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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Dec 24. 2023

외국에서 겪는 왕따 문제

결국 관계는 혼자 해결해야 한다. 



오늘 처음 들었다. 지난 8월에 있었던 이야기를 오늘에서야 들었다. 

별이랑 저녁에 잠시 산책을 했다. 약 40분 돌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 이야기가 나왔다. 예전에도 한 번 말한 적 있었는데 그때 나는 "친구 관계는 원래 다 그런 거야. 그렇게 인간관계를 배우는 거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 이후 친구에 관한 특별한 말은 없었는데, 오늘 들은 이야기에 화가 나서 순간 그 엄마에게 연락까지 할까 충동을 느꼈다. 


별은 남아공에 와서 학교 다니며 한 학년씩 올라갈수록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또한 저학년에서 친해진 친구와 6년째 관계를 잘 유지해오고 있다. 한 친구 무리가 6명이 있는데 남아공 현지인 3명, 탄자니아인, 인도인 그리고 별이는 한국인으로 구성된 친구다. 여러 인종이 섞여있기도 하고, 무난하게 잘 지내는 친구 사이 늘 감사했다. 별이는 모난 아이가 아니라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고, 선생님들에게 모범적인 아이로 칭찬받는다. 학년 선생님마다 별이가 똘똘해서 심부름도 잘 시키고, 늘 학년 평가에는 교우관계가 좋고 리더십이 있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특별활동에서도 별이가 빠지면 선생님들이 서운해할 정도로 나에게 따로 연락 와서 그만 두지 못하게 설득해 달라고 했던 경우도 몇 차례 있었다. 나는 별이가 학교 생활을 무던하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학창 시절도 그랬다. 무던하고, 조용하고, 친한 무리의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냈다. 가끔 결이 맞지 않아서 관계가 힘들기도 했지만 크게 관계가 틀어지는 일은 없었다. 오해를 사서 억울했던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친구 관계를 끊거나 억울한 감정을 당당하게 표출하지도 않았다. 억울해도 내가 미안하다고 했던 경험이 더러 있었다. 좋은 친구들이 주변에 항상 있었고, 중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단짝도 있었고, 무리도 있었다. 



별이 말에 의하면서 조디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자꾸 문제를 일으킨다고 했다. 6명이 같이 있다가 한 명이 자리를 비우면 그 친구 욕을 한다는 거다. 별이 역시 당했었고, 더 친한 친구들을 통해서 전해 들었다고 했다. 이런 일은 워낙 비일비재해서 그러려니 한다며 말이다. 뭐, 아이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성격, 저런 성격,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그 안에서 인간관계를 경험하면서 관계성이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내 머릿속에는 '조디 녀석 맹랑하네.'라는 생각 정도만 있었다. 체구도 워낙 작고, 말도 엄청 잘하는 아이라 당찬 모습이다. 우리 집에도 몇 차례 놀러 왔고, 학교 행사에서도 보면 잘 지내는 모습이었다. 

 

몇 달 전, 이나야 엄마에게 연락이 왔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조디 이야기가 나왔다. 조디가 불링, 그러니까 왕따 만들기를 해서 이나야가 속상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가 조디와 이나야의 이야기 인 줄로만 알았다. 결국 엄마들끼리 이야기에 나섰고, 그 사이에서는 다른 친구들과 다 한 번씩 트러블이 생겼는지 관계를 끊었네 말았네 하는 말도 들렸다. 별도 중간에 이나야와 조디 이야기를 나에게 했었고, 제나와 조디 이야기도 해줬었다. 그 말만 들어도 문제의 중심에는 조디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가 한국인이라서 특별한 줄 아나 봐. 학교 끝나고 태권도 간대. 무슨 태. 권. 도! " 


이런 말도 별이 안 들었으면 모르는 데 들릴 만한 거리에 있었던가보다. 뿐 아니라 별이 조디의 말을 다른 친구들에게 옮긴다고 말이 돌기 시작했단다. 별의 말에 의하면, 조디가 엄마가 이나야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부탁을 했단다. 이나야에게 자기 말을 전해달라고 했고, 이나야에게 조디 말을 전하자 이나야도 별에게 조디에게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는 거다. 자기는 말을 전한 거는 그것밖에 없고 좀 억울했다며 말했다. 이건 새우등이 터진 것도 아니고 터지다 못해 더듬이까지 다 뜯긴 격이었다. 그때쯤 조디 엄마에게 음성메시지를 2개 받았다고 했다. 그리곤 내게 들려줬다.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별에게 "Stop doing that!"을 외치며 그만두라고, 당장 지금 행동을 그만두지 않으면 너희 부모에게 알리겠다는 반 협박 메시지였다. 흥분한 목소리, 꽤 빠른 속도로 입에 힘을 줘가면서 말하는 게 느껴졌다. 약 2분 정도 되는 2개의 메시지를 듣고 화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별이 여기저기 말을 다 옮기고 다녔고, 문제를 일으키면서 조디를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마치 별이 왕따짓을 벌였다는 듯한 메시지였다. 


"너 왜 엄마한테 말 안 했어? 이런 일이 있었으면 엄마한테 말을 했어야지! " 

"엄... 엄마가 친구들 사이에는 이런 일 있을 수 있는 거라고 했었어서요. 그냥 그러는 줄 알았어요." 


이 말을 듣는데 아차 싶었다. 내가 당시 좀 더 무슨 일인지 자세히 물었어야 했다. 아니, 별이가 설명을 했는데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너, 그 엄마가 너한테 그렇게 말했을 때 뭐라고 했어?" 

"그냥, 미안하다고 했어요."

"왜 네가 한 일이 아닌데 억울하지 않았어?" 

"억울했죠. 근데..." 


얘가 뭘 할 수 있었겠나 싶다. 나는 그런 친구랑 놀지 말고도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만날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나에게 선한 영향력은커녕 아픔을 주는 사람과 굳이 같이 붙어 있으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다 안다. 별이가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라는 걸, 나도 안다. 


"별아, 가서 이야기해도 돼.  도저히 못 참겠을 때는 "나 네가 내 이야기 나쁘게 하고 다니는 거 다 알아. 자꾸 이렇게 나에게 대해서 안 좋은 이야기 할 거면 나 너랑 친구 안 할 거야."라고 이야기해도 돼. 엄마는 너 속상한 거 싫어." 

또 이런 일, 어른이 개입하는 일이 생기면 엄마한테 반드시 이야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 엄마의 목소리톤과 말투, 내용이 자꾸 귀에 맴돌았다. 당장이라도 연락해서 뭐라 따지고 싶었지만 이미 8월의 이야기다. 별이 이야기를 들으며 혼자 머릿속으로 따져 물을 영어 문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근데, 조디가 자꾸 와요. 같이 놀자고. 다른 친구 중에 조디랑 관계 끊은 친구도 있는데, 단톡방에서 나갔거든요 아예 걔네들은, 저랑 따로 연락해요. 암튼 그 친구들 다 그렇게 관계 끊는데 저까지 관계 끊으면 조디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그냥 저는 잘 지내려고 해요." 


이게 심한 학교 폭력으로 이어진다면 부모의 개입과 교사의 개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돌아가는 상황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디와 이나야 엄마가 어떤 문제로 이야기를 하게 됐고 어른들 사이에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던 듯 보였다. 또한 조디는 별이 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 이야기도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중립을 지키느라 어느 편도 들지 못한다고 했다. 그 말만 들어도 대충 어떤지 그림은 그려졌다. 


별이가 다시 또 말했다. 


"엄마, 내가 그리고 얼마 전에 꿈까지 꿨었는데  조디가 이사를 가는 꿈 이었었거든요. 그래서 꿈에서 편지를 썼어요. 조디가 이사할 동네 학교 친구들한테요. 조디가 이런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잘 지내라고요." 


이 말을 듣는데 별이가 오죽했을까 싶은 마음이 들면서 엄마로서 살짝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나는 걔랑 놀지 말라고 했는데 별이는 조디 입장도 헤아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별이의 억울함을 누르고 친구로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가 이 아이의 아량을 넓게 만들어 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살다 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만나기 마련이다. 나도 그래왔고, 모든 사람이 그런 관계 속에 살아간다. 초등, 중고등, 대학까지 통틀어 어떤 사람을 만나봤든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별과 대화를 나누면서 별에게 고마웠다.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과 내가 애써 상처받아가며 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게 없으니 말이다. 관계에 전전긍긍했던 경험도 있어봤기에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은 그냥 그런 친구도 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당부했다. 더 힘들 경 우에는 그 친구 챙기지 말고, 별이 네 마음을 챙기라고 말이다. 


남의 나라에게 와서, 그것도 그 학교에 한국 사람이라곤 삼 남매뿐인데 큰 탈없이 잘 적응해 준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할 일이다. 좋은 사람 붙여주시고, 어딜 가든 평화의 도구가 되도록 해달라는 기도가 고스란히 별이의 삶에 가득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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