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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Sep 27. 2021

비염인들만 아는 고충

비염약 부작용일까?

비염인들만 아는 고충 

“엄마, 잠을 못 참겠어.”


밤 10시,

평소에는 반말도 잘 안 하는 녀석이 자다가 깨서 나와서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선 대뜸 이 말 한마디를 하고 거실을 빙빙 돈다.


“쟤가 잠꼬대를 하나, 못 참겠으면 자야지 가서 자.”

“아니, 잠을 못 참겠다고! ”


 둘째는 말을 천천히 하는 편이고, 이해력도 조금 늦은 편이다. 한국말 단어도 모르는 말이 많고 정확한 문장이나 단어 사용도 약간 어눌(?)하다. 한국에서 한국어를 잘 배우고 한글을 떼기 전에 남아공으로 온 탓인지 잘 모르겠지만 영향이 있는 듯하다. 엘이 말인즉은 잠을 자고 싶은데 혼자 무서워서 못 자겠다는 뜻이었다.


“엄마가 내 옆에서 자면 좋겠어.”


 평소에 이런 말을 하는 아이가 아니라서 하던 일을 그대로 덮어두고 아이 옆에 누웠다. 그동안 다섯 식구가 한 방에서 자다가 올해 중순부터 방을 분리해서 첫째 딸 별이 방하나를 만들어 주고, 아들 둘 방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 자기들 공간이 생겼다고 신나 하더니 조금 지나 잊을만하면 한 번씩 다시 방에서 다 같이 자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사하는 것만큼 힘든 구조 대이동이었기에 이사 가기 전에는 다시는 안 옮길 거다.)

 남아공은 알레르기 철, 다시 말해 환절기다. 

봄, 가을이 되면 사방에서 날리는 꽃가루 탓에 온 가족이 재채기를 한다. 재채기와 기침, 코맹맹이 소리는 익숙한 소리이지만 듣고 싶지 않다. 콧물, 재채기가 너무 심해서 하루 학교도 빠지고 집에만 있던 둘째 엘이가 너무 힘들어한다. 잠도 못 잘 것 같아서 알레르기 약을 먹인 후 자러 들여보냈다. 자러 들어간 지 1시간 반 만에 나와서 한다는 말이 글의 첫머리였다.

 

 저녁에 남편과 같이 유튜브에 올라온 알레르기 약에 대해 정리해 놓은 것을 보고 있었다. 내용을 듣다가 깜짝 놀라서 엘이를 먹였던 알레르기 약을 얼른 찾았다. 현재 한국에서는 아이들에게는 먹이지 않는다는 1 유형 알레르기 약이었다. 2009년부터 그 약을 쓰지 않는다던데 우리는 2019년에 받았던 약이었다. 약의 부작용은 몽유병, 숙면 방해, 신경질, 난폭함, 무서운 꿈을 꾼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맙소사. 생각해보니 지난 몇 년간 알레르기약을 먹였던 날마다 아이가 밤 잠을 못 이뤘던 날은 아니었나 되짚어 보았다. 그저 기억 뒤로 지나간 날이기에 정확히 그렇다 말할 수는 없지만 당장 그 약을 버렸다. 다행인 것은 그 약을 처방받고도 천식환자들에게 사용한다는 말을 들어서 아주아주 심할 때만 저녁에 자기 전에 먹였었다는 것인데, 그 약은 일반적으로 소아과에서도 처방해주고, 이비인후과에서도 처방해줬던 약이 아니었던가, 이 사실을 알고도 처방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셋째를 가졌을 때부터 심해진 환절기 알레르기는 해가 지날수록 점점 더 민감해지고 있다. 이제 열 살 밖에 안된 둘째 역시 만성 비염으로 매년 고생하고, 비염이 없던 첫째 별이 마저 비염이 생겼다.  공기 좋은 남아공에 오면 싹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1년 내내 건조한 데다 환절기에는 온갖 꽃가루가 날려서 심한 날엔 코막힘, 콧물, 재채기를 연거푸 풀어내며 코를 비벼대는 날이 숱하다. 얻어걸린 영상을 보면서 얻은 정보 중에는 미리 예방 차원에서 안전한 알레르기 약을 복용하고 외출하거나 잠을 자면 크게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여태까지 약은 무조건 많이 먹으면 안 좋다는 생각으로 참아 왔는데 약은 필요한 곳에 쓰라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었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아이 셋 키우며 온갖 유행성 질병은 다 걸려 뒤치다꺼리해보고 병원문이 닳도록 살았던 시기가 있어서인지 남편과 나는 웬만한 감기, 장염, 알레르기에는 어떤 약을 일반적으로 쓰는지까지 알게 되었다. 덕분에 남아공에 와서 병원을 자유롭게 갈 수 없을 때에도 처방받아왔던 약들이나 현지 약국에서 구할 수 있는 약들을 찾을 때 도움이 되었다. 물론, 증상이 심할 때는 병원도 찾고 처방받은 약을 먹는다. 최근에도 피부 질환으로 첫 기본 진료비를 10만 원이나 넘게 주고 처방을 받았다. 


 여하튼, 남아공은 지금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중이고, 비염 때문에 불안할 때면 혹시나 코로나가 같이 온 건 아닌지 하는 의심병도 함께 돋는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작은 질병에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고, 해외에서 살다 보니 내 몸에 작은 질병만 생겨도 이건 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안해지는 날도 있다. 덤덤하게 사는 듯하고, 그저 우리의 인생의 모든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면서도 질병 앞에서는 무던해질 수 없는 게 사람인가 보다. 


정말 아이가 먹었던 비염약 후유증 때문에 무서운 꿈을 꿨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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