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로 삶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an 16. 2024

곰팡이 치즈케이크 환불 사건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은별이가 작은 박스 뚜껑을 열고 조각 치즈 케이크를 꺼냈다. 


"엄마! 이거, 곰.. 팡이!" 


사온 지 10분 지나 뜯은 냉동 케이크 포장 안쪽에는 군데군데 파란 꽃을 피웠다. 곰팡이 핀 치즈 케이크를 보고 털썩 주저앉았다.  다시 바꾸러 갈 생각 하니 암담했다. 비도 오고 있고, 현지 어린이집 오픈 일정 준비로 오전 내내 힘들었는데 마무리에 이런 이벤트까지 안겨주다니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마트 고객센터로 가서 영수증과 함께 치즈 케이크를 내밀었다. 


"이거 확인 좀 해 주실래요? 어떻게 이걸 먹으라는 걸까요?" 


황당하고 어이없었지만, 따질 기력조차 없었다. 워낙 정전 이슈가 잦은 탓에 마트 식재료들도 타격이 있었겠거니 싶었다. 일일이 다 뜯어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그들도 늘 체크하진 못할 테니까. 이해하기로 했다. 

카운터 앞에 서서 영어로 읊조리듯 빠르게 말하고 돈으로 바꿔 주기를 기다렸다. 익숙한 듯 눈 한 번 마주치지 않는 직원은 펜과 노트를 내게 내밀었다. 주소, 전화번호, 이름 그리고 사인을 요청했다. 빠르게 흘리듯 정보를 쓴 후 노트를 직원 쪽으로 밀어냈다. 순식간에 70 란드를 현금으로 내주었고, 생각보다 환불 진행이 빨랐다. 보통 순환이 잘 안 되는 마트에서 고기를 사면 불안 불안하면서도 다른 곳으로 가기 애매해서 살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유통기한이 넉넉한 고기에서도 냄새가 난다.

그래도 수박 하나는 어떤 걸 골라도 맛있는 마트였는데, 아쉬움이 철철이다. 

"역시, 여기서는 고기를 사는 게 아니었어."에서 "역시 체커스는 안 되겠어."까지 왔다. 이로서 '체커스'라는 마트에 대한 신뢰도가 한 단계 더 하강했다. 


대표적인 마트가 스파슈퍼, 체커스, 픽 앤 페이, 울월스, 마크로 이렇게 다섯 곳이 있고, 흑인들만 주로 이용하는 대형마트 킷캣이 있다. 마트는 많지만 각기 파는 품목이 다르고, 가격조차 다르다. 원하는 물건을 살 때는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는 곳도 있다는 말이다. 신뢰를 잃을 것 같을 때마다 한 번 더 믿어 봤다. 그다음에도 '설마'거리며 한번 더 믿어 보겠다고 생각했을 때마다 뒤통수를 맞았다. 비단 마트 이용에 신뢰를 가져다 붙일 일인가 싶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환불받으러 갔을 때 현지인들 조차 썩은 표정을 한 채 한쪽 다리를 꼬고 서서 '니들이 그렇지 뭐'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떤 곳이든 크고 작은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고, 환경이 그러하니 어떠하겠는가. 전기가 자주 나갔다 들어오고, 다시 말하지만 빠르게 순환되지 않는 제품을 하나씩 다 뜯어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일 텐데 말이다.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치명적이다.  다른 필요한 것을 사러 갈 때는 분명 가게 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석연치 않은 마음으로 고민하게 된다. 사? 말아? 사? 딴 데가? 


관계도 그런 것 같다. 누군가를 믿고 따른 다는 것, 의심 없이 믿고 함께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신뢰관계가 깨진다면 다시금 되돌아볼 여지가 잘 안 생기는 것도 같다. 그렇게 바이바이 하게 된 인연이 몇 있는데,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떨어져 나갔다. 그쪽에서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인생에서는 스쳐 지나간 인연이 되었다는 게 못내 안타깝다. 

적어도 관계 안에서 "아. 이번에도 또 속는 셈 치고 믿어보지 뭐." 이런 말은 듣지도 하지도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