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이면 된다.
며칠 전 문득, 알레르기와 비염이 있어도 음식 알레르기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오랜만에 찾은 근교의 식당에서, PRAWN(머리부터 꼬리까지 껍질채 튀겨진 새우)와 HAKE(대구)를 시켜 먹던 중이었다. 새우의 머리는 보통 안 먹는데, 오늘은 그 머리마저 씹어 먹고 싶었다. 완전히 다 넣고 씹지는 않았지만, 머리가 분리되는 부분을 쪽 빨아먹고, 몸통과 꼬리의 껍질까지 잘근잘근 씹으며 짭조름한 맛을 음미했다. 그 바삭거리는 식감까지 함께 즐기며 말이다. 결국 껍질은 좀 뱉어내야 했지만, 꼬리를 아주 야무지게 씹어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렇다. 나는 새우를 좋아한다. 이 좋아하는 새우, 비싸서 자주 먹지도 못하지만 가끔이라도 내가 이 음식을 먹었을 때 일어날 어떤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감사로 다가왔다.
"와, 이 맛있는 거 못 먹는 갑각류 알레르기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운이야!"
우리 둘째 다엘이가 돌이 되기도 전에 호두와 땅콩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았다. 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누나 별이 바닥에 흘린 호두를 우연하게 손에 쥐고 입에 비볐는데 온 얼굴에 불은 반점이 생겨 기함했던 경험이 있다. 하루는 별이가 바닥에 우유를 쏟았는데, 손으로 비벼서 얼굴에 문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입 주변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이유기부터 닭고기 뺀 모든 고기류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다. 심지어 아이들에게는 안전하다는 흰 살 생선까지 말이다. 모유가 모자랐지만 우유 알레르기 탓에 분유대신 두유를 먹였다. 이유기에도 늘 배가 고파 새벽에 일어나 두유 한 팩은 꼭 먹어야 잠에 들었다. 그랬던 다엘이 이제 12살이 되었고, 우유는 물론 땅콩도 먹는다. 우유 알레르기는 두 돌 지날 무렵부터 괜찮아졌다. 땅콩 알레르기는 5살이 지날 무렵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다른 알레르기 반응은 다 사라졌는데, 호두와 피칸 알레르기는 아직 남아있어서 절대 입에도 못 대게 한다. 호흡기가 붓는 증상을 경험한 뒤로는 무서워서 아예 차단하고 있다. 게다가 비염도 있는데 갈대 알레르기, 먼지, 꽃가루 알레르기도 가지고 있다. 정말 황당하고 속상한 건 고양이 털 알레르기도 있다는 것이다.
4년 전, 프레토리아서 약 5시간 떨어진 지인의 집에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차 안에서 갑자기 눈 알이 튀어나올 만큼 부풀어 오르고 숨을 점점 쉬기 힘들어해서 저러다가 어떻게 되어 버리는 것 아닌가 싶은 두려움에 발을 동동 거렸던 경험이 있다. 고속도로 한 폭판 겨우 딱 1개밖에 없는 휴게소에 어서 다다르기만을 기다렸다. 다행히도 함께 동행했던 지인 차에 알레르기 약이 있었고, 얼른 알약하나를 꺼내 아이 입에 밀어 넣었다. 원인이라곤 그 집에 있던 3마리 고양이 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한 번도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던 때였다. 그 계기로 고양이 털 알레르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뒤로는 고양이가 있는 집에만 다녀와도 눈이 붓고, 가려워지는 증상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역시 맞았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다.
우리 집 상비약 중에는 반드시 알레르기 약이 있고, 반드시 차에도 상비약으로 한통 챙겨 둔다.
원인을 몰랐다면 답답했을 텐데, 몇 번의 경험과 실험을 통해 우리는 알레르기 피검사를 하지 않고도 다엘이 가진 알레르기의 원인 몇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경험에서 얻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가진 경험을 누군가에게 공유할 때, 그 경험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상황이나 환경에 놓인 사람들에게 나누면 된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소비한다. 그리고 그게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된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가장 쉬운 예이다. 큰 도움을 주어야지만 돕는 게 아니듯, 내가 경험했던 힘든 일, 어려운 일, 예상치 못했던 상황을 잘 헤쳐 나온 일, 내게 찾아온 행복을 그냥 내 안에 가둬두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낸 후 얻게 된 더 큰 행복까지도 모조리 나누면 된다.
오늘, 정규 수업에서 작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늘 그렇듯 일상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온 글감으로 메시지를 찾는다. 그렇게 일대일 대화를 나누는 형태로 수업을 하면 자연스럽게 글 쓰고, 메시지 찾는 훈련이 된다. 우리 작가님들도 나도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고 여겨진다. 수업을 진행하는 나도 어느새 이야기에 몰입되곤 하기 때문이다. 오늘 수업에서 작가님이 고등학교 시절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통해 '다른 관점'으로 다시 그 시절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며 메시지를 도출하는 시간을 가졌다. 너무나도 참한 메시지가 나왔고, 작가님을 칭찬했다.
우리 최 작가님이랑 글을 쓰면 글이 잘 써질 것 같아요.
작가님이 내게 던진 그 말을 듣고 대화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함께 글 쓰고 메시지를 도출하는 훈련이 정말 필요하다는 결론과 확신을 갖게 되었다. 훈련 효과가 있다.
경험에서의 시작이다. 과거의 이야기를 쓰고,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이면을 들여다보고, 한 번 뒤집어보기도 하고, 비틀어보기도 하면서 글을 쓴다.
글도 많이 써본 사람이 잘 쓰는 법이다. 글쓰기는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