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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l 05. 2024

돌아가도 괜찮아

레이첼 편


제주 여행 셋째 날.

오늘은 제주 동쪽에 위치한 ’ 영주산‘으로 가기로 한 날이다. 동쪽에 간 김에 유명한 맛집에서 고기도 먹고, 독립서점과 스누피 박물관도 가볼 계획이었다.

새벽 코칭을 마치고, 사이버대 시험까지 겹친 내 일정을 봐주느라 리나가 아침 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험 끝나자마자 나가려고 트레이닝 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안 그래도 까맣게 탄 피부,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하면 농담하냐며 웃는 사람들 덕에 자꾸 더 하얗게 칠하고 싶어 진다. 선블록과 비비크림에 리나가 만든 씨씨쿠션까지 꼼꼼하게 토닥거렸다.

전날 저녁 장을 봤다. 달걀, 블루베리, 당이 적은 요거트, 방울토마토, 리나가 가져온 견과류와 비타민까지 취향이 딱딱 맞는 아침 메뉴다. 오전 메뉴도 더 이야기할 것도 없이 밍밍하게 먹는 거나 적은 양까지 이렇게 비슷한지 몰랐다. 같이 마주 앉아 아침을 먹으며 하루 일과를 이야기 나눈다.


제주 서쪽에 위치한 숙소부터 제주 동쪽에 있는 영주산까지 가려면 족히 한 시간 이상 달려야 한다. 수원 사는 리나는 안양 사무실까지 빨리 달리면 20분이랬는데, 제주 와서 일주일 내내 운전하고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게 못내 미안했다. 교대해 줄 수 있지만, 오랜만의 좌 핸들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낼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그 덕에 리나는 운전대를 수시로 잡아야 했다. 원래 타고 다니는 차는 카니발, 이번 렌터카는 낮은 세단. 의자 키높이 조절이 없는 차라 앞이 잘 안 보인다며 운전 내내 고개를 쭉 빼고 운전하느라 목이 아파 보였다.

이번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서 밤 11시부터 새벽 1시 반까지 코칭하고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다시 7시까지 코칭을 하며 잠을 줄여야만 했기에 나는 병든 닭처럼 계속 꾸벅거렸다. 최대한 두 눈 똑바로 뜨고 있었는데 내 눈은 감기기를 반복했다. 운전에 방해될까 미안해서 잠에 안 든 척 조신하게 졸아보려 했건만 내 고개는 헤드뱅잉에 사정없이 툭툭 떨궈졌다. 나만 피곤한 게 아닐 건데…


꾸벅꾸벅 졸던 차에 영주산 도착이다.

분명히 영주산에는 꽃도 많고 예쁜 나무길도 있다고 했었는데 달랑 언덕 하나만 보인다. 저 멀리 들판 위에 소떼만 보일 뿐 특별한 뷰는 없었다.

“아 여기는 오름이 아니고 산이니까 그런가? 영주산?”

인터넷에서 봤던 정보에 속은 느낌도 들었다.

“아니야. 분명 다른 길이 있겠지.”

그저 바닥에 널린 소똥만 밟지 말자며 언덕을 조심조심 올랐다. 기대했던 뷰는 없었지만 저 멀리 보이는 풍차와 내려다 보이는 마을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길을 따라 쭉 걸었다. 이런 풍경이면 어떻고 저런 풍경이면 어떠랴. 우리 모습 한 장에 담아보자는 심정이었다.

몇 장의 사진을 찰칵거리며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포즈 주문을 했다. 잘 못 왔다는 아쉬움을 가질 무렵 눈앞에 꽃 길이 등장했다.


“여기야!!”


생각보다 긴 길을 뚜벅뚜벅 걸으며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땀을 흘려도 서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에 즐거웠다. 생각보다 더 아름답고 동화의 한 장면 같았던 이 길을 한참 걸었다. 올라갔으니 정상은 찍고 내려와야 하지 않겠냐며 뚜벅뚜벅 걸었다. 오랜만에 이렇게 매일 걸으니 엔돌핑이 상승했다. 나는 걷는 게 좋다. 리나도 걷는 게 좋단다. 점점 더워지는 기온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다 못해 흘러내렸다. 리나는 가방에서 손수건 하나 꺼내서 땀을 닦았다. 참 순간순간 보면 준비성 철저한 J가 맞나, 나도 J인데 이런 걸 보면 경험과 세심함에서 나오는 생활습관인가 싶다.


무튼 우리는 영주산을 나와 제주에서 고기는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차에 몸을 싣고 네비에 목적지를 찍었다. 분명히 목적지를 찍고 가는 길인데 리나는 여러 번 어머! 여기가 아닌가 봐. 나 또 잘못 들어왔네. “ 라며 핸들을 돌린다. 분명 네비에서 ”다른 길로 유입하지 않도록 유의하세요. “라고 말해주는데 네비는 네비일 뿐. 네비에 찍힌 길은 마지 보지 않고 운전하는 건 기분 탓이겠지. 끝내 나는 한 마디 했다.


“리나, 주변을 잘 안 보는구나?”


그리곤 둘이 배꼽 잡고 한참을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몇 차례 잘못 들어갔었고, 가까이 물건을 놓고도 못 찾고 헤매는 모습을 보니 완벽해 보이는 사람 허점을 보는 것 같아 인간미에 즐거웠달까.

그저 길을 돌아가도, 다음 스케줄이 있더라도, 시간에 쫓길 필요 없이 유유자적하게 즐기는 시간이 좋았다. 그저 몸을 차에 싣고 여기저기 잘못가도 드라이브하며  잠시 잠깐 차를 세워 놓고 다른 곳을 찾아도 되니까 말이다.



가려던 동쪽 유명한 고깃집이 리모델링 공사 중이다. 어쩐지 다 왔는데 한참을 찾아도 안 보이더니 바로 코앞 공사 현장이었다. 그 탓에 바로 옆 다른 집에서 고기를

먹었지만, 어찌나 맛있던지 고깃집 제대로 잘 왔다 싶었다. 왜 남아공에서 먹는 고기랑 한국에서 먹는 고기 맛이 다른 걸까 생각했다. 아니면 ‘육성가’ 고기만 맛있는 건지도.


이후 동쪽 스케줄이 있었다. 여유롭게 독립서점에 가고 싶었지만 돌발 상황이 생겨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리.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여유로운 시간을 우리 상황에 맞게 쓰기만 하면 되니 괜찮다.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이는 리나에게 운전대를 종이 맡기고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냥 내가 할까 싶다가도 좌핸들 비보호 우회전에 익숙지 않아 겁이 난 것도 사실이었다.


이후로도 여러 번 다른 길로 유입했던 리나 덕분에 “주변”이라는 말만 나와도 웃음이 터졌다.

(내가 운전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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