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ug 18. 2021

막히면 뚫어야지, 피하면 쓰나.  

어? 이사 가야겠네?



맙소사.

하수구가 역류했다. 다행히도 집안이 아닌 주방 바깥 하수에서 흘러넘쳤지만, 하수 위로 가득 올라온 거품과 음식 찌꺼기를 보는 순간 기함했다. 우리  주방의 싱크대는 주방 외벽을 타고 아래 하수로 흘러간다. 주방에서 내려 보내는 음식물 찌꺼기와 설거지  일어난 거품은 눈으로 확인은 되지 않지만 외벽 아래의 수도에서 소리가 들린다.   전부터 싱크대에 붙어 있는 배관이 막혔는지 물이 천천히 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역류했다. 그럴 때마다 뚫어뻥이 없어서 배관 청소 가루를 부어 놓고 코가 썩어 들어가는 냄새를 피해 잠시 멀리 떨어져 있곤 했다.


"에휴, 이사를 가야 돼. 이거 우리가 뚫는다고 뚫어지지도 않고! "


월세 사는 세입자로서 불편 사항을 주인에 이야기하면 사람을 보내서 고쳐주지만, 문제가 있을 때마다 연락을 하는 일도 가끔은 일처럼 느껴져서 싫다.  임의로 고쳐서 살기도 하고, 우리 선에서 해결안되면 연락한다. 지금 사는 집은 우리가 살게   4 만에 주인이 바뀌었다. 새로 만난 집주인과의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인 지금은  문제를 말하기도 조심스럽다. 아직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아. 새로 집 계약하지 말고, 이사를 가야 된다니까?"


우리 마음대로 이사가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집들 중에서 지금 사는 집 위치나 렌탈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여기 있는 게 우리 형편에는 가장 낫다.  더 저렴하면서 좋은 집을 고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마음은 더 나은 환경으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역류해 넘친 음식물 찌꺼기를 청소하면서 중얼거렸다. 다음 날 아침까지 놔두면 내려가겠거니, 일단 잠을 자고 다음 날 보기로 했다. 아침에 되었고, 역류했던 흔적과 하수 위의 쇠창살 바로 밑까지 찰랑이는 구정물이 보였다.


"아... 이거 사람 불러도 못 뚫어, 어떻게 뚫어? 이거 땅 다 파내야 되는 거 아니야?"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지도 모른  걱정이 먼저 앞섰고, 해결할  있는 방법은  집을 떠나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둥둥떠다녔다. 구시렁거리는  목소리를 들은 남편은 마스크를 하고 철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 콤플렉스를 관리하는 가드너가 들어왔다.  목소리와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느릿느릿가서 커다란 쇠로 된 뚫어 뻥을 가지고 왔다. 내가 알던 고무 뚫어뻥이 아닐뿐 아니라, 아무리  나라를 돌아다녀도  어디서도   없었던 다란 쇠뚫어뻥이었다. 나와 남편은 무슨 나라에 뚫어 뻥도 없냐며 투덜거렸는데, 없는  아니었는 모양이다.


뻥!

여하튼, 가드너의 몇 번의 펌프질 끝에 하수구는 뚫렸다. 언제 막혔었냐는 듯이 시원하게 뚫렸다.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해결됐다. 바닥을 드릴로 파지 않아도 되고, 다른 복잡한 방법 필요 없이 원초적인 방법으로, 그것도 한두 번의 펌프질로 해결됐다.


'아... 나 현실 도피형인가? 나 여태까지 세상을 이런 식으로 살아왔었나?'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 조금 놀랐다. 여태까지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나는 평화주의자며, 문제 해결력 또한 낮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뭐 그렇게까지 또 생각할 필요 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순간 들었던 현실 도피 형적인 태도가 맘에 안 들었다. 막히면 뚫어야지, 해결이 안 될 것 같으니 이사 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은 그저 이 집이 맘에 안 들어서였을까로 돌아왔다. 조금 더 보태자면 머리카락으로 자주 막히는 욕조 하수구, 석회가 많은 이 나라 물로 인해 석회가 굳어서 하수구 아래를 막고 있는 세면대, 음식물 찌꺼기로 막혀버린 싱크대까지 4년 동안 버티고 사는동안 쌓였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순간에는 그런 것들을 다 핑계일 뿐이며, 내 사고방식에 대한 회한이 밀려왔다.




살면서 숱한 문제에 봉착한다. 두 가지 갈래길에서 혹은 서 너 개의 갈래길일지도 모르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인생길에서 A로 갈지 C로 갈지 고민하는 지금은 어쩌면 그냥 다 놓고 숨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흘러가는 대로 놔두면 알아서 가려나,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맞지만, 누가 좋은 길로 좀 알아서 인도해줬으면 하는 놀부 심보가 내 안에 가득한 것 같다.


문제가 생기면,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게 가장 빠른 길이다. 좀 더 고상하고 우아하게 문제를 해보겠다며 다른 길을 찾다가는 시간, 돈, 에너지가 곱절은 낭비되는 일도 있을 수 있을지 모른다.


막히면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만, 때로는 막힌 거 그대로 두고 돌아갔다가는 오물을 그대로 방치해서 썩은내가 날 수도 있다. 막히면 돌아가라는 말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곳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히면 그냥 뚫어야지, 피하면  쓴다.

 

 


작가의 이전글 지나친 관심은 자제합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