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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n 26. 2023

기둥은 진짜 시작이다.

책의 목차와 건물의 기둥







건물을 지을 때 첫 공사가 어떻게 시작하는지 분명히 봤었다. 이전에 공사현장도 지나다니면서 봤고, 지인이 집 짓는 현장도 들여다봤다. 그런데 이렇게 처음부터 세세하게 본 경험은 처음이다.


1. 멀쩡한 벽돌바닥을 망치로 깨부순다.

2. 그 위에 또 돌과 흙으로 덮고 기계를 이용해서 평포한다.

3.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4. 위에 흙을 덮는다.

5. 기둥을 박는다.

6. 시멘을 붓는다.

7. 예쁘게 미장한다.

8. 양생을 한다.


지금까지 본 작업이 여기까지다.


여기는 흑인 마을이다. 어린이집을 지을 수 있게 되어 건물 한 채를 짓는 현장을 보고 있다. 그야말로 나는 보고만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분야니까, 어서 지어지기만을 보면서 기도하고 있다. 이 과정을 보면서 처음에는 진짜 이게 지어질까 생각도 들었는데, 기초 작업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신기했다. 2번과 3번 작업을 하는 데는 시간이 몇 날 며칠 걸렸다.


"그냥 흙 가져다 확 부으면 안 돼? 왜 돌멩이를 가져다가 흙이랑 섞어서 부수지? 힘들게."


그런 의문을 품는 내게 돌아온 대답은 "더 단단하게"였다. 땅을 다질 때 쓰는 도구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음과 내가 직접 그 기계를 들지도 않았는데 땅을 두드릴 때마다 일하는 진동이 나에게도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그냥 바닥을 부수었을 때는 '이제 공사시작하는구나'만 느껴졌다. 그런데 흙을 파내고 기둥을 심어두니까 '와 진짜 건물이 세워질 건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뿐 아니라 주변에 사는 흑인들도 하나둘씩 뭐가 지어질 거냐며 묻는다. 이제 눈에 보이는 거다.



책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목차기획을 할 때 대부분 선 목차 작업을 한다. 간혹 글을 다 쓰고 난 뒤 목차를 추리는 경우도 있다. 목차 기획만 마쳐도 책의 절반은 썼다고 해도 될 정도로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목차를 잘 짜두면 책 쓰는데 어마어마한 도움을 준다. 시간이 좀 걸리고 노력이 필요한 시간이지만 책의 기둥을 잘 잡아두면 책을 짓기가 수월하다. 같은 적용으로 '스케치'가 그렇다. 책 전체의 기둥이 목차라면, 각 꼭지의 기둥은 내가 쓸 글에 대한 스케치다. 미리 스케치를 해두고 글을 쓰면 글이 산으로 가는 걸 막아준다. 그 이유로 스케치는 초보작가에게 매우 중요하다. 조금 반신반의 하는 마음이 생긴다. 목차 이렇게 짜도 되나, 이게 제대로 적은 게 맞나, 내가 하려는 말이 정확히 이 장에 속하나 싶은 마음도 든다. 회원 책의 목차를 짜고 내 책 목차를 짜면서 비슷한 종류의 책 목차를 눈 알 빠지게 째려봤다. 가끔 보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목차를 짰나 싶은 책도 있었다. 대부분은 목차 한번 기가 막히게 짰다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목차만 봐도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겠더라.


건물의 축이 될 기둥 박을 때 보니까 흑인 두 명이 애를 쓰면서 땅을 파고 힘겹게 기둥을 들어 내리꽂았다. 땅을 판 만큼 깊숙이. 그걸 보면서 저 기둥이 흔들리면 어쩌나, 그렇게 건물이 무너지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기둥 박는 일은 전문가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일단 깊게 땅을 파면 땅이 무너지고 갈라지지 않는 이상 옆에서 지지해 주는 단단한 땅 덕분에 흔들릴 일이 없겠구나 생각했다.


건물은 이렇게 짓는 거구나.

건물의 기둥과 책의 기둥은 그냥 한 번 박으면 쭉 가면 된다. 뒤 돌아봐도 거기에 건물을 올리고 나면 돌아봐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리고 원하는 결과를 위한 계산된 기둥이기 때문에 그냥 단단하게 박았으면 그대로 건물을 올리면 된다. 책도 그렇다. 목차를 짰으면 이제 거기에 맞는 내용을 입혀 살을 붙이면 된다. 건물과는 다르게 약간의 수정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꼭지 정도지 전체를 다 들어 빼고 갈아 끼우기란 아마도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될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하는 건 기둥 박아 놓고 오랫동안 아무 작업도 안하면 저 나무 기둥이 썩어버릴지도 모른다. 나의 책 쓰기 선생님은 글 목차 받아 놓고 안쓰는 사람에게 말한다.

"어디 집에서 썩는 냄새 안나나 잘 보세요." 목차 썩는 냄새 말이다.  


초고 집필을 시작한다. 이제 아침에는 초고를 쓰고 밤에는 브런치 스토리에 글 한편을 남길 생각인데, 어제는 그냥 자버렸다. 아침에는 생각했던 시간에 일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아침에 글을 쓰고 있다.  짧은 단상이지만,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책을 짓는 과정도 비슷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글로 다 짓기를 하고 있나 보다.

글로 삶도 짓고, 책도 짓고, 나도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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