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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Nov 07. 2023

태웠고, 또 태울 뻔했다.

치매 걱정은 눌러 둬



대체 이놈의 정신머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공사다망해서가 아니다. 주의력이 떨어지나? 집중을 못하나? 

언제부턴가 자꾸 잊어버린다. 특히, 주방 가스스토브에 올려놓은 냄비를 너무 잘 잊어버린다. 2주 전에도 콩나물 북엇국에 두부 넣고 팔팔 끓여 먹고 5분의 1 남은 국을 홀랑 태워먹었다. 바닥이 다 타서 두부의 윗머리만 하얗게 드러나있었고, 바닥은 전부 시커멓게 타있었다. 노란색 북어는 마치 불 끄러 들어갔다 온 검게 그을린 소방관의 얼굴 같았다. 그때도 가족들 모르게 처리하느라 애썼지만, 결국 몸에 배고 주방에 베인 탄 냄새 때문에 냄비 숨겨봤자였다. 이제는 탄 냄비 닦는 요령도 생겼다. 탄 냄비는 물을 담아서 한 이틀 방치한 후에 철 수세미로(스테인일 경우) 닦으면 깨끗하게 닦인다. 


이래 봬도 기억력 좋기로 소문이 파다했다. 뭔가 기억해 내야 할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나에게 와서 자주 물었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내게 와서 묻는 2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이 알쏭달쏭할 때 와서 확인할 겸 묻거나, 진짜 기억이 안나는 일을 묻는 거였다.

또 다른 하나는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일이었다. 꽁꽁 묶인 끈을 시간이 걸려도 차분하게 다 풀어서 주곤 했다. 목걸이도, 운동화 끈도, 끈이란 끈은 잘 푸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끈을 열심히 풀어주다 보니 다른 사람 문제도 풀어주는 중간 다리 역할도 하게 됐었다. 그럴 때마다 내 인생도 좀 술술 풀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염원덕이었는지, 글 쓰면서 마음을 술술 풀면서 살고 있기는 하다. 

아무튼, 기억력 하면 10년 전 친구가 쓰던 휴대폰 번호를 기억할 정도로 좋았던 내가! 그랬던 내가! 

요즘 왜 이렇게 깜빡거리는 건지 무서울 정도다. 이러다 치매가 오면 어쩌나 싶은 겁도 난다. 


지난주 저녁 아이들 학교에서 콰이어 어워드가 있었다. 삼 남매 모두 합창단 멤버라 합창단 퍼포먼스 및 상장수여식에 다녀왔다. 저녁에 2시간이나 비웠으니까 해야 될 일에 마음이 분주하기는 했다. 다녀와서 혹여나 국이 또 쉬어버릴지 몰라서 데워놓으려고 전기스토브를 켰다. 다른 주변 정리를 하고 비가 와서 추워 포트에 물을 담고 끓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굴을 살짝만 데워 놓겠다는 생각이었다. 

팔팔 끓은 물을 보온병에 옮겨 담고 컵하나를 챙겨서 방으로 왔다. 그리고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날도 춥고 따뜻하게 차 한잔 하면서 몸을 녹였다. 피드백도 하고, 정리도 하고 한 30분쯤 지났을까,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물었다. 


"뭐 잊은 거 없어?" 

"뭐? 나 잊은 거 없는... 데..... 어머!!!" 

그제야 스토브에 올려둔 국이 생각났다. 얼른 주방으로 갔다. 

"내가 미쳐. 진짜, 내가...... 미쳤나 봐." 


떡만둣국 끓여서 먹고 조금 남은 거 다음 날 아침에 먹일 생각이었는데, 다 졸았다. 국물은 다 졸아서 없고, 떡은 몇 개 바닥에 붙어 있는 채로 눌렀고, 만두만 덩그러니 한 개 남아있었다. 그 몰골을 보는 데 실소가 터졌다. 


"미쳤나 봐. 진짜. 미쳤어......"

"아, 나 치매 오면 어쩌냐. 우리 친할머니 치매로 돌아가셨는데."


한 대 걸러 유전력을 발휘한다는 말을 어디서 들어서 은근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면 치매 예방이 된다고 했다. 그럼 나는 그 방면으로는 글 쓰기나 손으로 하는 잡다한 일을 잘하기에 예방력으로 치면 절대 걸릴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되기 시작한 건 자꾸 깜빡거려서이다. 


나는 내가 멀티태스킹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뇌는 한 번에 2가지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2가지 일을 오가면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은 있다고 말이다. 한 번에 2가지 아니, 3가지도 할 수 있다고 자부했는데, 요즘에는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그래서 한 번에 한 가지 일에 몰두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깊어진다. 


냄비 올려놓으면 식탁 근처에서 좀 진득하게 앉아있다 올라와야겠다. 아니, 타이머를 꼭! 맞춰야겠다. 정신이 번쩍 들도록 말이다. 어떤 걱정거리가 있으면 무조건 걱정만 하지 않기로 했다. 그 걱정을 해결하기 위한 방도를 마련하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좀 걱정도 누그러들었다. 


소리 큰 주방 전용 타이머를 저렴한 걸로 하나 사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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