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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Nov 09. 2023

당연한 호의가 있을까,

관계와 지혜 




어제 비가 많이 왔다. 비가 오면 언제나 불편하다. 지난주에도 우산을 안 챙겨서 비를 맞았다. 그런데 어제 또 우산을 챙기는 걸 깜빡했다. 오전에 비가 왔다가 잠시 소강상태일 때 우산을 말려 둔 채로 차를 타고 빠져나갔다.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을 때 우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낮동안 내린 양이 꽤 됐다. 화요일은 흑인 마을 가는 날이다. 징크로 만든 건물 안에 있으니 비가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마치 우박 내리는 것 같이 요란했다. 서로의 말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세찼다. 소리는 둘째치고 우산을 안 가지고 왔는데, 문에서 차까지 이동하는 그 짧은 순간에 온몸이 홀딱 젖을 것 같았다. 정말이지 싸늘한 날 비에 홀딱 젖고 싶진 않았다. 

오전에 교사들과 모임을 마치고 아이들 데리러 가야 하는데 어쩌나 싶은 고민에 빠졌다. 비가 이대로 계속 온다면 아이들을 데리러 교실까지 가야 하는데 우산이 없으니 말이다. 나만 젖는 건 그렇다 쳐도 아이들을 다 젖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때마침 , 지난주 내 우산을 빌려갔던 한 교사가 내게 우산을 돌려줬다. 자기 우산을 쓰고, 내 우산을 가져다주었다.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 이거면 되겠다 싶었다. 


인사를 나누고 먼저 빠져나오는데, 다른 교사가 나를 불러 세웠다. 


"마이 엄브렐러 브로큰." 

"응? 왓?"

"마이 엄브렐러 브로큰!" 


순간 너무 황당했다. 오전에 교회에 올 때 이미 그 우산을 쓴 채로 왔고 별 이상이 없을 정도로 비를 막을 수 있어 보였다. 내가 건물을 빠져나올 때 나를 황급히 부를 정도로 부러진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베푼 호의들에 대한 당연한 마음을 갖는 것 같은 불쾌함이 밀려왔다. 


"안 돼. 나 아이들 데리러 가려면 나도 필요해." 


바로 받아치고는 우산을 챙겨 차를 타고 나왔다. 

이들 삶이 어렵다. 안다. 그래도 우산 하나 못 살 정도는 아니다. 받은 생활비에서 한화로 치면 3천 원 정도면 그럭저럭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 하나 살 수 있다. 아침에 오다가 갑자기 부러졌는지도 모르는 일이겠다만, 여태 부러진 우산도 잘 쓰고 다니는 것 같더니 나를 급하게 불러 세우고 말하는 의도를 알 것 같았다. 

받은 돈 자기 운동화 사고 아이 옷 사는 데  다 써버리고  음식 사 먹을 돈 없다고 굶는 모습을 볼 때면 오만 생각이 다 든다. 최근 여러 이슈가 있었는데, 늘 다른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모조리 해결해 주기만을 바라는 태도가 맘에 안 들었다. 그 문제는 꽤나 골치 아픈 상태다. 도덕적인 것을 어떻게 알려줘야 하나 싶을 정도다.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싶고, 필요를 채워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나 감사로 받는 것과 도움받는 일은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혀끌차게 만드는 일이다. 


오전에 교사들이 먹을 뜨끈한 커피와 비스킷을 준비했다. 비가 와서 추워 핫팩도 한 개씩 준비했다. 한국에서 친구가 보내 준 귀한 핫팩이라 아껴 쓰는 거지만 4명의 교사에게 하나씩 전해줬다. 교사를 위한 슬리퍼를 하나씩 장만해 줬고, 어린이집 운영에 필요들을 도와주겠다고 이야기 나누곤 난 뒤였다. 평소에도 아이 옷가지나 신발, 장난감, 본인이 입을 옷가지들을 챙겨줬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치 나에게 뭐 맡겨놓은 것 마냥 내놓으라는 태도는 좀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에 골똘해졌다. 내 마음이 인색한가 싶어 여러 번 반문했다. 그때마다 "그래서 그 적정선이 뭔데?"에서 끝났다. 


비단 누구만 그렇다고 말하기도 그렇다. 살면서 호의를 호의로 받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당황스럽게 만드는 사람을 만난다. 10번 잘해주다 1번 소홀하면 서운하다고 드러내놓고 말하기도 한다. 

누가 잘 못했다고 말하기도 그렇다. 사람 마음이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나 또한 누군가의 호의에 처음에는 고맙다가 나중에는 무뎌지고, 결국에는 한두 번 반응이 적어 서운함을 표현한 적도 있을 테니 말이다. 


앞으로 계속 같이 끌고 가고, 보듬어 줘야 할 관계라 고민이 되어 몇 자 적었다. 나는 이 순간에도 집에 있는 새 우산을 가져다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다. 때로는 필요를 직접적으로 채우기보다, 채워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진짜 도울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싶은 생각 탓이다. 


앞으로도 계속 필요한 관계의 지혜는 하늘에 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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