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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Sep 23. 2023

반찬은 엄마다.

엄마는 반찬이 먼저였다.

엄마는 반찬이 먼저였다.



이번 주 월요일, 화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했던 날이다. 수, 목, 금은 월, 화만큼은 아니었지만 운동을 단 10분도 할 겨를이 없었다. 만들고자 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해보지만 내가 느끼는 분주함은 최상 치였다.


이거 하나 끝내면 저거, 저거 하나 끝내면 그거,

그 와중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가족 먹일 반찬이었다.


'반찬데이를 만들까 보다.'


몇 개월간 했던 생각이다. 남아공에 와서 처음에는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이국 땅에서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 자체가 내게는 큰 숙제였다. 엄마, 아내로서 이국 땅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가족들이 고국을 그리워하지 않도록 식탁을 책임지는 일이 라고 생각했다. 매일 틈나는 대로 먹을 반찬이며 음식을 만들었다.  메뉴 고민이 돼서 그렇지 음식을 만드는 게 힘들다는 생각은 거의 안 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집안 살림이 버겁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반찬 만들기, 요리, 청소,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 데 그걸 집어넣고 꺼내서 너는 일도 뭔가가 버겁게 느껴지고 억울한 생각마저 들었다.

 

"한국은 바깥에 나가면 죄다 반찬가게야. 급하면 분식집 가서 아무거나 먹어도 다 밥이지. 그러니까 영양부실 걱정 안 해도 되는데, 남아공에서는 어디 반찬을 사 먹기도 어렵고, 아무거나 사 먹으면 다 튀긴 빵이나 패스트푸드니까 내가 안 할 수 없다!" 


남편에게 푸념하듯 늘어놓은 말은 사실 "남편 니도 좀 도와줘라."는 의미도 섞여있다. 남편은 매우 협조적인 사람이다. 내가 말만 하면 다 도와준다. 말 안 하면 모르는 단점이 있지만, 음식도 자주 한다. 스파게티, 스테이크, 바비큐 심지어 가끔은 계란 볶음밥도 해서 아이들 챙겨준다. 튀김 요리도 나보다 잘한다. 닭강정, 탕수육 튀기기도 선수가 됐다. 짜파게티 요리사만 할 줄 알던 남편이 다 남아공에 와서 기른 실력이다. 닭강정이나 탕수육 소스는 내가 만들어야 하지만,  스파게티와 튀김, 바비큐는 내가 손 안대도 될 정도다. 아이들은 아빠가 만든 스파게티가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맛있다고 한다. 그렇게 잘 도와주는데도 왜 그렇게 버겁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내가 한식 반찬과 국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다들 빵이나 뜯어먹고,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대충 먹을게 뻔하기 때문에 가만있을 수가 없다. 부지런을 떨어 반찬을 만들어야만 한다. 다시 말하지만, 쉽지는 않다. 한국 채소를 살 수 있는 날 요일에 맞춰 장을 봐다가 만들어야 하는 탓이다. 그렇게 가져온 재료는 빨리 만들어야 상하지 않으니 손도 바쁘다.


미친 듯이 바빴던 화요일 저녁,  5시부터 식사 준비를 했다.

콩자반, 콩나물 무침, 시금치나물, 무생채나물, 미역줄거리 볶음, 도라지오이무침, 멸치아몬드볶음 그리고 쌀밥과 미역국까지 한 상 차려냈다. 전부 다 만들고 나니 6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얼른 차려 식탁에 내주고 쌓인 설거지를 그야말로 해치웠다. 보통 반찬을 몰아서 만들고 나면 입맛도 없다. 만들면서 간을 보기도 하지만 그냥 입맛이 없다.

한국에서 해 먹으면 별 반찬이 아닌 것 같은 이 메뉴들은 여기서는 이벤트성 있는 반찬들이다. 특히 미역줄거리와 도라지, 멸치는 한국에서 공수하지 않으면 먹기 힘든 재료다. 한국 마트와 한인 야채상을 통해서 살 수 있지만 계절 식재료로 못 구하기도 한다. 심지어 시금치 콩나물도 아무 때나 사지 못한다. 현지마트에서는 안 팔기 때문에 주 1회 살 수 있다. 한번 만들어 두면 며칠은 돌려가면서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반찬을 한 두 개 만들어 먹을 때는 부담이 안 된다. 여러 개 만드는 날에는 마음이 급해질 때가 있다. 이미 계산해 놓은 오후 스케줄을 다 할 수 있을지가 걱정되는 탓이다. 저녁 스케줄이 늦어지면 잠을 늦게 자게 될 거고, 그럼 다음 날 새벽 기상을 못 할 거라는 생각에 더 조급해진다. 그런 마음으로 반찬 만드는 손은 바쁘게 움직인다. 아이들은 냄새만 맡고도 무슨 반찬인지 맞추기도 한다.  주방을 오가며 간도 본다. 줄을 서서 한 입씩 얻어먹고 "맛있다!"라고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만든 음식 다들 싹싹 먹을 생각에 "그래, 만들길 잘했구나."생각이 드는 시간이다.


친정엄마는 아빠 식사를 위해 항상 냉장고를 꽉꽉 채워놓았다. 지금도 그러실 거다. 국도 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는 끓여 놓는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는 국이고, 다른 하나는 찌개다. 고기반찬도 돼지고기, 닭고기 둘 중 하나는 꼭 있었다. 소고기는 비싸서 가끔 보였다. 학교에서 급식으로 나오는 반찬은 3첩인데 우리 집 식탁은 5첩 이상이었다. 김치만 해도 오이김치, 배추김치, 파김치, 열무김치 등 종류별로 대체 몇 가지인지 모르겠을 정도였다. 거기에 늘 나물반찬도 종류별로 있었다. 결혼하고 출가한 후에 한 번씩 친정에 찾으면 엄마는 온갖 반찬을 다 내놨다.

물론 내가 어렸을 때는 그렇게 식탁이 풍성하지는 않았다. 나를 키우던 시절이 먹고사는 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했다. 제일 싼 나물, 제일 싼 반찬 위주로라도 가지 수를 채워 여러 개 만들었다. 그 이유에서인지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의 성장기 식탁은 늘 풍성했다. 다만, 내가 잘 안 먹었을 뿐.


남아공에 와서 지내던 어느 날 , 둘째 다엘이 물었다.

“엄마 우리는 가난해서 반찬이 3개 밖에 없는 거에요?”

이건 무슨 소리인고. 황당하기도 하고 웃음도 나왔다. 남아공에 오기 전 약 한 달 가량 친정에서 지내면서 할머니 반찬에 만족하던 한식파 다엘의 질문이었다.


엄마는 힘들게 일하는 아빠를 챙겨주느라 늘 그렇게 차려냈지만, 성장기에 있는 오빠와 나를 잘 먹이려고 했을 거다. 그때는 당연한 줄로만 알았는데 엄마는 나보다 더한 슈퍼 우먼이었다. 엄마는 집에만 있지 않았다. 늘 오전에는 일하러 나갔고, 집에 있는 시간은 늘 주방에 붙어있었다. 가족이 먹을 음식을 먼저 다 만들어 냉장고에 채워놓고 나서야 침대에 누워있거나 소파에 기대 있었다. 일하고 들어와 집안 일 하고 나면 다 소모된 체력을 충전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만큼만 해도 엄청 잘하는 거라는 걸 나이 들면서 느낀다. 엄마도 그랬겠지. 바쁘고 힘들지만 가족을 생각하면서 다 해냈겠지. 엄마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다. 반찬을 만들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 반찬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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