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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Oct 12. 2023

빵집 청각장애인 청년

 진짜 의사소통의 문제 



새로 생긴 빵집을 발견했다. 

남아공에서는 베이커리 하나 생겨도 큰 흥미가 없다. 

한국에서 맛봤던 형형색색의 다양하고 달콤 쫍쪼름한 풍미가 넘치는 빵 맛은 여기서 잘 느낄 수 없다. 

발효된 빵이나 건강빵 종류도 많지만, 거기서 거기다. 가끔 아주 달콤한 생크림이 듬뿍 들어있는 빵을 한입 가득 베어 물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는 날이 있다. 그런 날 생크림 빵을 눈 씻고 찾아봐도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빵은 살 수가 없다. (어디 있는지 아는 분 있으면 저 좀 알려주세요) 

 

며칠 전 아이들과 함께 피자를 먹고 나오는 길에 옆에 새로 생긴 가게를 봤다. 카페였다. 직접 빵을 구워서 파는 곳이었다. 직원들이 비교적 나이가 어려 보였다. 흰색 제빵사 옷을 입고 카운터에 한 백인 청년이 서있었다. 우리 5 식구가 우르르 들어가자 약간의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소를 보이며 "헬로 하와유?" 인사를 건넸지만,  살짝 눈인사만 할 뿐 주문받을 자세로 서있었다. 

빵 진열 선반의 바구니 안에는 사우어도우 로프와 통밀로프, 호밀로프가 있었다. 그 위에는 투명한 망이 곱게 덮여 있었다. 테이블 딱 3개 들어갈 정도의 작은 카페 내부를  훑어보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카운터 옆 빵 진열장 유리 앞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이곳 사람들이 즐겨 먹는 파이가 진열되어 있었다. 결국 그냥 나오기는 그래서 좀 더 둘러봤다. 유리 진열장 위에  담긴 작은 브라우니 조각, 그 옆에 일 있는 치즈 스콘이 눈에 들어왔다. 각각 1개씩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하려는데, 요엘이 초콜릿 쿠키도 먹고 싶다고 말했다. 추가로 한 개 주문했다. 이제 나오려는데  남편이 아이스커피를 마시겠단다. 아이스커피도 주문했다. 


주문을 받는 직원이 잠시 몸을 돌리자 귀 뒤에 꼽은 보청기가 보였다. 순간 아차 싶었다. 그걸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을 더 또박또박하고 있었다. 보청기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니 청년이 왜 유심히 나를 바라보았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주문을 하는 동안에도 내 입모양을 보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말을 더 또박또박하면서 손가락까지 동원해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보청기를 꼈으면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상태라는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몸이 그렇게 반응했다. 단, 목소리는 키우지 않았다. 


의사소통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진짜 의사소통은 다른데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자 검은색 제빵 유니폼을 입은 백인 여자 직원이 안에서 빵을 만들다가 나왔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어떻게 만들길 원하냐는 거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일반 카페에서는 '아아'를 모른다. 한국 공용어인 아이스아메리카노의 줄임말을 모른다는 사실에 처음에 깜짝 놀랐다. 그런 메뉴가 아예 없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그 탓에 일부 한국인들은 맥도널드 카페며, 일반 카페며 찾아가서 '얼음 + 커피 + 물'을 넣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그리고 꼭 한 마디 덧 붙인다. "이게 한국에서는 아아 라고 불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예요"라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먹겠다는 의지가 가상할 정도다. 

일반적인 메뉴에는 Iced coffee가 있는데 여기에는 우유가 들어간다. 미리 물어보지 않고 Iced coffee를 시키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기대했다 급 실망할 수 있다.  역시 이번에도 메뉴에는 없었다.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 제조법을 알려주자 한 컵 가득 담아서 가지고 나왔다. 여직원은 가게 메뉴판에 메뉴를 추가해 놓겠다고 했다. 그 후 한마디 덧붙였다. 

"사우어 도우 좋아하시나요? 그럼 또 오세요." 

또 오겠다고 약속하고 뒤 돌아 나왔다. 뒤돌아 나오는데 뒤에서 남자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Thank you have a nive day."

다시 뒤 돌아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You too."


인식하는 것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인식하지 못했을 때 몰랐던 걸 알아차리면 태도가 달라진다. 그게 배려로 나타나기도 한다. 

현지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천천히 느린 속도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몇 마디 나눠보고 의사소통에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으면 좀 속도를 올리는 사람도 있다. 

반면,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배제하고 하고 싶은 말을 빠르게 전달하는 사람이 있다. 의사소통이 안될 거라는 생각을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또 반대로 일부러 못되게 구는 경우도 있다. 알아듣든가 말든가 식의 태도다. 불쾌한 일을 많이 당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이를 악물고 영어공부했으니 나는 힘든 시간도 딛고 성장했기에 오히려 감사하다. 


지금까지 6년 살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없다고 "우린 그런 거 안 팔아요."라고 말하는 사람 본 적 없다. 어떤 카페든 "그럼 어떻게 만들어야 되나요?"라고 물었었다. 그 태도에 감동하곤 했다. 

이 마인드는 "내가 모르지만, 네가 알려주면 그렇게 해서라도 줄게!" 아닌가. 

 

가장 큰 문제는 서로 말을 잘 알아듣을 수 있는 같은 언어를 가진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통의 문제다. 이 또한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좀 더 세심하게 알아차리며 반응한다면 큰 문제 일어날 것 없다. 


겉바속촉, 겉은 거칠지만 속은 부드러워 빵이 꼭 카운터 직원 같았다. 

빵칼로 슥슥 썰어 발사믹식초와 올리브유에 적셔먹으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빵집 사우어 도우 로프 맘에 쏙 들었다. 

또 사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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