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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n 21. 2023

앓던 이는 빠져야 시원하다.

해야 되는 일이라면 그냥 해라!





"엄마 이 흔들려요!"

"엄마 이것도 흔들려요!"

"엄마 이것도 또 흔들려요!"


다엘이는 11월 생이다.

현재 나이는 12세. 나는 늘 기준보다 발육이 느린 이유를 늦은 생일 탓 한다. 어디가 모자라거나 문제를 가진 아이는 아니다. 다만, 3월에 태어난 1년 차이 별이에 비하면 '이맘때쯤 이면 이랬어야 하는데'의 기준에 못 미친다. 이런 기준조차 바르지 않다고 생각은 한다. 그 탓에 비교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키도 천천히 크고 치아도 늦게 빠지는 걸 보면서 11월 생인걸 체감하곤 한다.


언제 빠지나 하면서도 때가 되면 빠지겠지 생각했고  치아가 뭐 빨리 빠지는 게 그리 중요할까 싶어 기다리지 않았다. 오히려 다엘이가 "엄마 왜 저는 누나처럼 이빨이 안 빠져요?" 하고 묻는 일이 종종 있어왔다. 그러다가 요 며칠 한 번에 치아가 흔들린 거다. 다엘은 흔들리는 이를 손으로 건드려보고 혀로 밀어도 본다. 한 번에 3개나 흔들리니까 걱정한다.


어머! 다엘아, 그러다가 이렇게
(입술을 오므리면서 쭈그린 채로)
 이빨이 없어지면 어떻게 하지?

농담이다. 이렇게 장난치면 누구는 그런 장난하지 말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겁주기 위한 말이 아니다. 오히려 분위기 전환 시킬 수 있는 말이 된다. 그렇게 말하고 바로 덧 붙여 '농담이야' 하고 안아주면 웃고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농담은 하지 말아야 할까 생각하기도 한다.)




이번엔 요엘 차례다.

올해 8세. 요엘이는 5월 생이다. 굳이 몇 월 생인지 밝히지 않아도 되는데, 위에 다엘이가 몇 월 생인지 적었기 때문에 요엘이도 적어본다.

다엘 은별이 기준에 의하면 6세 후반, 7세 쯤 이미 앞니가 다 빠졌다. 요엘은 몇 달 전 1개가 빠졌고, 이번엔 아래 앞니 오른쪽 이가 흔들거린다. 자기 혼자 흔들거리는 게 아니라서 덜 무서운가보다. 역시 아픔에는 연대가 있으면 두려움이 줄어드나보다. 형은 자기보다 2개나 더 흔들리는 탓에 되려 씩씩해졌다.


 나 이거 흔들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가 뺄 거야!


형이 혼자 빼는 걸 보더니 자기도 혼자 빼 보겠다며 며칠을 버텼다. 그러다 오늘은 종일 신경이 쓰이는지 내게 와서 이를 여러 번 보이며 덜렁거리는 치아를 혀로 꾹 눌러 내밀어 보였다. 언제 빠질지, 밥 먹다 빠지면 어떨는지, 먹다가 삼키면 어쩌나 고민이 되면서도 엄마나 아빠가 빼면 아플 것 같아 참는 중이었다. 그 사이 다엘은 3개 중에 어제 1개를 스스로 뺏고, 또 하나를 오늘 뺏다. 이제 요엘은 자기 치아를 혼자서 빼는 일에 몰입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빠질까? 엄마? 나 이거 내일 빼도 되지?

 그럼. 내일 빼도 되지. 네가 빼고 싶을 때 빼. 엄마는 안 뺄게.


그렇게 안심시키고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 일이 바쁘기도 했고 계속 치아만 들여다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저녁에 회원 목차를 점검해야 하고, 코칭 녹음이 있어 분주했다. 그 사이 내 방에 다섯 번은 다녀갔다. 불편한 모양이다.


뺄까?

아니.

그럼 놔둘까?

응.


왔다가는 5번 중 2번을 같은 대화를 했고, 결국 실을 뽑아 들었다.


그냥 뽑을래.


불편함이 무서움을 넘었다. 잘 생각했다 싶어 얼른 실을 꺼내서 감았다. 치아가 작고 짧아서 잘 감기지도 않았다. 실을 돌돌 꼬아서 덜렁거리는 치아와 잇몸 사이에 끼운다 한들 잡아 뺄 때 미끄러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럼 아플 텐데, 실 감다 뿌리와 잇몸 사이를 건드려 피가 나고 있었다. 이제 피 맛이 느껴지니 결심이 후회되는지 자꾸 우는 소리를 낸다.


하지 말까?

응.

그럼 내일?

응.


결국 못 하고 다시 방으로 갔다.

그렇게 30분이 지났고, 스스로 걸어와 다시 말했다.


빼고 잘래. 안 되겠어.  

변덕이 죽 끓었지만 어떤 마음인지 알기에 아무 소리 안 하고 얼른 실을 감았다. 그리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이지만 심신 안정을 위해 안 아프게 빼주겠다고 약속한 뒤 실을 탄탄히 잘 감았다. 손이 미끄러질까 실을 꽉 잡고 한 번에 잡아당겼다. 성공! 성공이다. 치아가 어디론가 날아가서 몇 분간 찾아야 했지만 잘 뽑혔고, 요엘은 의기양양하게 욕실 세면대로 가서 입을 헹궜다. 그리고 솜을 물었다. 요엘도 시원한지 조금 지혈 후에 방으로 갔다. 몇 분이 지났을까 다시 걸어와 사진 한 장만 찍어달라며 검게 구멍 난 자리를 스마일 입으로 보여주었다. 그렇게 치아 공방전이 끝났다.




앓던 이가 빠지면 시원하다는 말은 예로부터 비유로 전해져 내려왔다. 여러 곳에서 예시로 만나봤다. 아이들이 이가 빠지고 새로 날 나이라 때마다 생각한다.

앓던 이는 빠져야 속 편하지. 그거 미루면 불편해서 못 쓴다. 오늘 요엘이 증명하지 않았나.


해야 할 일이 쌓인다. 결국 해야 할 일 하기 싫다고 놔두면 마음만 불편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하고 싶지만 이것저것 핑계 대면서 '나중에'를 말하는 건 안 하겠다는 것과 같다. 조금이라도 할 마음이 있으면 그냥 하면 된다. 미룰 것 없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뭔가 종일 나를 따라다는 불편한 마음이나 일이 있다면 최대한 빨리 해결하는 게 속 편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은 어쩔 도리가 없겠지만,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보통 나태함이나 소홀함에서 시작되는 일을 해결하려고 애쓰는 경우가 있다. 강한 결심이 필요하단다. 어디 가서 좀 물어보고 오겠단다. 혹은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시간을 조금 달라고 한다. 이런 결심이나 계기를 행위는 불필요한 짐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이럴 때는 그냥 그 짐을 일부러 질 필요 없이 '하겠다'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8세 아이도 불편한 것 보다 잠깐 아픈게 낫다는 교훈을 얻고 편히 돌아가 잠을 청한 것 처럼, 마음에 짐을 끌어 안고 있을 필요 없다. 못할 것 같아도 일단 하고 나면 없던 일 같이 후련해진다. 잠깐의 고통이나 힘든 시간을 버티고 나면 생각지 못한 편안함과 새로운 가능성이 보일테니까.  


그저 원하면 Do.

그리고 해야 한다면 Do.


그냥 하는 거다.

Right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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