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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ug 26. 2024

엄마 먼저 보내고, 그 다음엔 아빠.

두 부모님을 먼저 보낸 주니어. 

삶은 돌연한 사건과 우연한 만남의 연속으로, 우리는 훗날 돌아볼 때에야 비로소 그 모든 일들이 특별했음을 깨닫는다.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줄 이은 장례 소식이다. 한국 지인 아닌,  직접적으로 관계가 깊지 않지만 그래도 한 식구랄 법한 아프리카 현지 교회 식구들 가족 장례 소식이다. 어제 할머니 장례식이어서 '아무'는 오늘 교회 오지 못했고, 오늘 아침 아빠가 갑작스레 돌아가시는 바람에 '주니어'가 교회 오지 못했다. 아무는 할머니 장례차 멀리 떠났고, 주니어는 교회 근처의 집에서  아버지와의 작별 인사 중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함께 사역하는 오 선교사님, 선교사님과 함께 집을 방문했다. 


흑인들이 사는 동네를 걸어서 다니는 일은 거의 없다. 종종 집에 찾아가야 할 일이 있을 때만 걸어보는 길이다. 질펀한 바닥 위에 여기저기서 주워와 망치로 깨부순 돌덩이들이 수북한 길을 걸으려니 걸음이 얌전해졌다. 가는 길 내내 길에 앉아 있고, 서있는 흑인들과 "헬로" 인사하며 계속 걸었다. 도착한 주니어 집의 입구부터 동네 주민인지, 가족들인지 알 수 없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한국 시골 할아버지 장례에서 들어 본 "아이고아이고" 같은 소리는 없었다. 눈물 소리도 없었다. 조문을 표하는 하얀꽃 한 송이도 없었고, 음식도 없었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빠 시신은 어디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환한 대낮, 아직 4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집 안은 캄캄했다. 방안으로 들어가니 촛불 2개를 켜놓고 사람들은 의자에 둘러 앉아있었다. 주니어의 엄마로 보이는 한 여인은 등에 담요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슬픔에 깊이 젖어 보였다. 그렇게 사람들은 고인과 이별을 하고, 남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아직 고등학생인 주니어는 어렸을 친엄마를 먼저 보내드렸다고 들었다. 그리고, 갑작스레 오늘 아침 아빠마저 보내드려야 했다. 


주니어가 보이질 않아 물어보니 잠깐 어디에 갔다며 누군가가 불러오겠다고 했다. 잠시 뒤 도착한 주니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아 두 손을 꽉 쥐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울고 있었다. 촉촉하게 젖은 눈가, 위로의 의미와 인사로 나눈 허그에서 내가 그를 안아 주어야 판에, 되려 주니어가 나를 안아 주었고 그의 마음이 짠하게 들어와 닿았다. 얼마나 황망할까, 얼마나 힘들까, 어쩌면 지금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아무런 실감이 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뒤 마당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사람들이 조문을 번갈아가며 하듯, 벽돌로 지어진 한 개짜리 방안으로 들어갔고 한 1~2분 정도 지나자 애도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밖에서 주니어와 인사를 나누다 조선교사님, 오선교사님, 남편과 나는 모두 주니어를 손과 어깨를 붙잡고 기도 한 후 인사를 하고 돌아 나왔다. 돌아나오면서 따라나와 오늘 네오와 퀘라노가 교회 왔었냐며 친한 친구들을 안부를 묻는 주니어의 말에 이 상황에서 친구도 챙기는 맘 착한 녀석이구나 싶었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주니어가 참 착하게 생겼어 그치? 너무 안 됐다. 에고, 이제 고등학생인데 앞으로 잘 헤쳐 나가야  할 텐데." 

"내가 지난번에 주니어한테 휴대폰 그거 중고 줄 때도 얼마나 좋아하던지, 나를 진짜 세게 꽉 안아주면서 고맙다고 했었거든. 녀석이 착한데 아이고" 

"주니어 엄마는 새엄마니까, 또 다른 사람 만나서 결혼하겠지? 그럼 주니어는 누나랑 살건가? 작은 동생 한 명이 더 있다던데 그 아이는 새엄마가 낳은 건가." 


우리가 알고 있는 남아공 흑인들의 문화에 덧대어 추측이 난무하는 이야기로 차 안을 메웠다. 이렇든 저렇든 남의 일이고 그저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만 늘어놓고 있노라니 뭐 하는 짓인가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이렇게라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마음이 무거울 것 같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저녁 식사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었다. 


인생에서 함께 했던 사람 중 그 누구라도 잃는 것, 실연의 감정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까, 

삶은 돌연한 사건과 우연한 만남의 연속이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고 미래의 어떤 것도 알 수 없다.  그저 시간이 흐른 뒤 훗날 돌아볼 때에야 지나온 모든 일들이 특별했음을 깨닫는다. 그 때는 몰랐던 지극히 평범한 일이 특별한 일이었음을, 평범한 일, 그저그런 일이 내 인생의 기적같은 특별한 일이었음을 말이다. 


아마 주니어도 오늘 하루, 그리고 지금부터의 시간 속에서 지난날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아빠와의 시간을 곱씹지 않을까, 때때로. 수시로. 

그저 평범하다고 여겼던 자신의 일상에 특별한 일이 생겼고, 특별한 일이 달갑지 않은 아픔이라는 사실에 몸서리치게 힘들고 허전할지도 모르겠다. 가히 상상이 안된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를 위로하고, 

나의 삶에서 느끼는 매일의 '평범한 일상'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시간이 아니란 것에 감사를 해본다. 


요즘 말을 지지리도 안 듣고 성질로 머리에 뿔이 나다 못해 엉덩이에까지 뿔이 나게 만드는 요엘이 녀석 탓에 목소리가 자꾸 하이톤의 루이암스트롱으로 변한다. 오늘 오전에 그리고 오후에 교회에 다녀와서도 나는 표독스러운 엄마 역할을 자처했다. 남의 아픔을 뒤로한 채 내 삶을 돌아보는 일이 맞는지 모르겠다만, 적어도 우리는 매일의 시간이 후회로 덮이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 실제로 후회할지언정. 정신부터 차려보자 싶다. 

지금 오늘, 이 순간만큼은 그렇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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