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가벼움
없다. 실내를 고개를 오른쪽으로 90도 왼쪽으로 90도 돌려가며 아무리 찾아도 내 타월이 없다. 지난주 수영장에서의 일이다. 분명 수영복 한 장 입고, 수건을 두르고 슬리퍼를 신은 채 들어갔다. 막내 요엘의 손을 잡고 들어가 뜨끈한 물에 몸을 담갔다. 실내 웜바쓰가 있어서 찬물을 싫어하는 내게는 매우 적절한 장소였다. 물이 차가워 들어가기 싫다고 할 때마다 요엘은 나보고 "따뜻한 물 같이 들어갈래요?"라고 물었다.
나무 의자가 사방에 4개, 빈 곳에 흰 타월을 벗어 두고 슬리퍼도 벗어둔 채 물속에 들어갔다. 물개가 된 요엘 구경도 하고, 나도 다리를 물결에 저어가며 따뜻한 물의 온도를 즐기고 있었다. 크지도 않은 공간,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눈에 다 들어왔다.
물에서 한 20분 있었을까, 밖으로 나와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닦으려고 수건을 찾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수건이 사라졌다. 그 사이 누군가가 집어간 모양이었다.
"어머, 무슨 내가 선녀니? 왜 내 타월을....."
별도리가 없어 밖으로 나와 비치 베드가 있는 곳까지 약 100미터가량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가는 길 동안 계속 구시렁거렸다. 날이 뜨거워 금방 마르긴 하지만, 몸이 젖은 게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 물건이 아닌데 왜 가져갔을까, 자기 수건으로 착각했을까, 너무 추워서 수건이 필요했을까, 잠깐 쓰고 가져다 놓으려고 했을까, 머리를 굴려가며 상황을 받아 드려고 보려고 애썼지만 좀처럼 당황스러운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양심은 밥 말아 드셨나 싶은 생각도 자꾸 올라왔다. 자기 물건이 아니면 가지고 가지 말아야지 대체 왜 가져간 걸까, (뭘 왜 가져가 필요하니까 가져갔겠지.)
자꾸 입에서는 "대한민국의 시민의식 절반도 못 따라가는 이놈의 나라"라는 말이 튀어나오려고 했다.
남아공에 와서 카페나 음식점 등 공공장소에서 잠시 앉아 있어야 할 때 내 물건을 두고 이동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지갑을 가방에서 꺼내 현금 계산하지도 않는다. 가방을 열고 지갑에서 지폐만 꺼내 내곤 한다. 지갑을 보이는 일 자체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었고, 실제로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잠시 내 가방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두고 다니면 없어져도 할 말이 없다.
한 번은 옷 가게에 들어가서 별이 옷을 보던 중이었다. 한참을 돌아보는 중에 저쪽 멀리에서 여자의 울부짖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 점점 내 발걸음을 그리로 재촉하고 있었다. 여자는 양팔을 가슴아래 교차해 자기 양팔을 잡은 채로 배를 구부려 슬프게 소리치고 있었다. 어디가 아픈가 싶었다. 병원에 가야 하는 건가, 119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직원과 몇 사람이 주변에 모여들어 여자를 달래고 있었다. 여자는 진정되지 않은 채로 발을 동동거리며 제자리를 맴돌았다. 여자는 "Oh, no.... my bag......"이라고 작은 소리로 흐느끼면서 울었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다. 쇼핑하던 중 가방이 사라졌단다. 자기 가방을 잃어버려 아무것도 못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눈 뜨고 코베인 다고, 남아공 ATM기에서 카드를 눈앞에서 빼앗길 뻔했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충분히 공감이 됐다. 잘 들고 있어도 빼앗길 수 있는 세상.
가방을 잠시 내려놨든, 가지고 있다가 빼앗겼든. 그 심정을 알면서도 나는 "왜 가방을 잘 안 가지고 있었대."라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훔쳐간 사람보다 '잘 간수하지 못한 사람'이 더 말을 듣는 이상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한 번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내 오른쪽으로 대각선 구석에 앉은 한 백인 여자가 노트북을 하다가 열어둔 채로 자리를 비웠다. 가방은 의자에 벌려진 채 놓아져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노트북 옆에는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남아공 6년 차 살이인 나와 남편은 서로의 눈을 의심하며 눈빛으로 "헉"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다. 물론, 식당이었고, 구석진 자리였다. 지나다니는 직원들도 있었다. 보통은 식당 안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눈이 되어 주리라는 믿음으로 두고 잠시 화장실이라도 다녀온다. 그 사람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별일이야 있을까 하는 마음 말이다.
여기서는 아예 장소마다 <개인 소지품 주의>라는 멘트를 붙여놓은 곳이 꽤 있다. 알아서 자기가 간수하라는 거다. 당연한 논리이고, 세계 어느 곳을 가서도 마찬가지지만 아무튼, 물건을 잃어버리고 싶어서 잃어버리는 사람을 없을 건데 분실, 도난당한 수건 하나 때문에 별 생각을 다해봤다.
아이들과 도덕성과 양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 양심이 뭐예요? 도덕은 뭐예요?"
"응 무슨 일을 했을 때 내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거야. 내가 누군가 몰래 하면 마음이 두근두근하잖아. 그럼 그거 잘 못하는 거야. "
"근데 좋아서 두근거릴 수도 있잖아요?"
"응 근데 그게 좋아서 두근거리는 거랑 느낌이 달라. 내가 어떤 일 하고 혼나면 어떻게 하지 라는 마음이 들면 그건 일단 하면 안 되지. 그리고 사람사이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데 그런 일을 하면 도덕성이 부족한 거야."
어려운 말일 수도 있지만, 8세 아이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려고 여러 가지 예가 튀어나왔다.
"아! 그럼 누가 가져갔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 도덕성이 없네. 양심도 까맣고."
이렇게 대답하는 아이의 말을 들으면 8세 아이도 그런 양심에 대해서 안다는 거다. 못 배워서 모르는 거면 배워야 하지 않나. 내 거는 내 것, 니 거는 공유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는데 종종 그런 당황스러운 일을 겪으며 황당했던 일화도 있다.
양심이라는 건 누가 가르쳐줘서 생기는 게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만 심긴 양심, 진짜 양심에 털나지 않고서야 그러면 안 되지 않나 싶다. 누군지 딱 붙잡아다가 이유를 가르쳐주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아이가 가져갔을지, 어른이 가져갔을지 모르겠다. 어른이든 아이든 안타깝다.
끝까지 내 수건은 찾을 수 없었지만, 그 누군가가 뒤늦은 후회를 하고 양심은 좀 찾았으면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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