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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n 19. 2023

제발 주어 생략 좀 하지 말아 줄래

 주어 없이도 통하는 대화




할머니 아프시다는데 애들 가도 괜찮겠어?

남편은 말할 때 종종 주어를 생략한다. 오늘 아침 식탁에서도 밥을 먹다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위 문장에는 주어가 있었다. '할머니'이지만, 어떤 할머니인지가 생략됐다. 영어에서는 소유격 표현을 할 때 누구의 것인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  한국에서는 대화할 때 주어가 생략돼도 대화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 그렇지만 가끔 주어를 생략하고 훅 들어오는 대화에 당황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제발 주어 좀 생략하지 말고 말해줄래?

가족 중 누군가 주어를 생략한 채 이야기할 때면 순간적으로 머리가 쭈뼛선다. 평소에는 좋은 말로 웃으면서 "그러니까, 주어가 누군데?"라고 말하지만, 같은 말이어도 예민할 때는 같은 말에 가시가 돋친다. 직업병인지 대화할 때는 좀 똑똑히 얘기해 주면 좋겠다. 오늘 오전에도 할머니라고 말했는데도 주어가 없어 공방전을 벌인 건 현재 우리는 같이 사는 할머니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보낼 할머니가 남아공에는 없다. 단, 매주 주일 선교지에 가는 우리 부부 대신에 아이들을 맡아주는 지인 집에 할머니가 계신다. 그 탓에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앞 뒤 다 자르고 "할머니 아프시다는데"라는 말에 단번에 그 집을 말하는지 알고 바로 대답했다.


"글쎄, 걱정은 되는데 괜찮으니까 오지 말라는 말 안 했겠지?"


이렇게 대답해 놓고 우스갯소리로 별이에게 말했다.


너네 아빠는 주어를 늘 생략해서 말해.
갑자기 훅 들어온다니까!
근데 더 웃긴 건 뭔지 아니?
근데 아빠가 앞뒤 다 잘라먹고
갑자기 주어 생략하고 말해도
누군지 알아듣는다. 신기하지?


마치 눈앞에 보이는 양말이나 넥타이를 찾으며 "여보 그거 어딨어?"라고 묻을 때 "거기 오른쪽 두 번째 서랍에! 그게 안 보여?"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나 할까.

암튼 종종 주어를 생략하고 말하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게 된다. 그럼 남편은 "내가 그래서 어렸을 때 엄마한테 많이 혼났지." 하고 말한다. 할 말없게 만든다. 시어머니는 국문학도였다. 덕분에 말이 느렸던 남편은 자주 야단맞았다고 했다. 결국, 나중에는 또 혼날까 봐 입을 닫았다며 말이다. 심각해질 수도 있는 대화라 "그렇게 혼났는데 왜 그래?" 라며 농담하듯 말하자 "그래서 이 정도야! 크크크"로 끝났다.


남편을 공격하려고 했던 말이 아니다. 대화할 때 주어 빠진 채 자기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그냥 뱉는 남편은 지금 좀 전에 일어났던 일이 아닌 며칠 전 나눴던 이야기 혹은 시간이 좀 지난 대화의 꼬리를 끌어와 잇는다. 어차피 둘만 아는 대화라면 언제 꺼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단서만 있다면 관계없다. 그래도 좀 친절하게 말할 수는 없나 싶을 때가 있다.




글 쓸 때도 독자에게 보이는 글이라면 작가는 친절해야 한다. 주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써야 한다. 문장을 이루는 주어와 서술어는 핵심 요소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만 문법에 어긋날 뿐 아니라 가독성이 떨어진다. 물론, 주어 생략 가능한 경우가 있다. 주어를 빼면 문장을 가볍게 만들 수 있다. 의미 혹은 내용상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 중복으로 인한 생략은 필요하다. 누가 봐도 알아들을 수 있는 설명문이나 주어가 필요 없는 문장이 아니고서는 생략하면 안 된다. 문장의 중심축이 되는 주어를 습관적으로 생략해서 쓴다면 비문이 된다. 주어를 생략하면 읽는 사람이 문맥 앞뒤를 일일이 파악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때로는 오역이 될 수 있다. 짧은 글이 좋다고 하니까 마구 생략해서 쓰다가 비문을 만드는 거다. 생략해야 하는 건 반복, 불필요한 미사여구나 불 필요한 긴 설명 생략이다. 간결하게 문장을  쓸 때에도 주어 서술은 분명해야 한다.




앞으로의 대화에서도 글 쓸 때도 명확하게 말하지 않고, 쓰지 않으면 나는 또 말할 거다. 제발 주어 좀 생략하지 말아 달라고 말이다. 알아듣고 대답했다고 한들 또다시 명시할게 뻔하다.

답답한 건 못 참는 성격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좀 친절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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