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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Oct 28. 2021

바로 기록해야 하는 이유

글감 미루지 않기


기분 나쁜 일이 생긴다.

기분 좋은 일이 생긴다.

기억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

특별한 감정이 생긴다.


글감이 생겼다.


보통 설거지할 때, 청소기를 돌릴 때 글감이 떠오른다. 아이들, 남편, 주변 사람들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 드는 오만 잡다한 생각들 중에 뭔가 글로 옮겨야만 할 것 같은 일들 말이다. 문제는 설거지를 할 때인데, 손에 거품과 물을 잔뜩 묻힌 채 메모를 하겠다고 손을 닦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글감을 날리지 않기 위해 옷에라도 손을 슥슥 닦고 펜을 잡거나 휴대폰을 들어 그 잠깐의 몇 단어나 몇 마디를 적으면 될 것을 그저 머릿속으로 되뇐다. 그러곤 쓱 지나가버리는 게 태반이다. 일부러 작은 수첩과 펜을 주방에 가져다 놓았는데 빨리 끝내고 노트북 앞으로 뛰어 올 생각으로 머리로 중얼거리면서 설거지를 마친다.

빌어먹을 기억력. 누굴 탓할까, 적었으면 될 것을 늘 놓쳐버린 기억을 주섬주섬 담으려다 도무지 그때의 그 감정이 당겨지지 않아서 버려둔 소재만 해도 몇십 개는 될 것 같다.


며칠 전 너무 힘들고 가슴 아픈 감정을 느낀 그날 밤, 블로그에 글쓰기 수업 리뷰를 하면서 글쓰기 실습을 할 겸 내 이야기를 덤덤하게 적어내려 갔다. 참 신기한 게 격한 감정이나 북받치는 감정을 참다못해 글로 토해내면 그 당시의 심정이 고스란히 글에 묻어난다. 게다가 손에 모터를 단 것처럼 한 페이지는 빼곡히 채워나갈 수 있다. 꼭 그런 날 올린 글을 읽은 지인 혹은 이웃들은 글을 읽으면서 공감 혹은 감동을 받거나 마음이 아렸다는 말을 건네주곤 한다. 그러나, 그날의 일을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나 더듬거리며 쓰려고 하면 그 당시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이 안 될 뿐만 아니라, 기억해내느라 더듬거리면서 쓰기 때문에 족히 몇 분은 더 걸린다.  때로는 그렇게 쓰려고 반쯤 기록하고 날려버린 글도 꽤 많다. 사실, 아직도 그렇게 쓰다 만 글은 내 브런치 작가 서랍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아마 이렇게 뒤늦게 적은 글을 읽은 독자들은 감동이 절반으로 줄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어도 글의 온도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백견이 불여일행.

글쓰기 스승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글쓰기 책을 백번을 읽어도 직접 글을 써보면서 체득하는 것이  빠르다. 목이 터져라 설명하는 강의를 들은들,   쓰고 글을 쓰는 상상만 한들, 글쓰기 실력이  리가 없다.

그저 이 한 가지 깨달음이 오늘 나에게는 신선하고 기록할만한 일이다.

누군가도 내 글을 읽었다면 오늘 있었던 그 어느 한 가지 에피소드라도 직접 글로 남겨 보면 알 것이다.

내일이 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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