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는 달고 쓰다
"으...... 갑자기 당이 확 당겨! 남편, 나 아포가토가 먹고 싶은데, 아포가토 좀 만들어 줄려?"
1차 퇴고의 막바지를 달려간다. 두 번째 책 집필의 초고도 그랬고, 퇴고도 그렇고, 첫 번째 책 보다 더딘 느낌이다. 할 일이 많아서 그렇다는 건 그저 핑계 밖에 안된다. 그 사이 한 달 만에 네 번째 공저를 집필했고, 곧 출간이 될 거다. 나에게 공저는 공저고, 개인 저서 작업은 또 다른 영역이다. 에피소드를 더듬고 생각을 연결해야 하고 단단하게 글을 만들어야 하지만, 그저 글쓰기의 연장선에 있을 뿐이다. 바쁘다는 핑계의 영역으로 분리할 수 없다.
"대령이오~"
5분 만에 남편이 아포가토를 만들어왔다. 아포가토는 만들기 어렵지 않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쿱에 에스프레소 한 잔 부으면 끝이다. 지금 저녁 5시 반을 넘겨서 커피를 마시면 저녁에 잠이 안 올 텐데 이 시간에 참지 못하고 아포가토 주문을 한 나도 참 나다. 오전에도 이미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셨고, 한글학교에서 누군가 전해준 아이스 믹스 커피도 이미 한 잔 마셔서 카페인 초과다. 카페인에 약해서 잠 못 잘 거 알면서 못 참고 굳이 먹는다. 글 쓰는 이 순간 오늘 밤이 심히 걱정된다. (굳이 안 써도 되지만, 지금도 숟가락으로 홀짝거리면서 두 스푼을 호로록 마셨다.)
아포가토는 커피는 조금이고, 아이스크림이 많다. 사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건지 커피를 먹는 건지 한 번에 두 개를 다 먹겠다는 건 조금 욕심 같기도 한데, 이거 만든 사람 칭찬하고 싶다.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쓴 에스프레소가 섞여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뜨면 약간 쌉쌀하지만 기분 좋게 달달하다. 그렇게 게눈 감추듯 아이스크림이 뱃속으로 사라지고 나면, 쓴 커피만 남는다. 그럼 이제 아이스크림과 살짝 섞인 라테 맛을 즐긴다. 퇴고를 하면서 아포가토라니, 어쩜 이렇게나 닮았을까 싶은 생각에 바로 글 쓰러 달려왔다.
초고집필을 마치고 나면 내가 하나의 주제로 40 꼭지를 썼다는 쾌감과 희열에 룰루랄라 춤이라도 추고 싶어 진다. 그러나 이제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에 금세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쳐먹는다. 퇴고할 때는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진득하게 글을 뜯어고쳐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초고에서 잘 못 썼던 문장, 비문, 어색한 문장, 오탈자, 맥이 통하지 않는 부분, 어색한 문단, 필요 없는 문장 그리고 주제가 명확지 않는 부분까지 모조리 잡아내야 한다. 초집중해야 하는 시간이다. 물론 1차 퇴고 후 2차, 3차 원한다면 10차까지도 할 수 있는 퇴고이다. 그러니까, 퇴고는 정해진 횟수가 없다. 내 글의 퀄리티가 좋아진다면 얼마든지 몇 번이고 더 할 수 있어야 한다. 헤밍웨이도 퇴고만 100번을 헸다는데, 내가 뭐라고.
현실은 100번까지 할 수 없다. 적당히 어느 정도 선에서 손을 털어야 할 때가 온다. 몇 번의 퇴고를 하더라도 내가 지금 몇 차 퇴고에 있더라도, 그저 지금 이 순간 집중해서 최고의 퀄리티로 만들어내야 한다.
퇴고는 쓰다. 잘 다듬어진 문장을 보면 뿌듯한 마음도 들지만 해도 해도 영 뭔가 마음에 썩 들지 않을 때는 어딘가 씁쓸하다. 이렇게 책을 내도 되는 걸까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는 말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어찌 되었든 후회도 최소한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혼을 갈아 넣었다고 해도 아쉬움은 남는 게 바로 집필인 듯하다. 이제 고작 1차 퇴고 마무리 앞두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 또한 씁쓸한데, 작업이 끝나고 세상에 나 올 책을 생각하니 두근두근 설레기도 한다.
그러니 지금 내 기분이 딱 아보카도 같다.
글 쓰면서 한 잔 다 먹었으니, 후회 없는 퇴고를 위해 다시 또 작업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