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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Nov 16. 2023

사고쳤다.

내적 귀인과 외적 귀인의 좋은 예.





부웅! 우우웅우우우웅!

"어? 왜 안되지?"

"Hello. (손을 흔들며) Your car scratched!"


운전석 창문밖으로 직원이 나와서 나에게 손짓하면서 알려줬다. 귀가 바짝 서는 느낌이 들었다.

맙소사. 큰일이다.


남편이 일 보러 나가고 혼자서 맡겨둔 어린이집 가방을 찾으러 갔다. 빈민촌 어린이집 입학 선물로 나갈 가방을 로고 프린팅을 위해서 맡겨둔 상태였다. 오후에 나온다더니 생각보다 일찍 나왔다. 오후에 남편이랑 같이 가서 잔금을 지불하고 가져올 생각이었다. 남편은 늦을 것 같다며 나보고 혼자 애들 패치한 후에 찾아오라고 했다. 잔금은 이체하겠다고.

씩씩하게 갔다. 뭐 이제 혼자서 운전하고 가까운 거리는 다닐만하니까 겁날 일도 없었다. 아주 솔직하게 살짝 걱정이 되기는 했다만, 커브를 돌아 들어가는 길이 기억에 가물거렸던 탓이다. 네비 없이도 갈 수 있는 길이지만 그 앞쪽에서 공사를 하는 길이라 조금 마음에 걸렸다.

우려와 달리 부드럽게 진입했고, 게이트 안쪽으로 차를 댔다. 문제는 빠져나와야 할 때였다.

이미 들어갈 때부터 "어? 이따가 나올 때 후진으로 나와야 하나? 차를 안에서 돌릴 공간이 될까?"를 혼자 웅얼거리며 들어가긴 했었다. 물건을 받고 인사를 나눈 후, 차를 돌려 나올 때가 되자 후진으로 돌려 나와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용감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무식한 생각이었다.

차를 돌릴 공간이 안 됐다. 왼쪽에 있던 낮은 벽돌담 때문이었다. 5개 정도밖에 안 되는 1미터 남짓 되는 커브형 담이었다. 딱 자동차 한 대를 댈 수 있는 공간, 그 벽과 자동차 사이는 운전자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 되는 거리였다. 오른쪽에 다른 차 한 대가 있었고, 뒷 공간으로는 차를 돌릴 수 있겠단 판단에서였다. 아마도 그 간이 칸막이 같은 담이 없었다면 차를 돌릴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됐을 거다.

그건 내 생각이고, 현실을 달랐다. 차를 돌리겠다는 마음을 먹고 후진 한 뒤 핸들을 돌렸을 때는 이미 스턱 된 상태였다.

웅웅웅 소리만 날 뿐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차를 빼는 모습을 보고 있던 여 직원과 남 직원은 그제야 달려와서는 창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나보고 후진으로 나가라고 손짓했다.


"뭐야, 진작 좀 봐주지. 아. 어떻게 하지."

뒤에 타고 있던 삼 남매가 웅성 거렸다.

"아빠한테 혼나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해요?", "많이 긁혔나?"

나는 덤덤한 척 직원에게 "It's fine. I will check!" 한 마디 던지고 나왔다.


집에 오는 길 뭐 얼마나 스크래치 났겠나 싶은 생각 반, 많이 긁혔으면 어쩌나 반 생각에 걱정스러웠다. 차 흠집정도야 수리하면 된다지만, 돈 들어갈 일에 심란해졌다. 그냥 놔둘 성 싶은 마음이 더 많이 들었아. 이미 그 위에도 오래전에 남편이 만든 잔 흠집이 있었다.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헉 소리가 나왔다. 왼쪽 아래 범퍼가 갈리다 못해 찍힌 부분까지 있었다. 내 마음도 찍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차를 찍어 남편에게 전송했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 말이 가관이었다.

(애칭이 낯간지러워 블러처리) 


차를 긁었다고 차를 사달라니,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농담 반 진담 반 던진 것 같은 말 뒤로 다른 차와 부딪힌 것도 아니고, 내가 다친 것도 아니니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말에 은근히 심쿵했다. 그래 다른 차랑 부딪혔으면 보험 처리해야 했고, 내가 다쳤다면 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다음 날 남편과 외출하면서 다시 차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왜 거기 낮은 담이 있는 걸 알기는 했는데, 왜 거기다가 담을 만들어 놨대. 울타리 따로 있는데 말이야."

"아니, 말이야. 그 직원은 내가 차 빼는 거 봤으면 와서 좀 봐주든가! 왜 봐주지도 않고 나중에 스크래치 났다고 알려주고."

"아니, 차는 왜 이렇게 약한 거야!! 응! 그렇게 한 번 스턱 됐다고 긁혀 벽돌에? 뭐 이래 약해?"


혼자서 쉬지도 않고 흥분해서 쏟아내는 내 말을 들은 남편이 웃으면서 말했다.


"주선아, 원래 차는 다 그런 거야. 우리 차라서 약한 게 아니고, 다 그렇게 하면 긁히지. 크크크."


시시콜콜하게 농담 따먹기 하듯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지금 내가 잘못한 일의 원인을 밖에서 찾고 있구나. 이게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외적 귀인"이라는 걸 몸소 느끼고 있었다. 내가 판단을 잘했다면 차가 긁힐 일도 없었을 거다. 이건 "내적 귀인"이다. 그러니까,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해서 남 탓, 외부요인을 탓하는 걸 외적 귀인이라고 하는데 나는 지금 외적 귀인에 대해 늘어놓고 있었던 거다.


살면서 종종 이런 반응을 보인다. 내가 좀 더 주의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을 도처에서 만난다. 그럴 때마다 내적귀인을 너무 많이 서서 내 탓을 많이 하면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난다. 그렇다고 자꾸 외적귀인을 쓰면서 남 탓을 많이 하면 불만이 쌓이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긴다. 어쩌면 대상도 뚜렷하지 않은 외부 요인을 하나 둘 끓어 들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날은 급기야 "남편이랑 같이 갔다면 차는 안 긁혔을 텐데."라는 마음까지 들었다. 자동차 스크래치 가지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그렇게 움직였다.

내적 귀인이든  외적 귀인이든 잘 써야 한다. 마음 가짐이 바르게 되어 있어야 글 쓸 때도 바른 글이 나온다. 관계를 맺을 때도 옳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상처 난 차를 가지고 가지고 다는 게 전혀 창피한 건 아니다. 거기 말고도 앞 뒤에 또 있다. 다만, 나중에 중고로라도 팔아야 하는데 차 값이 떨어질 것을  생각하니 못내 마음이 아팠다. 이게 내가 진짜 마음 쓰린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까지만 생각하고 훌훌 털었다.

상처 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보다 상처 난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게 백 번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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