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로 삶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n 20. 2023

주문한 메뉴와 달랐다.

무던한 걸까 답답한 걸까




오징어 덮밥을 시켰다 그런데 제육 덮밥이 나오면?

소개팅을 나갔는데 이성이 아닌 동성이 나오면?

택시 타고 우리 집으로 가자고 했는데 기사 집으로 가면?

아이스 커피 시켰는데 뜨거운 커피가 나온다면?


이런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 할까? 한 유튜버가 이 질문에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오징어 덮밥을 시켰다 그런데 제육 덮밥이 나오면 그냥 먹는다. 맛있으면 되지 뭐.

소개팅을 나갔는데 이성이 아닌 동성이 나와도 그냥 끝까지 한다. 친구라도 사귀지 뭐.

택시 타고 우리 집으로 가자고 했는데 기사 집으로 가면 그냥 간다. 가서 술이라도 먹지 뭐.

아이스 커피 시켰는데 뜨거운 커피가 나온다면 그냥 먹는다. 카운터까지 가는 게 더 귀찮다.


보통 비교적 무던한 성격인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갖지 않을까 싶다. 이 말을 듣는데 나도 그럴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택시 타고 기사 집으로 가는 것만 제외하고 말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가는 동안 얼마나 무서울까 싶은 세상이라 그렇다.




며칠 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니, 종종 그런 일이 있다.

며칠 전에는 카페에서 브런치메뉴로 오믈렛을 시켰는데, 전혀 다른 메뉴가 나왔다. 직원이 재료만 듣고 다른 메뉴로 주문을 넣은 거다. 영수증 확인도 안 한 내 잘못이긴 하지만, 15분이나 기다려 받은 음식을 받고는 황당했다. 분명히 오믈렛을 시켰는데 생각도 안 하고 받은 그릴 샌드위치를 칼로 그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어? 이 메뉴 아닌데?" 하고는 남편 얼굴을 황당하게 바라봤다.  



늦은 아침이기도 했지만, 운동 후여서 단백질 위주로 먹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미 칼로 자른 탓에 고민이 됐다. 손을 대지 않았다면 교환 요청을 했을 텐데, 순간 고민 했다. 그리곤 직원에게 잘 못 나왔다고 노티스를 주고는 그냥 시킨 메뉴를 먹었다. 칼로 자르기도ㅠ했지만, 영수증을 미리 확인 안 한 건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먹는 내내 후회스러웠다.


그냥 바꿔달라고 할 걸, 괜히 먹는다고 했어. 맛없다. 맛없다.


 머리에서 맴맴거리다 못해 입 밖으로 나왔다.


맛없어. 바꿀걸. 이제 여기 안 와.


그 한 마디에 남편은 아까 직원 불렀을 때 바꾸지 그랬냐면서 핀잔을 줬다. 그날 음식을 먹고 결국 1/4 쪽을 남겼다. 기름지고 팍팍해 맛이 없었고, 기대이하라 돈도 아까웠다.




또 하루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 기다리느라 시간을 때워야 해서 책 한 권을 들고 스타벅스에 갔다. 커피 한잔 시켜놓고 두 시간 정도 책을 볼 생각이었다. 카푸치노를 마실까 하다가 못 보던 메뉴가 있어서 주문했다. 이름이 프레첼 캐러멜 프라푸치노였나. 이름만 들어도 달다. 당이 떨어지는 날이라 단 음료가 당겼다. 아무튼 못 보던 메뉴였다.  메뉴 주문을 하고 앉아서 기다리는데 나온 음료의 모습은 세상 낯설었다. 대체 뭐가 다른 신메뉴란 말일까,  신메뉴 음료는 달라 보이는 게 하나 없이 크림 탓에 느끼해 보이기만 했다.




왜 프레첼 프라푸치노에 프레첼이 없나요? 그림이랑 달라요!

혹시 잘 못 나온 건가 싶어서 카운터에 가서  왜 메뉴랑 다르냐면서 질문했다.


사람들이 싫어해서 프레첼을 뺐어요.

돌아온 대답이 황당했다.

그럼 메뉴를 없애던가, 아니면 싫어하는 사람에게만 빼고 줘야 하는 게 아닐까, 답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궁금했는데,


그러니까! 달라고요. 나는 궁금하고 먹고 싶으니까 넣어달라고요!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더 얘기하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라 줄도 길었고 직원도 매우 바빠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 권리를 포기해야 되는 건 아닌데 더 투닥거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주는 대로 그냥 받았다. 생각보다 너무 달아서 몇 번 입만 대고 안 먹어서 남편이 다 마셨다.



스타벅스 지점과 직원의 대처는 누굴 위한 거였을까, 직원의 편리함? 재료 절약 차원? 고객의 취향 일반화? 대체 누구의 시선으로 봐야 하는걸까. 이게 배려인 걸까. 대체 뭐가 먼저인지는 알고 있는 걸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이들에게는 당당히 요구하라고 말하면서, 가끔이지만 나는 그렇게 문제상황에서 손해를 보고 넘기는 때가 왕왕 있다. 지금은 예전만큼 거절을 못하거나 무조건 손해를 보면서 살지는 않는다. 때에 따라 거절도 적절히 한다.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는 요령도 기르고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문제 일으키는 것도 싫어한다. 가능하면 평화롭게 모든 상황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대립구조를 만든 것 자체가 상당히 불편하다. 그러니, 내가 조금만 손해 보면 모두가 평안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자꾸 하다 보니 나는 실제로 손해 보는 입장에 자주 있었다. 누가 물어보면 '괜찮다'라고 이야기하는 횟수가 늘었다. 그럼 그렇게 '속도 좋다'며 나를 착하게 혹은 측은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늘었다. 그렇게 '착한 아이콤플렉스'에 얽혀서 살았다. 거절을 못 했다. 거절하면 누군가 싫어할 테니까 얼굴 붉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렇게 살다 보니 점점 피곤해졌다. 나는 내 일을 뒷 전에 두고 다른 사람 일을 도왔다. 손이 빠르고 일처리 능력이 빠르니까 부탁받는 일도 많아졌다.


뭐 가끔 음식에서 돌 나오고 , 머리카락 나오고, 달걀 껍데기도 나올 수 있다. 벌레가 아닌 이상, 보통 그럴 때는 음식을 먹는 도중에 한쪽에 휴지에 싸서 잘 빼놓는다. 여기 매니저 나오라 그래! 사장 나오라 그래! 의 코스프레는 하고 싶지 않아서 이기도 하다. 또한, 어차피 빼고 먹으면 될 걸 뭐 하러 컴플레인 하나 싶은 마음도 있다. 이럴 때는 음식 다 먹고 계산할 때 언급을 한다. 다음번에는 조심해 달라고 말이다. 한국 음식점 같으면 미안해서라도 쿠폰하나 주거나 다음번에 오면 음료 서비스라도 주겠다고 말하는데, 남아공은 얄짤없다. 그런 서비스? 있는 곳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이야기해 주면 "Sorry"가 끝이다. 그래서 포기하는 면도 있다. 어차피 붙어봐야 나만 속 터지는 심정이다.


그렇다고 한들, 무조건 문제 상황을 피하려고 내가 다 받아들이는 태도는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당당하게 내 요구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당한 컴플레인은 표현해야 상대방도 안다. 내 딴에 배려가 무조건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게 아닌 거다. 이런 에피소드는 일상에서 겪는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일상에서 겪는 일을 통해 다음엔 어떻게 할지 배우기도 한다. 그래서 여자도 사람도 곰보다 여우라고 하나보다.


여전히 관계의 기술, 생활의 기술은 늘어가야만 한다.

필력도 좀 같이 늘었으면,

 



매거진의 이전글 제발 주어 생략 좀 하지 말아 줄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