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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ug 22. 2023

못 생긴 왕자와는 뽀뽀하고 싶지 않아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이를 위한 동화 <Feat. MIX 믹스> 




"여기, 혹시 관객 중에 참여하고 싶으신 분 계세요? 무대 위로 나오세요!"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이런 뉘앙스의 말이었다. 


초등 저학년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친가 쪽 사촌 오빠 몇 명은 나보다 10살 이상 많다. 나이차이가 꽤 난다.  남아선호사상과 유교적 전통이 짙은 큰아버지, 큰어머니, 할머니가 계셨지만 딸이 귀해 이쁨은 받았다. 방학 때였는데, 군산에서 서울까지 오랜만에 온 사촌 오빠가 나를 데리고 대학로 극장으로 나들이를 간다고 했다. 따라나섰다. 어렴풋이 기억나기로는 대학로 파랑새 극장이었던 것 같다. 오빠랑 같이 극장 안에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연극을 봤다. 백설공주는 독사과를 먹고 죽었다. 동화 내용하고 똑같았다. 벌써 30년 전이니까, 그때만 해도 동화 각색은 그렇게 많이 않았던 시대였다. 



오늘  느닷없이 별이가 들어와 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엄마, 오늘 우리 반에서 로빈 후드에 대한 동화를 읽었는데요.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동심파괴! 결말이 사냥꾼이 총을 갑자기 들이 대고 로빈 후드를 죽였어요. 어이가 없어!! 동심 파괴지 이건! 그러고 나서 또 뭐가 있었는 줄 알아요? 아기 돼지 삼 형제 있죠? 마지막에 셋째 돼지가 집을 짓잖아요. 벽돌집. 그러면 이거 해피엔딩 아니에요? 갑자기 그 사냥꾼이 나타나서 총을 쐈어! 그리고, 갑자기 돼지를 가방으로 만들었어요. 진짜!  와, 동. 심. 파. 괴!" 


실감 나게 어이없다는 듯이 이야기하는데 현웃이 터지면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애들이 본 건가 싶었다. 아무튼 그렇게 황당한 스토리를 들으면서 불현듯 어렸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오빠를 따라 신이 나서 극장에 갔고, 연극이 끝날 무렵 관객 참여 타임이 있었다. 나는 나가고 싶지 않았는데 사촌오빠가 손을 번쩍 들었다. 갑작스럽게 무대에 올라 잠시동안이지만 주인공이 되었다. 마지못해 시키는 대로 다 했다. 무대에 나간 나에게 사과를 한 입 베어 먹으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한 입 베어 물고 입에 있는 사과를 오물오물 씹으면서 두 분을 감고 두 손을 모아 바닥에 다소곳하게 누웠다.  독사과 베어 먹고 쓰러진 공주는 입을 움직일 리가 없는데 자꾸 사과즙이 배어 나와 어쩔 수가 없었다. 다 먹을 때까지 오물거렸다. 입에 있는 사과를 다 먹을  때쯤 진행자가 말했다. 


"자, 이제 왕자님이 뽀뽀를 해주세요!" 


아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이럴라고 부른 건가 싶어 얼른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당시 나는 친척오빠가 나한테 뽀뽀하는 게 무척 싫었다. 피할 수만 있다면 그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사실, 친척오빠는 잘 생기지 않았었다.(이게 팩트) 어떻게든 잘 생기지 않은 왕자의 뽀뽀를 피하고 싶었다.  남자친구도 아니고 친척오빠가! 그것도 10살이나 많은 친척오빠가! 충격적이었다. 당시 생각으로는 내가 좋아했던 친척오빠가 따로 있었는데, 그 오빠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당시에는 별로 내키지도 않았고 그 진행자가 미웠다. 결국 친척오빠는 가볍게 볼에 뽀뽀를 했고 나는 잠에서 깨어나 상쾌한 듯 일어나야 할 타이밍에 저벅저벅 걸어 나오며 소매로 볼을 비벼 닦았다. 그렇게 극장을 나와서 밥을 먹으면서 괜히 툴툴거렸고, 친척오빠는 귀엽다는 듯이 나한테 다 맞춰줬던 기억이 난다. 어린 날의 해프닝쯤으로 끝났다. 



<믹스> 한 권을 털었다. 믹스의 마지막 장에는 '아이와 어른을 섞어라' 파트가 나온다. 

어른을 공략하는 최고의 방법은 어른과 아이를 섞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른스러운 취향을 가진 다섯 살짜리 꼬마 '짱구' 

변태 취향을 가진 귀여운 테디베어 인형 '19금 테드' 

깜찍한 외모로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심슨가족'

'심오한 주제'를 유치 찬란하게!

<아기 돼지 삼 형제> - 건축과 디자인 관점'

<신데렐라> - 패션동화


위에 언급된 동화, 만화는 어린이 캐릭터를 한 귀여움에 시사적인 부분을 섞고, 어른들의 일상을 섞고, 성인의 생각을 섞어 표한 작품들이다. 이렇게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있다.  그리고, 책에서는 아이와 어른을 섞었을 때 주는 시너지 효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심오한 주제를 유치 찬란하게 꾸미고, 아이처럼 말하면 심오한 말도 들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들이 심각한 말을 하면 무슨 아이가 이런 말을 하나 싶어 황당하면서도 귀엽게 보지만, 일리가 있다고 받아들이는 점이다. 어른이 하면 변태라고 손가락질받을 만한 행동도 꼬마들이 저지르면 가볍게 웃어넘기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부분들을 잘 이용해서 심각하고 심오한 내용을 완화시켜 전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 있지만, 이걸 악용해서 그저 재미만으로 각색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딸 별이가 와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존의 동화를 각색해서 다양한 이야기로 꾸며보는 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동시에, 굳이 아이들이 보는 동화를 그렇게 잔혹하게 변형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동심은 동심대로 지켜주면 어떨까 싶은 생각말이다. 


어렸을 때도, 성인이 되어서도 '동화'는 아이들이나 보는 거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동화 읽어줄 기회가 많았다. 보육교사로 일하면서 여러 동화를 찾아봤고, 읽어줬다. 동화를 읽다 보니 어느새 나도 동화에 빠져들고 있었다. 

동화는 보통 비교적 쉽고 단순하다. 한 번 더 생각해보지 않으면 그냥 그림이 그려진 책으로 끝날 수도 있다. 요즘은 그림책, 동화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주변에도 꽤 많다. 나도 그림책 작업을 한 번 했던 적 있다. 아주 짧았지만 당시 그림도 직접 그리고, 스토리도 짜서 넣으라 애썼던 기억이 난다. 불과 작년이다. 짧은 동화에 메시지를 넣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원치 않은 왕자님이 왔다면 백설공주는 뽀뽀를 받고 살았을까?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뽀뽀 밖에 없었을까? 각색한다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꿈꾸면서 얼른 자야겠다. 


후속은 꿈속에서 튜비 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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