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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Sep 26. 2023

볼링장만 가면 장례식장 분위기

실패에 대처하는 자세 



남아공은 오늘 휴일이었습니다. 해리티지 데이라고 문화유산의 날로 불리는데요. 전통의식, 전통의복을 입고 각 부족들이 자기들만의 의식을 치릅니다.  

모처럼 평일 아이들이 등교를 안 했습니다. 오전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테니스를 치러 가까운 테니스 장으로 향했습니다. 아이들 라켓이 부족해 돌아가면서 테니스를 쳤습니다. 공이 왼쪽으로 튀고 오른쪽으로 튀고 내 몸도 왼쪽 오른쪽 공 줍기 바빴죠. 5 식구가 짝꿍을 바꿔가며 1시간 동안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운동하니 좋더군요. 

본래 운동은 격한 운동을 좋아하는데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가볍게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했습니다.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며 공에 라켓에 잘 맞지 않아 멋쩍어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아이들이 실수와 실패에 연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저도 어렸을 때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못 거두면 속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창피하기도 하고 입이 댓 발 나와 울기 직전까지 갔었지요. 아마도 승부욕과 완벽주의 탓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아이 셋다 그런 저를 닮은 건지 게임할 때도, 스포를 할 때도 원하는 대로 안되면 눈물을 글썽이곤 합니다. 그런 아이들을 잘 다독거려서 키워왔습니다. 


"실패 없는 성공은 없어." 

"다 그렇게 실수하면서 배워가는 거야." 

"엄마 아빠 앞에서는 창피해하지 않아도 돼."

"속상할 수는 있지만 이럴 때는 울기보다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를 얻어가면 되는 거야." 

"엄마 아빠도 처음엔 못했어. 지금도 못하는 게 있어." 


이런 교과서적인 좋은 말들을 해주면서 말이이죠. 그렇지만 저는 뼈저리게 느끼는 말들이라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말이 100% 안 들렸을 수도 있지만, 백번 말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울어! 울지 마."라고 말한 날도 있었지요. 이런 말에 비하면 훨씬 나으니까요. 

오늘도 역시 잘 안되긴 해도 끝까지 얼굴 찌푸리지 않고 1시간 즐겁게 하는 아이들 보면서 짜식들 많이 컸구나 생각했죠. 


1시간이 지나고 점심을 먹고 집에 오려는데 첫째 별이가 제안을 하나 합니다. 


"엄마 아빠, 우리 볼링 치러 가면 안 돼요? 지난번에 저는 못 갔는데, 그 뒤로 간다고 하도 아직도 다 같이 못 갔잖아요." 


즉흥적으로 그래 가자고 말했습니다. 볼링장도 근처에 1개뿐인데 게임 존에 같이 있는 데다 남아공 물가로는 그리 싼 편이 아니라서 늘 고민합니다. 5명이면 꽤 되거든요. 그래도 '모처럼'이라는 전제를 달고 갔습니다. 가기 전부터 내심 제 안에는 '아 오늘 누구 하나 울겠는데.'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볼링장의 무거운 공을 제대로 잘 굴리기에는 아직 아이들에게는 난이도가 낮은 일이 아닙니다. 한국처럼 볼링장이 잘 되어있지도 않아요. 슈즈 대여 이런 것도 없고요. 신발을 신고 하기도 하지만, 맨발로 하기도 합니다. 양말만 신는 게 허락이 안되더라고요. 공도 깨끗이 닦고 쓰는 분위기 아닙니다. 그저 자리가 나서 40~50분 잘 치고 나올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합니다. 


6킬로그램의 공이 1개뿐입니다. 겨우 구했습니다. 다른 팀에서 다 쓰고 있고, 아이들을 위한 공이 없더라고요. 막내 요엘이 하나 구했습니다. 7킬로그램, 9킬로 그램, 11킬로그램, 13킬로그램. 저는 7킬로와 9킬로가 딱 맞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조금 무겁지요. 남편은 왕년에 볼링 좀 쳐서 스트라이크가 꽤 잘 나옵니다. 저는 아주 가끔 나오는 정도고요. 아이들은 닌텐도 볼링만 하다가 실제 볼링공을 잡는 날에는 어두운 볼링장의 조명과 같이 표정도 점점 어두워집니다. 이럴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좋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서 데려왔는데 좌절만 실컷 하는 시간입니다. 

공이 계속 또랑으로 빠져요. 방법을 설명해주고 해 보라고 해도 연속 또랑으로 빠집니다. 공을 던지고 창피한 듯 얼른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봅니다. 겸연쩍어 뒤통수를 긁기도 하죠. 고개를 푹 떨구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얼굴로 자리로 돌아와 앉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계속해서 아이를 데리고 워킹부터 시작해서 공을 굴릴 때 팔의 방향이나 모양을 설명해 주며 시범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과정에서 어떤 자세로 던지든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저 공이 굴러가 핀을 몇 개라도 시원하게 쓰러뜨리기만을 바라면서 공을 굴립니다. 그러나 자세가 틀어지면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열에 여덟은 다 또랑으로 빠지던가 옆으로 새서 2핀 3핀 정도밖에 못 쓰러뜨리니까요. 엄마 아빠가 스트라이트가 나오면 더 시무룩해집니다. 누가 보면 아이들 못 친다고 야단치는 줄 알 거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설명해 줘도 별로 듣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으니까요. 잘하고 싶겠죠. 높은 점수를 내고 싶을 겁니다. 결국 아이들은 낮은 점수로 20번의 공을 굴리고 끝났습니다. 눈물이 찔끔거리다 못해 흘러나와 안경에 묻은 둘째 다엘을 보고 있자니 짠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다 그랬으니까요. 글을 쓸 때도,  영어 공부를 할 때도, 악기를 배울 때도, 운동을 배울 때와 학교 공부를 하나씩 배워 갈 때도, 운전을 배울 때도, 그 어떤 새로운 기술을 익혀나갈 때도 마찬가지로요. 


신기한 건 막내 요엘은 몇 달 전에 볼링 치러 갔을 때 눈물까지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공이 핀을 몇 개라도 쓰러뜨릴 때는 기뻐서 폴짝거리면서 조금이라도 해낸 것에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반대로 다엘은 지난번보다 더 못 쳤기 때문에 속상해하고 있었지요. 요엘의 모습을 보면서 신기했습니다. 지난 실수의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는 크게 좌절하지 않는 듯 보였으니까요. 크게 나아지지 않았어도요. 남편과 저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면서 다독 거린다고 사설이 길어졌습니다. 점심으로 햄버거를 하나씩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썩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듯 보입니다. 다 먹고 나서야 조금 기분이 풀린 듯 보입니다. 다음번에는 이번 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마무리 지었습니다. 


인생에서 만날 수많은 역경과 시련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 맞이할 숱한 난관이 있을 겁니다. 지금도 진행 중이고요. 그러나 실수는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나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테고, 더 성장할 테고, 더 좋아질 날만 남아있다고 말이지요. 

우리의 뇌는 내가 하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을 내 귀가 계속 듣고 있어요. 긍정적인 말과 도전적인 자세가 내게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줄 겁니다. 그리고 그 기회 안에서 내가 어떻게 더 노력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겁니다. 

볼링장에 다녀올 때마다 침울한 분위기지만, 아이들은 이 시간을 통해서 성장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단순 볼링의 기술뿐 아니라 상황을 대처하는 태도도요. 


아이들에게 미처 낮에 해주지 못한 말이 기억납니다. 내일 해줘야겠어요.


너희는 수영도 못했는데, 지금 학교 선수로 활동하잖니. 기억 안 나니? 

수영장 물에 빠져서 허우적 대며 물 먹고 터득한 수영법을, 그걸 기억하렴. 

뭐든 넘지 못할 벽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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