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 듣는 아홉 살, 이춘기? 삼춘기?
어머 무슨 소리야?
방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가 후다닥 문방으로 뛰어 나갔다.
발가벗은 몸으로 울음을 삼키며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뒷 통수를 만지고 있는 요엘이 보였다. 물기가 뚝뚝 떨어진 자국이 욕실에서 방까지 흥건하게 길이 나있었다. 침대 위에 쪼그린 눈물을 쏟는 요엘을 보곤 화가 불쑥 치밀어 올랐다.
"넘어졌어? 지금 미끄러져서 머리 꽈당한 거야? 왜!!! 물 안 닦고 여기까지 뛰어왔어! 왜!!! 수건으로 물기 안 닦고 뛰어왔냐고!!!"
울고 있는 아이를 얼른 안아 줘야 하는 게 마땅한데, 나는 수건을 가져다가 젖은 몸을 닦아 주면서 계속 호통을 쳤다. 그렇게 소리치면서도 혹여나 머리가 다쳤을까, 등, 엉덩이 쪽은 괜찮은지 살피고 있었다. 머리를 말리면서 머리카락 속 두피가 빨개진 곳은 있는지, 빨갛지 않아서 다행인데, 속에 문제가 생겼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었다. 놀라기도 했지만 화가 먼저 났던 건 일전에 절대 물 묻은 몸으로 뛰지 말라고 당부를 여러 차례 했던 이유에서였다. 장판 바닥도 아닌 타일 바닥은 아이들에게 쥐약이다. 이제는 제법 커서 아홉 살이나 되었으니, 몸이 중심을 잡지 못하거나 균형이 미숙해서 넘어질 일이 없어 그나마 안심하고 지내지만, 늘 항상 불안한 게 타일 바닥이다.
저녁만 되면 우르르 쾅쾅, 천둥 번개가 치는 요즘이다. 남아공 날씨는 신기하게도 여름이면 밤에 하늘이 진노한 듯 화내고,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소리 짹짹 울리는 청명하고 맑은 날이 시작된다.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하면 이해되지 않는 신기한 이 날씨는 썩 나쁘지 않다. 저녁엔 더위가 싹 씻겨 내려가고, 아침엔 상쾌한 공기와 청명한 하늘이 나를 반겨주는 탓이다. 한낮 불볕더위라도 빨래 안 마를 걱정과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 불편할 생각은 넣어둬도 되니 말이다. 요즘이 딱 그 시즌이다.
평소보다 좀 이른 시각, 오후 6시부터 갑자기 하늘이 요란해지더니 욕실에서 샤워하는 동안 창 밖에서는 번쩍번쩍 날 리가 났다. 혹여나 요엘이 샤워하고 나와서 소리가 무서워 얼른 뛰어서 방으로 오다가 넘어졌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서워서 그랬어?"라는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이유는 아니었나 보다. 왜 뛰어 왔는지 이야기를 못하는 것 보니, 그냥 빨리 침대로 들어가고 싶었나 보다. 보통은 욕실에서 씻고 물기를 수건으로 다 닦은 후 로션까지 바르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터라 오늘은 도통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됐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다시 물었다.
"아까 형이 같이 씻자고 했는데, 형이 자꾸 귀찮다고... 나는 무서운데..."
그거였다. 무서운 거였다. 얼른 씻고 나와서 물기를 닦았어야 했는데, 다엘이가 요엘을 두고 먼저 나왔고, 마침 큰 천둥 번개 소리에 놀란 게 맞았나 보다. 갑자기 미안하고 안 쓰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아홉 살, 자기주장이 점점 강해지는 시기이다. 마냥 귀엽기만 하던 녀석이 요즘 종종 얄밉다. 하는 말마다 말꼬투리를 잡고, 자기는 뭐든 다 안다고 말한다. 시키는 일은 다 귀찮아한다. 어떻게 하면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까 싶어 요리조리 피해다는 꼴이 아주 볼상 사나운 요즘이다. 모르는 것도 진짜로 알면 상관없는데, 모르는 데 안다고 말한다. 그것도 "알아'가 아닌, "알고 있어이다. 그냥 자기는 다 알고, 다 할 수 있고, 누나 형과 비교당하는 것도, 자기 위주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 것도 모두 다 불만인지 자주 툴툴거린다. 별것 아닌 일도 빡빡 우기다가 형, 누나에게 쿠사리을 먹고 입은 댓 발 나와있는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첫째 별이와 다섯 살 터울, 다엘이 와는 네 살 터울, 이제 형, 누나가 몸이 점점 더 커질수록 막내 요엘은 더 덤비면 안 되겠다는 걸 느낄 때가 됐다.
저녁 내내 마음이 시큰거렸다. 녀석 아팠을 텐데, 놀랐을 텐데......
종종 그럴 때가 있다. 아이가 다쳐서 아픈 순간 내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말이다. 머리는 얼른 안아주라고 하는데, 내 기분과 입은 머리와 가슴을 따라가지 못하고 이미 터져 나와서 화살이 되어 아이를 마구 공격하고 있는 순간 말이다. 상황은 짧게 종료됐다. 수건으로 요엘을 닦아 주고 옷을 입으라고 준 후, 나는 다시 내 자리에 와서 앉았다. 못내 마음이 걸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요엘을 불러 머리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다행히 멀쩡했다. 다시 까불이 상태로 돌아왔다. 10분이 흐르는 동안 '오늘 저녁 구토 하는지 봐야겠다. 어디 더 아픈 데 있는지 살펴봐야겠다.'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일을 했다.
요즘 하도 말을 안 들어서 내가 잔 소리가 늘었다. 그러다 사고가 나 크게 다칠 뻔하니까 마음이 더욱 덜컥했다. 입으로는 이 녀석, 저 녀석, 이 쌔끼, 저 쌔끼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리 말을 안 듣고 떼를 써도, 짜증이 늘었더도 내가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본능적으로 엄마라서 그렇고,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기에 그렇다. 한쪽 마음에는 그 시간에 다엘이 옆에 있어줬더라면 그런 사고 나지 않았을 텐데 생각이 들다가, 다엘이 아니라 내가 그 시간에 씻는 걸 봐주고 수건으로 닦아 줬더라면, 아니 좀 들여다 봐줬다면 그런 일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봐줬더라면으로 끝났다.
그저 더 큰 사고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아이에게 한 내 반응이 썩 맘에 들지 않는 날이다. 덤덤하고 담담한 엄마인 편에 속하지만, 아직 담담까지 가기는 아직 약간 쫄보인가 보다. 쫄보인들 어떠리, 어쩌면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자식 걱정 안 하는 부모가 없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아무 일 없어 감사한 밤이다. 덥다고 침대가 아닌 소파에 누워 쌔근 잠든 녀석을 보고 이불을 덮어 주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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