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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Feb 01. 2024

딸이 내 키를 넘겼다

자녀의 성장을 보는 부모의 눈 




"일루 와 봐. 너 키 큰 거 같아! 빨리, 빨리. " 

"어? 어? 어? 별이가 더 큰데? 이제 시작 됐네, 시작 됐어." 


자고 일어나면 목이 길어지고, 또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목이 이만치 길어진다고 했던 어른들 말씀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분명 며칠 전에 나에게 가까이 와서 손 자로 내 머리끝에 살짝 모자란다며 아쉬워하던 별이었다. 요즘 열심히 스트레칭하고 잘 먹더니 쑥 자랐다. 

만감이 교차했다. 기쁘기도 한데, 뭔가 약간 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별이가 내 키를 넘겨서 졌다는 기분이 들었다기보다 옆에서 요란하게 까불어대는 남편의 말에 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다. 


"당연히 나보다 커야지!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사람은, 반드시 나여야만 한다고!" 


어서 빨리 내가 가장 작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진심이다. 남편을 비롯한 은다우 삼 남매가 무럭무럭 자라서 나를 업고 다닐 만큼 크면 좋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작은 키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키 큰 사람이 가진 장점은 모조리 부러웠다. 새 바짓단을 접거나 자르지 않아도 되고, 높은 찬장에 의자 없이 손이 닿고, 로퍼나 스니커즈를 신어도 예쁘고, 피지컬 자체에서 풍기는 키는 사람의 이미지는 나의 로망이었다. 


165cm까지만 어떻게 안 될까? 제발 팔다리에서만 5센티씩 길어지면 소원이 없겠다! 

입버릇처럼 하던 말은 그냥 wish(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에 불과했다. 절대로 hope(이루어질 수 있는 소망)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냥 그저 그렇게라도 주문처럼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수 백번도 더 뱉었다.  인생 살아보니, 키가 작아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높은 곳을 의자를 딛고 올라가면 됐고, 긴 바짓단은 줄여 입으면 그만이었다. 더 길어지고 싶을 때는 하이힐이라도 신으면 조금은 더 길고, 커 보였다.  


"불편하지만, 불행하지는 않은 삶"을 살았다. 

물론, 한 때는 작은 키 탓에 불행하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왜 하필 외모를 가지고 별명을 짓는 건지, 어쩌자고 "난쟁이 똥자루, 껌딱지, 숏다리, 다리가 안 보여" 같은 별명을 지어준 건지 좋다고 웃으며 놀리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나는 싫은 내색을 하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청소년, 청년 시절을 지나면서 그런 놀림은 줄어들었다. 오히려 "작아서 귀엽고, 아담해서 부럽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구두를 고를 때 발이 250센티미터인 친구는 맘에 드는 신발을 고르기 힘들어했다. 225센티미터 역시 원하는 디자인이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오히려 리미티드 에디션 같은 느낌으로 작고 귀여운 딱 그 사이즈만 나오는 신발을 신을 때도 있었다. 체구가 작으니 주변에서 늘 보호해주려고 했다. 그렇게 보호받는 경우도 적잖게 있었다.  


아이들을 낳은 후, 아이들은 날 닮지 말고 아빠 유전자만 받아서 제발 키가 컸으면 하는 마음에 신생아 시기가 좀 지나서부터 마사지를 부지런히 해줬다. 다리도 쭉쭉이를 해주면서 팔도 만세 불러 쭉쭉 시원하게 눌러줬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의 기상 루틴인 쭉쭉이는 점점 하지 않게 되었다. 키 크는데 좋다는 시드나 곡물, 우유, 고기, 두부와 같은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을 챙겨 먹이려고 애썼지만, 역시 삶이 바빠 놓치기 일쑤였다. 그저 아무거나 잘 먹고 열심히 운동하고, 푹 잘 자는 이 세 가지 사이클만이라도 잘 되길 바랐다. 남아공에 온 이후 아이들은 저녁 8시 반이면 잠에 든다. 대부분 8시면 불을 끄고 방에 들어간다. 건강한 호르몬이 왕성하게 움직이는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  아이들이 깊은 꿈나라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좀 작으면 어떻고, 좀 크면 어떨까. 아직까지도 내가 풀지 못한 한을 아이들이 풀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대체 그게 뭐길래 그렇게 나를 그렇게 따라다니는지 모르겠다.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랐다가도 제발 두 아들은 아빠 키를  넘기고, 딸은 나보다 10센티 이상은 컸으면 하는 바람은 여전하다. 


인생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영화 제목처럼, 인생은 키 순서가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던 때가 있었다. 성적도 키도, 외모도, 돈도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무엇보다 그 외적인 요인 보다 마음이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제 나이에 맞게 자라줬으면 좋겠다.   


오늘도 멀리서 걸어오는 삼 남매를 보면서 훗날의 든든한 모습을 상상해 본다. 





출간 작가가 될 수 있는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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