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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Feb 04. 2024

퇴고는 아포가토처럼

퇴고는 달고 쓰다 

 



"으...... 갑자기 당이 확 당겨! 남편, 나 아포가토가 먹고 싶은데, 아포가토 좀 만들어 줄려?" 


1차 퇴고의 막바지를 달려간다. 두 번째 책 집필의 초고도 그랬고, 퇴고도 그렇고, 첫 번째 책 보다 더딘 느낌이다. 할 일이 많아서 그렇다는 건 그저 핑계 밖에 안된다. 그 사이 한 달 만에 네 번째 공저를 집필했고, 곧 출간이 될 거다. 나에게 공저는 공저고, 개인 저서 작업은 또 다른 영역이다.  에피소드를 더듬고 생각을 연결해야 하고 단단하게 글을 만들어야 하지만, 그저 글쓰기의 연장선에 있을 뿐이다. 바쁘다는 핑계의 영역으로 분리할 수 없다. 


"대령이오~" 

5분 만에  남편이 아포가토를 만들어왔다. 아포가토는  만들기 어렵지 않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쿱에 에스프레소 한 잔 부으면 끝이다. 지금 저녁 5시 반을 넘겨서 커피를 마시면 저녁에 잠이 안 올 텐데 이 시간에 참지 못하고 아포가토 주문을 한 나도 참 나다. 오전에도 이미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셨고, 한글학교에서 누군가 전해준 아이스 믹스 커피도 이미 한 잔 마셔서 카페인 초과다. 카페인에 약해서 잠 못 잘 거 알면서 못 참고 굳이 먹는다. 글 쓰는 이 순간 오늘 밤이 심히 걱정된다. (굳이 안 써도 되지만, 지금도 숟가락으로 홀짝거리면서 두 스푼을 호로록 마셨다.)


아포가토는 커피는 조금이고, 아이스크림이 많다. 사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건지 커피를 먹는 건지 한 번에 두 개를 다 먹겠다는 건 조금 욕심 같기도 한데, 이거 만든 사람 칭찬하고 싶다.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쓴 에스프레소가 섞여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뜨면 약간 쌉쌀하지만 기분 좋게 달달하다. 그렇게 게눈 감추듯 아이스크림이 뱃속으로 사라지고 나면, 쓴 커피만 남는다. 그럼 이제 아이스크림과 살짝 섞인 라테 맛을 즐긴다. 퇴고를 하면서 아포가토라니, 어쩜 이렇게나 닮았을까 싶은 생각에 바로 쓰러 달려왔다. 


초고집필을 마치고 나면 내가 하나의 주제로 40 꼭지를 썼다는 쾌감과 희열에 룰루랄라 춤이라도 추고 싶어 진다. 그러나 이제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에 금세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쳐먹는다. 퇴고할 때는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진득하게 글을 뜯어고쳐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초고에서 잘 못 썼던 문장, 비문, 어색한 문장, 오탈자, 맥이 통하지 않는 부분, 어색한 문단, 필요 없는 문장 그리고 주제가 명확지 않는 부분까지 모조리 잡아내야 한다. 초집중해야 하는 시간이다. 물론 1차 퇴고 후 2차, 3차 원한다면 10차까지도 할 수 있는 퇴고이다. 그러니까, 퇴고는 정해진 횟수가 없다. 내 글의 퀄리티가 좋아진다면 얼마든지 몇 번이고 더 할 수 있어야 한다. 헤밍웨이도 퇴고만 100번을 헸다는데, 내가 뭐라고. 

현실은 100번까지 없다. 적당히 어느 정도 선에서 손을 털어야 때가 온다. 번의 퇴고를 하더라도 내가 지금 퇴고에 있더라도, 그저 지금 순간 집중해서 최고의 퀄리티로 만들어내야 한다.


퇴고는 쓰다. 잘 다듬어진 문장을 보면 뿌듯한 마음도 들지만 해도 해도 영 뭔가 마음에 썩 들지 않을 때는 어딘가 씁쓸하다. 이렇게 책을 내도 되는 걸까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는 말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어찌 되었든 후회도 최소한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혼을 갈아 넣었다고 해도 아쉬움은 남는 게 바로 집필인 듯하다. 이제 고작 1차 퇴고 마무리 앞두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또한 씁쓸한데, 작업이 끝나고 세상에 책을 생각하니 두근두근 설레기도 한다. 


그러니 지금 내 기분이 딱 아보카도 같다. 

글 쓰면서 한 잔 다 먹었으니, 후회 없는 퇴고를 위해 다시 또 작업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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