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 쓰지 맙시다
그새 좀 늙어 보인다더라고!
얕은 신경질이 팍 올라왔다. 대꾸하고 싶지도 않았다. 제발 주어 좀 붙여서 이야기해달라고 그렇게 말해도 왜 그게 그렇게 안 될까?
얼마 전에 주어 빼먹고 말하는 남편이야기를 브런치에 쓴 날이 있었다.
https://brunch.co.kr/@namagong2018/119
종종 주어를 뺀 채 말을 시작하는 남편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나랑 같이 '대화'를 하고 싶다면 맥이 이어져야 하는데 침묵을 깨고 갑자기 던지는 말은 대부분 주어가 생략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침묵'이다. 침묵 상태였다는 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은 상태였을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뭔가 골똘히 생각 중이었을 거라 짐작해 본다. 그 침묵을 깨고 나온 첫마디는 혼자만의 세계에서 지어진 독백이 밖으로 튀어나오듯한 말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주어를 생략한 채 말을 꺼내는 순간 얕은 신경질이 난다.
그러니까 누가? 누구를 보고?
몇 시간 전 시아버님과 통화하고, 친정 부모님과 통화를 했나 보다. 수업 진행 중이라 나는 전화를 받지 못했지만 문 밖으로 아버님 소리가 들려서 전화 통화한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재밌는 사실은 내가 "그새 늙어 보인다더라고!"라고 들었을 때 대충 아버님이나 엄마 아빠 일거라는 추측을 했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말이어도 오래 살다 보니 대강 알아듣는다. 그렇다고 한들 실제로 그렇게 말한 사람이 '시아버님'인지, '친정부모님'인지 알턱 없었다.
"누가? 아버님이?"
"아, 아니 장인어른이."
남편이 이 말을 꺼낸 이유는 하나였을거다. 아빠가 그런 말을 한 사실에 앞서 본인이 늙어 보인다는 말을 듣고 나에게 동의하는지 묻고 싶었던 거다. 혹은 어떤 다른 말을 기대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한 마디 덜 했어야 하는데 더 했다. 며칠 전에도 차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 온 말은 어떤 대화의 끝 마무리와도 전혀 연결되지 않는 말이었으니까.
막내 요엘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문 밖에서 형 다엘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옥신각신 한참을 하다 문을 열고 들어온거다.
"엄마한테 물어봐 봐. 그게 아니라니까!"
마지막 들린 말은 이거였습니다.
"엄마! 세상에는 32가 있어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 못 알아들었다. 이제 아홉 살 인생을 사는 막둥이의 말은 주어가 없어도 말이 어딘가 좀 이상해도 신경질보다는 웃음이 난다. 귀여우니까, 그래도 바로 잡을 건 바로 잡아야만 한다. 무언가 말하려는데 말이 완성되지 않은거다.
"32가 뭐야?"
"아, 그러니까, 달력에 31일이 있잖아요. 그다음에 32가 있을 수도 있냐고요!"
"아! 달력, 달력에는 32일이 없지."
"야, 거봐! 형아 말이 맞지. 엄마가 아니라고 하잖아!"
요엘, 엄마, 다엘의 순서로 대화가 흘러갔고, 세상에 있는 달력에는 32일은 없다고 결론났다.
비문- 주어와 서술어가 맞지 않아 말의 맥이 통하지 않는 문장.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
요엘의 말도 비문이고, 남편의 말도 비문이었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비문을 쓸 때와 어른이 비문을 쓸 때는 다르닼 어린아이가 비문을 쓰면 다시 알려주어 수정하면 되고, 어쩐지 하는 행동이나 말이 귀여워 웃음도 난다. 어른은 다르다. 물론 어른도 비문을 쓸 수 있닼 대화의 맥락에 따라 앞뒤 상황을 알고 있다면 비문쯤이야 그냥 넘길 수도 있지 않을까.
글쓰기에서도 비문이 종종 나타난다.
비문을 써도 귀엽게 봐주거나 친절히 고쳐줄 수 있는 단계가 있다. 그게 바로 초고 단계다. 초고 집필 할 때는 비문이 있어도 용서가 된다.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퇴고에서는 비문을 반드시 찾아내서 수정해야 한다. 작가의 문장에서 비문은 나오지 않아야 읽는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기 따문이다. 적어도 작가라면 비문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초고의 상태는 어린아이와 같아도 된다. 다만, 틀린 것을 바로 잡아서 수정했다면 그 다음번에는 이전에 했던 실수는 하지 않으려고 좀 더 신경은 써야만한다.
저녁시간 요엘의 말을 듣고 세상에 32가 있냐는 말은 어떻게 보면 창의적인 말이나 넌센스 퀴즈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 생각이 참 신기하다. 아이의 머릿속이나 말로 튀어나온 말은 '창의성'있게 들리는데 남편의 말에는 어이없어 제발 좀! 그러지 말라고 당부하게 되니까.
아무리 창의성이 있는 문장이라고 해도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 퇴고의 단계에서는 문장의 비문을 찾아야 한다.좀 더 윤이 나도록 다듬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번 주는 공저 짝꿍퇴고 중이다.
내일 마무리가 된다.
곧 공저가 출간예정이다.
잘 다듬어져 나오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본다.
9월 책 쓰기 무료특강
https://blog.naver.com/with3mom/223198845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