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는 용서된다.
요즘 다시 또 정전, 하루 2번 3번 나가기 시작했다. 이번 주는 콤플렉스 전체 두꺼비집 교체 작업을 한다고 하루의 절반이 전기 나간 날도 있었다. 그날은 노트북을 싸 들고 스타벅스로 갔다. 무제한 무료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곳 중 팁을 내지 않고, 커피 딱 한 잔만 시켜서 오래 앉아 있어도 욕을 안 하는 곳은 스타벅스뿐이다. 아니지, 눈치를 안 볼 수 있는 곳 말이다. 가끔, 흑인 직원이 와서 주문하기 전에 노트북을 펼치면 음료 주문 안 하냐고 묻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당연한 질문에도 나도 모르게 "인종 차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이 영적 동물이라는 게 느껴지는 순간인데, 느낌이 쎄 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남아공엔 봄이 성큼인데 집안은 아직 겨울이다. 실내는 여전히 서늘하다. 여름에는 더할 나위 없는 그늘이지만, 봄, 가을, 특히 겨울은 뼈가 시릴정도다. 이제 막 봄이라 춥지는 않지만 바깥의 따스한 햇살이 그리워 밖을 나갔다. 이틀간 집콕했더니 바깥공기가 그립니다. 누가 나한테 그랬다. 선교사라면서 역마살 꼈냐고.
내향형이라 나만의 쉬는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밖에 돌아다니는 거 좋아한다.
몇 달 전, 집 앞에 커피하우스가 하나 생겼다. 종종 들르는 브랜드인데 집 앞에 생길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다.
꽤 정갈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라 공간도 기분이 좋다. 벌써 3개월이나 지났는데 한 번을 가보질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이 언제 한 번 갈 거냐고 물어보던 참이다. 참 이상한 게 차를 몰고 볼 일 보러 다닐 때는 종종 가는 브랜드 가게인데, 집 앞에 생기니까 안 가게 된다.
집에 전기도 끊겼고, 햇살도 그리워 걷는다는 핑계로 커피를 사러 나갔다. 메뉴판을 쭉 보면서 나는 cofee freezo(커피 프리조)를 주문했고, 남편은 ConHielo(콘힐로)라는 메뉴를 주문했다. 내 커피는 스타벅스의 프라푸치노와 비슷하게 얼음을 갈아 커피를 만든 차가운 음료다. 남편이 시킨 커피는 이름도 어렵지만 다른 지점에서 먹어봤던 메뉴다. 쉽게 말하면 샷의 비율만 다른 아이스아메리카노다.
아르바이트 생으로 보이지만, 커피샾을 지키고 있으니 모든 메뉴를 당연히 만들 줄 알아야지. ConHielo(콘힐로)를 시키면서 혹시 몰라 메뉴 확인차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의 대답은 커피와 우유를 섞은 Ice Lette와 같다고 했다. 엥? 아닌데 하면서 그거 Black coffee 아니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일단 블랙으로 달라고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나온 커피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메리카노였다.
"내가 다른 매장에서 먹어봤는데 콘힐로는 이거 아닌데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거예요. 차가운 거." 콘
직원의 대답은 황당했다.
"오! 나는 아직 그 메뉴 주문받아 본 적이 없어서 몰랐어요."
헛웃음이 나왔지만, 속으로 초보인가 싶어 내가 시킨 프리조를 가리키며 이렇게 차가운 음료 담는 잔에 담아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얼음과 함께.
그러자 직원은 내 음료를 갈았던 믹서기를 물에 한 번 헹구고 종이컵에 담았던 뜨거운 커피를 믹서에 부었다.
그리곤 얼음을 꺼내 믹서 안으로 넣으려는 그때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니, 아니! 그거 아니고, 얼음에 커피를 부어요."
뭐지, 내가 장사해도 되겠다. 커피를 주문하러 가서 내가 만들어 먹는 기분이랄까. 어찌 되었든, 남편이 원하는 대로 받아서 먹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남편과 걸어 나오면서 이야기 나눴다.
"초보인가 봐. 그래 뭐 생긴 지도 얼마 안 됐고, 얘네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남편과 달리 나는 생각이 달랐다.
"에이, 말도 안 돼. 메뉴가 있고, 장사를 할 거고 초보라면 메뉴 레시피를 다 적어 놓고 보고 만들어야지. 이거는 그냥 사람 아무나 앉혀 놓고 카운터만 보는 거랑은 다르잖아?"
그랬다. 초보니까 실수한 거는 바로 고치면 됐다. 다음에 그 메뉴를 받으면 이제는 우리가 알려 준 레시피로 만들어서 내어주겠지 생각했다. 주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레시피를 쭉 적어 놓으라고. 실제로 다른 지점 메뉴판에는 아예 레시피까지 적혀있었다.
2 shot + ice + 100ml water
1 shot + 180ml milk + 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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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게 적혀있어서 손님도 메뉴 레시피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직원도 좋고 손님에게도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회사인데 여기는 메뉴판에 레시피가 없어 아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바꿔 놓으면 좋겠다.
황당하긴 했지만 화는 나지 않았다. 그래 초보니까 이해해 주자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번에 갔을 때는 같은 실수는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초보는 실수해도 되니까 '초보'라는 이름이 붙는 거다.
운전도 초보인 사람은 '왕 초보' 혹은 '초보 운전'이라고 붙인다. 능숙해진 사람도 종종 초보운전 스티커를 차에 붙여 놓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가까운 지인이 그렇다. 이유를 물어보니, 혹여나 모르는 상황에서 본인 차에 초보 운전이라는 표시가 있으면 봐준다는 거다. 대부분 사람의 인식에는 초보는 '약자', '봐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일 거다. 초보자는 배우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실수해도 크게 야단 맞거나 문제 삼지 않는다. "제가 아직 '초보'라서 그래요."라고 말하면 용서되는 분위기다.
맞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초보 작가는 아직 배우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실수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초보가 아무리 잘 쓰려고 한다고 노력한다고 하루아침에 고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실수하면 하는 대로 그냥 쓰면 된다.
반면, 초보 입장에서는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애를 쓰기도 한다. 내가 그렇다. 나는 아직도 초보작가라고 생각하고 글을 쓴다. 글 쓴 지 8년, 10년 된 작가들도 아직 초보라고 생각한다는데, 내가 어떻게 초보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영어를 쓰면서 외국에서 살고 있다. 발음도 공부해서 마스터했고 영어 발성 코치로 일한다. 예전에 비하면 어메이징 하게 좋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어디서 내가 영어를 할 때 내 머릿속에는 나는 아직도 초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한 분야에서 10년은 꾸준히 노력하고 일해야 고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이제 글 쓴 지 3년 됐고, 책 쓰기 코치를 시작한 지 5개월이다. 영어 코치로 일하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었으니까 앞으로 7년에서 9년은 초보라고 생각하고 살 수 있을까? (웃음이 난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겁낼 게 없어지기도 한다. 만약, 누가 봐도 초보가 아닌 사람이 초보인 척하며 실수를 무마하려고 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럼 용서가 안 될 것 같다. 그건 양의 탈을 쓴 늑대일 테니까.
초보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다.
한 가지는 초보라는 생각으로 늘 배우는 자세를 갖추고 더 노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한 가지는 초보이기 때문에 실수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너무 겁낼 필요도 없고, 편안하게 내가 배우고 있는 일, 하고 있는 일을 [지속]하면 된다는 거다.
오늘도 초보라는 생각을 잊지 않되 실수가 나더라도 나를 너무 질책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한 편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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