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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an 14. 2024

약은 일해야 한다.

약은 두려워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적절하게 써야 한다. 



이상 기온. 

뭔지 피부로 절실히 느껴지는 요즘이다. 지난 6년간 남아공에 살면서 변화 무쌍한 날씨를 경험했다. 4계절이 있지만, 여름이 가장 길고 겨울은 0도까지 내려가지만 체감 10도까지도 느껴졌던 날도 있었다. 하루에 비가 세차게 지붕을 뚫을 듯 내리다가도 햇볕이 쨍하니 나타나면 1시간 만에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바닥이 다 말라 있는 걸 보면서 이상하리만큼 신기했다. 


여름에는 우기가 있다. 우기에는 주로 밤에 비가 내리고 낮에는 쨍한데, 매년 달랐다. 처음에 남아공에 왔을 때, 밤에 비가 내리고, 낮에는 내리 않는 날씨에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이제는 "왜? 낮에 비 많이 오지?"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날씨가 이상하다. 아니, 내 생각이 이상한가 싶을 정도다. 

올해는 최고로 여름같지 않은 여름을 나고 있다. 벌써 가을이 성큼 온 것 같은 날이 지속 되고 있다. 가장 먼저 반응하는 건 역시 눈,코,입 이비인후과다. 알러지가 시작됐다. 이러다가 눈알이 튀어 나와 버릴 것 같은 고통이 시작됐다. 

사람이 신기한게 온 몸은 멀쩡한데 눈만 불편해도 삶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가렵고, 따갑고, 눈에 무언가가 낀 것 같은 불편함에 시야까지 흐려지니 글쓰기도 편치 않았다. 뿌연 시야 사이를 계속해서 닦아가며 할 일을 했다. 알러지 약 한 알, 가지고 있던 알러지 안약, 핑크아이가 됐을 넣는 점안액까지 해서 온갖 방법을 통원했다. 냉찜질도 해보고, 온찜질도 해보고, 세수도 했다. 그럼 잠시 가라 앉는 듯 하다가 다시 불편함이 스멀스멀 시작됐다. 그렇게 질 낮은 지난 일주일을 보냈다. 눈에서 시작해 재채기, 콧물로 이어졌고 급기야 머리도 띵하니 컨디션이 점점 나빠졌다. 감기인지 비염인지 헷갈리는 시점이다. 무슨 약을 먹어야 하나 고민 될 땐 그냥 알러지 약을 먹는다. 감기에 걸려도 5일치 감기약 다 먹어본 적 없던 나는 요즘 매일 하루 한 알 목구멍으로 넘긴다. 

병원 갈 때가 됐나 보다. 의사를 만나서 처방이라도 받으면 약값이 좀 저렴해지니까, 병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주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수준이 됐다. 눈이 빨갛고 염증이 심해져 마치 아폴로 눈병에 걸린 사람 같았다. 결막염인 게 분명했다. 주일 오전 예배를 드리고  24시간 운영하는 약국에 가서 약을 샀다. 

피노키오에 나오는 제페토 할아버지 같이 생긴 약사가 환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이것 저것 묻는 거에 대답해주면서 안연고 한개를 내왔다. 점안액이 아니라 안연고를 주길래 이상해서 "이거 효과 있어요?"라며 내 증상을 이야기 했다. "그게 도움이 될거에요"라며 추가 설명을 듣고는 이번에는 액체로 작은 병을 내줬다. 빵봉지 같은 재생 용지 안에 작은 약을 두 개 넣고 차에 타자 마자 눈에 한 방울씩 떨궜다. 3분이 채 지나지 않아 눈이 맑아지는 걸 느꼈다. 


"와! 이거 효과 대박이야!"


조수석 머리 위 거울을 열고 오른쪽 왼쪽으로 눈알을 굴리며 눈을 살피는 동안 빨가갛게 변했던 흰자위가 핑크톤으로 변하고 있었다. 가려움도 진정되는 걸 느꼈다. 


항생제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약은 많이 먹으면 안좋다고 듣고 지내왔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온갖 정설에 휘둘리며 약을 멀리 했다 가까이 했다를 반복했다. 급기야 셋째 요엘을 키울 때는 한 때 이슈가 됐던 "약 안먹이고 아이 키우기" 즉, 안아키식 육아를 했던 적이 있다. 물론 한 때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잘못된 걸 알고 방향을 돌렸다. 당시에는 내 마음이 아이를 안아프고 건강하게 키우겠다는 일념에 꽂혀있었다. 


어떤 종류의 약이든 증상을 완화시켜줄 걸 알고 먹지만, 약을 쓸 때마다 내가 이렇게까지 이 약을 먹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든다. 가능하면 안 먹고 낫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오늘도 차 안에서 갑작스럽게 가려워진 눈을 비비다 참지 못하고 핸드백을 열어 손을 더듬거렸다. 가방을 크로스로 멘 채로 안전벨트를 착용해서 가방이 몸과 안전벨트 사이에 끼여 있는 상태였다. 마치 천식환자가 호흡할 수 없어 다급하게 손을 더듬는 모습이 나에게서 보였다. 빨리 안 찾아지자 가방을 확 엎을까 생각까지 했다. 알러지용 점안액은 책상 위에 하나, 가방 안에 하나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닌다. 차안의 팔걸이 안쪽 서랍에는 먹는 알약 알러지약도 상비로 가지고 다닌다. 고통스러운 순간을 빠르게 잠재워 줄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거의 없는 남아공, 아프리카 중에서도 날씨가 좋은 편에 속하는 프레토리아에서 살면서 상식적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비염과 알러지를 얻었다. 그나마 잠시라도 해결할 있는 약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주변 사람들은 환절기만 되면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 지 안다. 그저 안쓰럽게 바라볼 뿐이다. 


이따금 들려오는 이야기나 다른 사람이 주는 정보를 믿고 부정적 견해를 갖게 되는 때가 있다. '카더라'에 치우쳐서 내가 해보지도 않고 그런가보다 하는 걸 사실로 믿는 경우다. 나는 숱한 시간을 분별해야겠지만, 들리는 정보에 흔들리지 않고 내게 필요한 조치를 하기 위해 애쓴다. 어떤 정보든 내게 필요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도 배척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게 환경을 바꾸는 것이든, 마음을 정돈하는 것이든, 약을 먹고 바르는 것이든,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더 안전하고 안정적인 환경에 놓일 수 있게 된다. 


지금도 눈이 너무 가려운 통에 글 쓰다 양쪽 눈에 한 방울씩 똑똑 점안액을 넣었다. 제발 한 번에 제대로 적절한 일을 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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