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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Nov 07. 2023

남편과 싸워서 김치찌개를 끓였다.

침묵응원 

 



"그러니까, 내가 지금 요즘 그거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잖아." 

"아니 내 말은....." 


내가 너무 다그쳤나 싶었다. 아니, 그냥 물어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질문 몇 개를 던졌을 뿐인데, 남편의 엉킨 머릿속은 내 말이 들어간 공간이 없는 듯했다. 물어보질 말았어야 했나, 나는 그저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어쩌면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내 마음에 서운한 마음이 차 들었다. 가끔 속을 알 수 없어 답답하다. 남편은 생각이 많아지면 입을 닫는다. 나란히 걷다 몇 분 채 지나지 않아 멀찌감치 사라진 남편 뒤를 쫓느라 애써 바삐 걸었다. '그래 니 다리 길다.' 속으로 확 뱉어 버리고 싶은 말을 참느니 차라리 멀리 뒤쫓는 게 낫겠다 싶었다. 


잘 안 싸운다. 싸울 일이 거의 없다. 내가 잘못해도 남편은 자기 탓, 자기가 잘못해도 남편은 자기 탓으로 생각할 정도로 나를 배려해 준다. 그런데 나 아니면 또 누가 적나라하게 남편을 봐줄까 싶다. 그래서 가끔은 더 냉정해지기도 한다. 서로를 위해서. 

결혼 전 썸 탈 때 남편이 나에게 그랬다. 

"이런 말은 내 아내 될 사람이 아니면 나한테 하면 안 되는 말인데." 

당시 좀 주제넘는 조언 겸, 부탁이었다.  8살이나 어린 내가 할 말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그 말을 꼭 해야 했다. 결국 나는 그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아내가 되었다. 그런데 가끔은 참 눈치가 보인다. 혹여나 내 말이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해서이다. 



오전까지만 해도 혀 짧은 소리로 농담을 주고받다가 산에 다녀온 후로 밤이 될 때까지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저 스칠 뿐 각자 자기만의 시간을 가졌다. 한 공간에서 오래 지내면서도 나는 내 할 일, 남편은 남편이 할 일을 하기에 시간은 각자 돌아간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공간에 있어서 같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해도 다른 기분 탓에 메워진 공간의 기운이 다를 때는 몹시 공기가 무겁게 느껴진다. 


남편이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저녁을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로 준비한다. 한국에서는 흔한 이 찌개가 여기서는 좀 귀하다. 김치가 금치여서 아끼느라고 어쩌다 한 번씩 끓인다. 남편이 좋아하는 메뉴이기도 한데 오늘도 역시 조금 이른 시간에 김치찌개와 카레라이스를 동시에 끓여 골라먹도록 했다. 남편은 두 개 다 먹겠다고 짧게 말했다. 그리고 뚝딱 해치웠다. 병 주고 약 주는 기분이기는 했지만, 덕분에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먹고 저녁을 밥 같이 먹은 것 같아서 은근 만족했다. 한국 사람은 역시 찌개에 밥인가 보다. 평소라면 엄지 치켜들고, 누가 끓여서 이렇게 맛있냐며 호들갑 한 번 떠들어 줬을 텐데 아무런 말이 없다. 


서로 기분이 좋지 않으면 보이는 태도가 또 있는데 그건 남편은 청소나 설거지를 한다. 평소에도 잘하는 편이긴 하지만, 썰렁한 기류가 흐르는 날에는 싱크대 물 흐르는 소리가 오래 난다. 청소로 스트레스를 푸는 거 같지만 그건 아니다. 그저 서로를 좀 더 의식한다고나 할까. 그래, 의식이다. 그게 맞는 것 같다. 


결혼 15년 차다. 오래 살았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기는 하지만 30년 가까이 혹은 넘도록 각자 다른 패턴과 일상을 유지하다가 서로 맞춰 살아가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게 결혼 생활이다. 나는 남편의 애정표현, 특히 "말" 때문에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다. 내겐 더없이 고마운 사람이지만 언제나 100% 만족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남편도 마찬가지겠지. 그저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어 주는 존재로 서로의 빈틈을 메우는 관계가 부부가 아닐까 싶다. 


주로 걸을 때 생각이 많다. 오만가지 생각이 날 뿐 아니라, 생각 정리하는 시간으로 탁월할 정도로 딱이다. 보통 가는 산 하이킹 시간이 1시간 10분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빠른 걸음으로 돌밭도 지나고 흙밭고 지나고 잔디밭, 나무길도 지나고 나면 1시간이 훌쩍 지난다. 숨이 찬다. 심장박동수가 166 bpm까지 치솟았을 때 운동 좀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잠시 치솟았다가 적응이 되니 112 bpm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약간 빠른 걸음으로 계속 걸었다. 쉬지 않고 걸었다. 걸을수록 머릿속에서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렇게 떠오른 생각을 딱 한 가지 낚아채면 바로 글감이 된다. 지금도 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가져온 글감으로 글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고산을 오르며 내 숨이 166 bpm까지 올랐던 것 같이 남편 말과 생각에 차 올랐던 생각이 좀 내려앉았다. 그저 글을 쓰다 보니 남편을 더 응원하게 된다. 나의 미래도, 당신의 미래도 좀 더 맑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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