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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Oct 02. 2021

컵라면 동맹

모녀끼리만 가진 비밀




저녁 7시.

우리 집은 보통 저녁 준비를 5시에 시작해서 6시에는 식탁에 둘러앉는다. 간혹 6  정도가 되는 날도 있지만 해가 일찍 지고 아이들 취침시간이 9 이전에는 갖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빨리 먹으려고 노력한다. 평소 6시만 되어도 "저녁 메뉴가 뭐예요?" "우리 오늘  먹어?" 다섯 식구  나를 빼고 나머지     사람만 2번씩 이야기해도 족히 질문이 족히 6 넘는다.  질문을 받을 때면   다물라를 외치면서 제발  그만 물어보라고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이번  밀린 일들이 많아서 실시간 수업으로 듣지 못한 온라인 강의와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7시가 되었다. 저녁 찬거리도 준비해놓지도 못했고, 국도 바닥이 났다. 밥통의 밥은 소량씩 먹는다면 가볍게 먹을  있는 만큼이 전부다.  이렇게  차리는 시간은 빨리 오는지 하루 삼시세끼 준비해서 먹는  진짜로 ''이다.

시간은 늦었고 배를 시계방향으로 돌려 비비엄마를 부르면서 20미터 앞에서 걸어오는 딸을 보자 벌떡 일어났다. 사실,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하면서 일어나야지, 속으로  번도  외쳤다.  쫓기듯, 혹은 빨리 끝내고 싶은 일이 있을 때는   먹어도 좋으니까 아무것도 방해  받고 끝내고 싶은 날이 대다수다. 그러나, 엄마로서의 직무유기는   없으니 일단 저녁을 준비하기로 한다.



며칠 전 여행에 다녀와 달랑 하나 남은 작은 컵사이즈의  튀김우동면이 눈에 들어왔다.

옳다 커니! 일단 하나는 됐고, 고개를 들어 주방 선반을 올려다보니 한 봉지 5개입 사리곰탕면을 사서 세 개 끓여먹고 두 개 남긴데 눈에 들어왔다.


"고뤠~ 저녁은 이거야!"

   

평소 같으면 저녁으로 라면은 안 먹는다. 대부분 점심때 먹는데, 평소에도 2주에 1번 정도 먹으면 많이 먹는 거고 한 달에 몇 번 안 먹는 게 라면이다. 밥하기 싫은 날에는 라면만큼 고마운 음식이 없다. 아이들도 가끔 먹는 라면은 대환영이기 때문이다. 식구는 다섯 명인데 라면은 두 개, 컵라면은 한 개뿐인데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다가 쪽파를 송송 썰어서 잔뜩 넣고 밥통의 밥이랑 말아서 먹으면 되겠다 싶다. 달걀도 7개 양은 냄비에 담아 물 넣고 소금 톡톡 뿌려서 전기스토브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김치만 얹어서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다행히도 아침 점심을 모처럼 밥으로 먹었으니 저녁에 라면이 가능한 거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라면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보니 나는 평소에 라면만 먹이는 불량한 엄마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모양이다.

자, 이게 문제가 하나 남았다. 작은 컵라면을 막내를 주면 되는 사이즈이긴 한데, 왠지 내가 먹고 싶어졌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에게 "누구 먹을 사람?" 하고 물었겠지만, 일말의 고민도 없이 비닐부터 뜯고 뚜껑을 열어 수프 봉지를 뜯고 쏟아부었다. 그리고 정수기 온수 버튼을 누른 후 물을 안쪽 선까지 부었다.


"우리끼리 먹자. 그릇 줘봐. 얼른 먹어.

"히히히히히. 우리끼리요? 조용히 조용히 먹어요."


문도  달린 주방 싱크대 앞에 서서 작은 컵라면 하나를 그릇에 덜어 반으로 나누고 딸아이와 등을 돌린 채로 혹여나 소리가  나가 동생들이 알아차릴까  후루룩 소리도     젓가락도  되는 라면을 해치웠다. 순간 엄마랑 둘만의 비밀을 공유한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는지 나를  번이고 힐끔 보며 웃음짓는 딸의 모습을  본적 하지만 종종 비밀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며칠 전에도 여행을 가기  입이 가벼운 동생 둘에게는 미리 해줄  없는 비밀을 딸에게만 이야기하면서 입을 무겁게 하라고 했더니 정말 입을  다물고 약속 날까지 지킨 딸을 보면서 제법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컵라면 몰해 하나 나눠먹은   그리 히죽거리고 좋아할 일인가 싶다가도, 엄마와 둘이 공유하는 비밀이 하나  늘어간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는 딸을 보니 나도 마음이 훈훈해진다.


덕분에 사리곰탕라면 두 개에 파 송송 왕창 넣고 삶은 달걀 하나 퐁당 곁들여 밥 말아 다섯 식구 저녁 해결했으니 한 끼 잘 해결했다 싶다.

그나저나 이 저녁에 다른 식구보다 두 세 젓가락 더 먹었으니 지방이 두세 배는 더 생겼을 터.

내일 아침 공복 유산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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