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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ug 28. 2023

사랑인가, 결혼인가

저 형아가 선생님 사랑한대요.

'



"He loves you."


"What? he what?"


"HE LOVES YOU!"


오늘 있었던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가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더 어린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가 와서 전했다.

웃겼다. 장난인지 진심인지는 내게 중요하진 않았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사랑이라는 단어에 꽂혀 생각이 골똘해졌다. 그 'LOVE' 단어가 주는 심쿵의 느낌은 대체 어떻게 시작되는 걸까, 느끼면서도 시작을 모르겠는 그 찌릿한 마음 말이다.



그저 LOVE라는 단어에 꽂혀 사랑이 뭘까 생각했다.

마침 어제저녁부터 칼 필레머의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을 읽는 중이었다. 아침에 사역지 가는 길에 차 안에서도 읽었다. 인생, 결혼, 부부, 사회생활에 관한 현자들의 이야기 담뿍 담긴 책이다. 이제 100페이지 정도 읽었는데 내용이 쉽기도 하고 이미 살면서 터득하거나 여기저기서 주워 들어 아는 내용이 많다. 꽤 술술 읽혀서 줄거리 독서를 하면서 맘에 드는 문장만 발췌하는 중이다. 앞쪽에서 부부관계에 관한 부분이 언급된다. 그렇게 읽다가 결혼에서 생각이 멈췄다.

 


결혼 15년 차,

남편과의 만남은 드라마틱했다. 결혼 또한 드라마틱하게 했다. 삶은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은 게 함정이다.

남편과 결혼 전 다른 사람과 연애했다. 한 번의 연애가 아닌 몇 명의 다른 사람과 연애의 경험이 있다. 대충 장난스럽게 만난 사람은 없었다. "만약 이 사람과 결혼한다면 내 삶은 어떨까?"를 생각해 보기는 했다. 그저 생각만 이었지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아니, 지금 남편 말고는 결혼 확신이 있던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까 결혼까지 올 수 없었겠지만,


글 쓰며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결혼 전 잠시 연인으로 '스친' 사람이 있다. 정말 '스쳤다'는 말이 맞다. 그러나 내 마음에 '거절'이라는 상처와 긴 꼬챙이로 후벼 파는 듯한 아픔을 남기고 간 사람이었다. 한 모임에서 몇 개월간 나를 관찰했단다. 친한 친구에게 나를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고 했다. 나랑 '결혼'하고 싶다고 말이다.

사귀고 싶다는 게 아니고,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 자체부터가 또라이스러웠다.  

'결혼' 특이했다.

같은 공간에서 스치듯 여러 번 지나갔지만, 그때까지는 한 번도 말을 섞어 보지도 않았던 사람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의 홈페이지를 알고 그곳에서 내 사진을 다운로드해  PC 바탕화면에 깔았다고 들었다. 그리고 약 두 달간 나와의 결혼 생활을 이미화 해봤다는 거다. 어떻게 이렇게 변태 같을 수가 있는지 그 말을 듣고 이상한 사이코 아니냐며 기함했다. 그렇게 친구를 통해 내게 말을 전했다. 적극적으로 대시를 하고 구애를 한 후 나는 그와 만남을 가졌다.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먼 그 사람이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연애를 시작했다. 당시 나는 결혼에 대한 여러 생각이 많았다. 내 나이 25세,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다. 서로 바쁘지만 나름대로 데이트를 했고, 어색했지만 가까워지려고 애썼다. 뭔가 닮은 구석이나 공통분모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좀처럼 거리감이 좁혀지지는 않았다. 그 후, 며칠간 그 남자는 연락이 없었다. 무슨 일인지 묻자, 어머니가 아프신데 자기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며 연락은 잠시 끊겠다는 거였다. 황당했다. 만나보니 자기 맘에 안 들었나, 자기가 생각했던 모습과 달랐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무런 마음도 생각도 없던 나를 흔들어 자기 사람으로 만드려고 애썼으면 끝까지 최선을 다했어야지,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중병은 아니라면서 어머니가 아프신 것과 애인과의 연락을 잠시 끊겠다는 건 무슨 연관성이 있다고 봐야 하는 걸까, 그래도 혼자 나름대로 기다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을 테니까.

2개월. 딱 2개월이었다.

그는 비겁했다. 헤어지자는 말을 먼저 할 수 없어 결국 내 입에서 나오게 만들었고, 나는 그 계기로 큰 상처를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잘 해어졌다. 내 짝이 아니었으니까. 아마 잘 되어 결혼했어도 나는 맘 편히 못 살았을 것 같다. 돈, 차, 집을 내게 자랑하며 본인은 당장이라도 결혼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처럼 굴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린 사람이었다. 나보다 4살이나 많았지만 나이 어디 갔다 붙일 게 아니다.. 당시, 내가 진짜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궁금했을지도 모르겠고, 결혼을 정말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사진을 받아 놓고 미래를 그리면서 기도했단다. 그리고 그림이 그려졌다고 했다. 약간 소름이 돋기는 하지만 뭔가 나름대로 자신의 방식이 있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지만, 나중에 정리해 본 바로는, 그 사람은 애인을 찾는 게 아니었다. '신붓감'을 찾고 있었던 거다. 만나는 동안 내게 가정에 대한 질문을 종종 했다. 부모님에 대해 묻고, 가정 형편도 물었다. 자신이 외국으로 유학을 가야 하는데 보내 줄 수 있는 처가덕 볼만한 여자를 찾고 있었던 거였다.  그 사람은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살고 있다. 지인에게 전해 들었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처가 덕으로 유학을 갔고, 이민 생활을 하고 있다. 그거였다.  


결혼, 결혼하기 위해 만남을 갖는 사람이 있다.

사랑, 사랑해서 결혼하는 사람이 있다.

뭐가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혼이 전제가 되어서 '결혼'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사람을 만난다면 한평생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을까?


책에서도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우정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근본적으로 비슷한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그래야 더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생활방식이나 삶의 태도, 가치관이 다르다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사랑해서 마음이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도 느껴봤다. 없으면 못 살것 같은 가슴앓이도 해 봤다. 연애를 그렇게 해봤어도 결혼은 사랑만으로도 힘들다. 친구가 되어야 평생 함께 할 수 있다. 남편과는 친구가 되었다. 8살이나 차이나지만, 우리 삶에는 나이는 보이지 않는다. (가끔 세대차이 느끼는 말만 안 하면) 인생의 반려자로 이제 고작,(아니 꽤)15년 살아왔지만 아직까지는 무탈하다. 가끔 꼴 보기 싫은 날도 있다. 대부분의 날은 살 부대끼며 장난도 치고 서로를 아껴주기도 한다. 그저 일상의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며 살아간다. 이 사람과 만나면 결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만났고, 사랑해서 결혼했다. 비슷한 점이 많고, 닮아서 이 사람이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누굴 만나도 나를 이만큼 사랑해 줄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결혼했다.


이렇게 해서 결혼했더라도 살아보니, 나랑 다른 점 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뇌구조를 가졌다. 왜 그렇게 밖에 생각을 못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너무 당연한 거 아닐까.

각자 30년 가까이 혹은 30년 넘도록 서로 다른 부모 밑에서 다른 음식을 먹었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생활습관으로 살아왔다. 사랑해서 만나 함께 살지만 그 간극이 좁혀지는 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다. 정말 너무 닮아서 서로 알아서 다 맞춰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아무리 잘생기고 멋지고 대단하고 돈 잘 버는 사람이랑 결혼을 하다고 해도 '그놈이 그놈이다'는 말이 있을까 싶다.

그저 '함께' 사는 공동체로 엮었다는 건 서로 이해하고 맞춰가지 않으면 힘들다.


결론은 그렇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는 거다. 그 사랑에 이해와 인정을 얹고, 존중과 유머를 얹어 사는 거다.

함께 평생 즐겁게 살기 위해 서로의 마음을 열고 내가 한 발가면 너도 한 발 오고, 내가 한 발 무를 땐 너도 한 발 무르면서 균형을 맞춰 가는 거다. 때론 내가 한 발 뒤로 갈 때, 그가 한 발 다가와줘야 할 때도 있지만, 살아보니, 서로 한 걸음 뒤로 갈 때는 조금 기다려주는 게 지혜라는 생각이 든다. 쉽게 말해 서로의 감정이 상했을 때는 조금 떨어져 시간을 갖는 거 말이다.


연애는 내가 한 걸음 무르면 그가 한 걸음 더 오길 바랐다면, 결혼은 내(그)가 한 걸음 무르면 그(나)도 한 걸음 뒤로 가줘야 되는 거다.

 -글로다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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