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수 4일 차의 기록
단수 4일 차다.
3일이면 된다더니 4일로 늘어났고, 앞으로 며칠이 늘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낡고 오래된 프레토리아 전체 배관을 교체하는 일이라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참고 있지만, 내가 참지 않는다고 해서 어쩔 도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리하는 게 더 맞는 처사다.
3년 전, 최장 14일의 정전 경험을 했다. 그때 전기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은 더듬더듬 남의 일 보듯 해프닝으로 삼지만, 당장 물이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으니 나는 다시 오매불망 다리 꼬고 앉아 떨고 있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돌아다녀봤자 사방 어디에서도 물을 구할 곳은 없다. 그래도 다행이고 감사한 건 마트에 가면 마실 물을 팔기 때문에 사서 마실 수 있다. 엊그제 사다 놓은 물 6통이 그새 바닥이 나서 또 사야 하지만 살 수 있는 게 어딘가 싶다. 전기가 나가 냉장고 얼음 구할 때는 모든 마트의 얼음이 동나있었다. 지금은 전기라도 들어와 있으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물이 없어 빈 기저(물을 데우는 통)에 전기를 돌리면 타버리는 현상에 따뜻한 물은 기대도 못한다. 찬물도 없는 통에 무슨.
어제 교회 가는 길, 오늘 길에서 본 흑인 빈민촌의 모습은 바싹 말라있었다. 오죽하면 사방에서 흑먼지가 날려 황사 바람이 일었을까. 동네에 물 하나 없어 그마저도 '나도 물이 필요하오'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미 거덜 난 동네 물탱크 탓에 물을 긷을 곳이 없어 몇 미터를 걸어 나오는 줄지은 흑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JOJO 탱크로 불리는 교회에 마당에 있는 물탱크는 이미 바닥이었다. 돈이 있어야 물이라도 사 먹지, 그런 것 생각하면 나는 불평하면 안 되나 싶다.
아침에 일어나 책 읽고 내 시간을 가지며 먹는 물로 양치하고, 페트병 물을 따라 포트에 데워 음양탕을 마셨다. 어제저녁 오늘은 물이 나올까 싶어 쌓아 두고 잔 설거지는 여전히 더럽게 말라있었다.
바보 같이 아프리카가 어떤 나라인지 알면서 약속한 날에 물이 나올 거란 기대는 대체 왜 한 걸까.
욕조에 받아 둔 물 중 절반을 덜어내고, 절반은 버릴 생각으로 머리를 감았다. 남편이 먼저 감았고, 둘째 다엘, 요엘이 감고, 별이가 감고 내가 제일 마지막에 감았다. 그러니까 제일 더러운 물로 머리를 감았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편견이겠지만, 보통 남편이 제일 더러운 물로 감지 않나 싶은데, 나는 내가 제일 더러운 물로 감았다는 사실에 그래 나는 엄마니까 라며 다독거려 본다.) 아무튼 그 물을 두고 변기 물로 쓰고 있지만, 머리를 감으면 안 됐다.
물 한 방울이 이렇게 아까웠던 적이 있었을까, 나는 받아 둔 물을 양푼에 담았다. 바가지가 하나 없어 양품을 주섬거리면서 꺼냈다. 화장실에서 주방까지 설거지하기 위해 들고 가는 길, 한 방울 안 쏟으려고 조심히 걸었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이렇게 적은 물로 이 만큼의 설거지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국그릇 3개, 미니 냄비 하나, 젓가락 6개, 주걱 1개, 국자 1개, 숟가락과 작은 포크 2개씩, 접시 2개, 머그컵 3개. 이만큼의 양을 설거지하는데 적은 물을 아껴서 하려니 좀스럽고, 불편하긴 했지만 가능은 했다. 그리고 몇 방울 되지 않은 물과 주변에 튄 물에 키친타월을 적셔 테이블 위까지 닦았다. 어메이징.
항상 하는 말이지만, 전기와 물, 두 가지가 동시에 끊기지 않는 게 어딘가 싶다가도 이건 뭐 오지 체험하는 것도 아니고, 궁상맞다. 춥다. 겨울이라서 다행인 걸까, 겨울이라서 안 좋은 걸까. 아무튼 나는 지금 머리는 못 감았지만 세수는 했고, 화장도 했다. 그리고 세수한 물은 버리지 않았다. 어디다 쓰든 써야 한다.
어둡고 춥지만 깨끗한 일상과 밝고 덜 춥지만 더러운 일상 중 뭐가 더 나을까.
이왕이면 밝고 깨끗하고 춥지 않은 일상이면 더 좋지 않을까.
나의 일상도 사회도 사람도.
어서 물이 나오길 기다리며 물 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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