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앉은 우리 사이의 이야기.
"내가 당신보다 일찍 갈 거 같은데, 내가 먼저 가더라도 슬퍼하지 마."
"갈려면 젊었을 때 가야 내가 신발이라도 바꿔 신지, 다 늙어서 일찍 가면 내가 너무 외롭지 않을까?"
남편과 나의 대화다.
절반은 농섞인 해봤자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을 때마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은 무거워진다.
"걱정 마. 자기는 아마 골골거리면서 오래오래 살아서 나보다 일찍 안 갈 것 같아."
이렇게 말하고도 진짜 남편이 오래오래 골골거릴까 봐 겁이 났다.
외할아버지는 10년 동안 해소라는 기관지 질병을 달고 살다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 살아생전 내가 봤던 가장 많은 모습은 기침을 하면서 목에 붙은 가래를 뱉어내던 모습이었다. 친할 머지는 약 7년 동안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그야말로 자신의 치부를 다 드러내 자식들에게 보이셨다. 감사하게도 평생 예수쟁이 욕하며 돈 욕심만 부리던 할머니는 눈 감기 전 예수님을 영접하셨다. 외할머니는 2년 전 코로나에 걸려 갑자기 음압실로 이동되어 며칠 견디지 못하고 소천하셨다. 갑작스러운 코로나였지만, 돌아가시기 전 주변 정리를 다 하고 마지막 꽃놀이 여행까지 하고 가셨다. 천국소망하면서 평안하게.
"나는 먼저 가서 예수님 만날라니까, 너희들 잘 살아."
코로나로 인해 자식들도 가시는 길 가까이에서 배웅해드리지 못했다. 창 밖에서 음압실 안에 누운 할머니를 바라보며 수화기 너머로 건넨 마지막 말은 자식들 걱정이었다.
"아니다. 여보, 자다가 가야지 복이지. 골골거리다가 가지 마."
"그거 내 기도 제목이잖아. 나는 건강하게 살다가 건강하게 갈 거야. 근데 건강하게 가는 건 뭐지? 하하하 이상한 말이네."
남편은 자기가 한 말이 이상한 것 같지만, 그래도 자다가 가는 게 복이라고 했다. 뭇 어른들이 자다가 천국 가는 게 가장 큰 호상이라고.
골똘히 생각하다가 내가 한 마디 던졌다.
"근데 그렇게 자다가 가면, 옆에 있는 사람은 얼마나 황망할까? 나는 너무 슬플 것 같은데, 자다가 일어났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숨을 안 쉬어. 안 움직여! 그럼 어떻게 해?"
이렇게 말하고는 나는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쨌든 이별은 슬픈 거야. 갑자기 가든, 아프가다 가든, 어쨌든..."
우리 대화의 마지막 말은 내가 맺었다.
이별은 언제 생각해도 슬프다.
잠시 정든 사람들과의 이별도 아프고 힘든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부비며 살다가 멀리 떠나가버리면 얼마나 슬플까. 종종 생각한다. 중학교 은사님, 친한 지인과의 이별, 오랜만에 전해 들은 안타까운 소식. 나도 멀리 보내봤다. 이별은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해도 막상 그 시점에 가면 어디 덤덤해질 수 있을까.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아이들도 남편도, 부모님도, 내 옆에서 당연하게 늘 있어 줄 것 만 같은 사람들과의 이별을 불현듯 떠올리면 극도로 슬퍼진다.
그런 생각을 하면 오늘, 지금, 이 순간 더 충실해지는 것 같다.
어떤 쓸데없는 것 같은 이야기도 남을 거다.
오늘의 이야기가 나란히 앉은 우리 사이를 가득 메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