌면 평범한 능력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또한 비슷한 사람이 많다.  


블로그 글쓰기를 포함, 책 내고 글 쓰기 시작한 지 3년이 됐다. 중간에 안 쓴 날도 있으니까 3년이 안 되는 거 같다. 독서를 제대로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띄엄띄엄 읽는 날도 많았다. 몰아서 읽고 깨작거린 날도 많았다. 지금 작가가 되려는 사람, 작가가 된 사람 중에 이런 노력 안 한 사람 누가 있을까. 어떤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그만큼의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평범에 관해 보자면 다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마다 시선과 생각이 다른 거니까. 평범하기도 힘들다. 평범한 것도 그나마 다행이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으면 된다. 그러나 오늘은 좀 더 평범에서 한발자국 더 나간다면이다. 다음 번에는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 찾기에 대해 생각해보고 글 써보려한다. 


그 과도기적 과정에 있는 나이지만 그것 분명하게 안다. 

상상하고, 계획하고, 실행한다. 지속한다. 

조급할 것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계획한 후 실행하면 된다. 

 

그게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 변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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