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힘은 성경에서 비롯되었다.
가정예배를 다시 시작했다. 아이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대화가 풍성해졌다. 주 1회는 지속하기로 했다. 말만 하다가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매주 금요일 저녁 식사 후에는 1시간씩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2018년, 남아공에 온 뒤로 꾸준히 가정예배를 드렸었다. 매일 식탁에 모여 성경을 한 장씩 읽고 찬양했다. 한국에서 한글을 못 떼고 남아공으로 온 둘째 다엘이 6살 때였다. 7살이었던 첫째 별은 받침은 틀려도 제법 읽을 수는 있었다. 이곳에서 써야 하는 언어는 영어인지라 한국어는 천천히 해도 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무리해서 가르치고 싶지는 않았다. 미주알고주알 말하기를 좋아하고 편지로 마음 표현하는 걸 좋아했던 별이는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많이 적었다. 책 읽기도 좋아했던 별은 내가 책을 읽어주지 않아도 혼자서 책을 읽었다. 때마다 다엘은 혼자 책 읽고 싶은데 읽지 못해서 답답해했다. 그래서 내린 조치가 같이 성경 읽기였다. 한 장을 돌아가면서 읽었다. 어떤 날은 읽는 데만 한 시간도 걸렸다. 싫은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기다려줬다. 은별과 막내요엘은(당시 2세) 주리를 틀며 힘들어했지만, 그 누구도 다엘을 닦달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한국말도 좀 느린 편이고 행동도 느린 편이다. 뭘 먹을지 물어봐도 더 먹을지 물어봐도 "음..."이 먼저 나오는 아이다. 그걸 알기에 재촉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을 함께 성경을 읽고 나서 다엘은 한글을 뗐다. 혼자 책도 읽고 글씨도 쓸 수 있게 됐다. 1년이 지나서 어느새 예배는 이런저런 이유로 흐지부지 됐다. 같이 모여서 성경을 읽지 않았고, 주일 예배로 만족했다.
요즘 들어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불편해졌다는 걸 알아채는 데 좀 오래 걸린 느낌이다. 아이들이 유아세례를 받을 때마다 부모로서 신앙고백을 대신했는데, 충실하지 못한 느낌이랄까,
찬양보다 가요를 더 많이 부르는 아이들, 어느새 BTS와 블랙핑크를 비롯한 K-POP 문화에 친숙해져 있었다. 찬양은 고작 주일 예배 때가 아니면 부를 일이 없었다. 차에서 이동할 때 듣던 찬양도 K뮤직으로 바뀌어 있었다. 가요를 부르지 못하게 한다거나 듣지 못하게 막지 않는다. 원하면 듣고 따라 부르고 춤도 추고 마음껏 하게 둔다. 주 1회여도 같이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몇 달 전부터 지속적으로 들었지만 생각뿐이었다.
며칠 전 시아버님과 통화 중, 아이들 한국 동요 안 가르치냐고 물으셨다. 아이들 찬송가는 가르치냐고도 물었다. 몇 십 년을 고등학교 음악선생님으로 지내셨고, 80대인 지금도 지휘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다.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잠자코 듣는 게 맞다. 한국에 있었다면, 악기며 노래는 아버님께 맡겼을 테니까.
오랜만의 통화에서 동요, 음악, 찬송가에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길어지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만하시지.'
아이들과의 대화에서도, 남편과 대화할 때도, 나와 대화할 때도,
그러니까 3번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었다. 공교롭게 엄마도 아이들 찬양이 녹화된 유튜브 콘텐츠, 가족 찬양하는 유튜브 콘텐츠도 드문 드문 보내줬다. 결국 아이들 찬양, 동요 부르는 소리 녹음해서 보내드리겠다고로 마무리했다.
크리스천이지만, 마음이 없는데 그저 행위를 한다는 것에 위안을 받으려고 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 교육 차원에서는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나 혼자 성경 읽고, 큐티하는 게 아니라 같이 읽고 나누는 것 말이다.
금요일 저녁 예배를 드리자는 말도 나온 지 몇 개월이 흘렀다. 그렇게 흐르다. 안 되겠다 싶어서 공표를 해버렸다. 모여!
결국 남편이 움직여야 하는데, 요지부동같이 느껴졌다. 남편은 별로 맘에 없나 싶어 조용히 내 할 일을 하고 있을 때 남편이 기타를 꺼냈다. 찬송가와 말씀을 프린트해서 식탁에 올려놓고 불렀다. 둘째 다엘과 요엘이 애타게 나를 불렀다.
"엄마 빨리 와요! 예배드리게요."
아이들이 이 시간을 더 기다렸다. 문제는 남편과 나였나 보다.
같이 모여서 찬양을 부르고, 말씀을 읽고 생각을 나눴다. 삶에 빗대서 설명해 줬다. 그리고 던진 질문에 아이들은 대답했다. 궁금한 점을 쉴 새 없이 질문했다. 30분~ 40분 안에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예배는 1시간 반을 넘기고 있었다. 막내 요엘이 졸리다고만 안 했으면 더 했을 것 같다.
단순 예배시간을 기다렸다기보다 말씀과 함께 나누는 부모와의 대화가 고팠던 모양이다. 엉뚱한 질문에 웃음이 터지고,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말씀에 아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이랬다.
* 죄를 짓고 회개했는데 다시 죄를 지으면 천국에 갈 수 있나요?
* 사람을 여럿 죽이고도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나요?
* 이순신 장군은 그럼 천국에 갔을까요? 그 시대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없었을 텐데?
* 그럼 우리는 목숨이 3개인가요? 죄에서 한번 하나님께 구원받고, 예수님이 우리를 우리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니까 한 번 구원받고, 나중에 심판 후에 우리의 영과 육체가 구원받으면 그럼 우리는 목숨이 3개인 건가요? (혼자 해석한 별이의 생각)
* 하나님은 시험을 하실까? 사탄만 시험을 할까?
* 그럼 비둘기는 성령님인가요? 와~~ 비둘기는 다 성령님이다. 설마, 더러운데 ~
복음의 본질, 성경의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아이들의 질문에 웃음이 터지고, 서로의 생각을 듣는 게 즐거웠다. 그 사이 아이들이 많이 자랐다. 내가 자라면서 한번쯤 고민했던 부분들을 아이들도 궁금해 하고 있었다.
내 눈은 이 말씀에서 멈췄다.
"예수님께서는 사십일 동안,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13절)
사십일은 우리의 인생 여정이다.
광야는 우리의 인생이다.
사탄은 눈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내 인생에 찾아오는 온갖 유혹이다. 때론 나쁘게만은 아닌 달콤함으로 찾아온다.
시험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인생의 고난과 역경이다.
그렇다. 인생의 여정과 예수님의 사십일 광야에서의 시험기간이 닮아있다. 이때 예수님은 모든 것은 말씀으로 이겨내셨다. 능력은 오직 말씀에서 나오고, 내가 이겨낼 수 있는 건 다시 돌아 말씀이다.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도 "말의 힘"을 믿는다. 믿음과 확신을 갖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크리스천으로서는 내가 선포하는 말의 힘도 믿지만, Bible에 힘입은 하나님의 말씀의 힘을 절대적으로 믿는다.
단순 예배만 드리고 딱 끝나지 않고 토론과 대화로 이어질 수 있는 장이 가정예배 시간이다. 계속 이어질 거다. 아이들의 성장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