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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Oct 10. 2024

난생처음 파김치



엄마 김치, 식당 김치, 교사 권사님이 만들어 준 김치만 알던 나는 7년 전 남아공에 와서 처음 김장이라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해봤다. 김치가 고팠다. 비싼 배추 한 알이라도 공수해서 김치를 만들 수 있다면 뭐라도 도전해 볼 참이었다. 어린이집 교사로 있을 때 김장을 해봤다. 집에서 엄마가 김장할 때도 거들어 본 적도 있다. 그런데, 재료 준비부터 배추 절이는 과정과 김칫소를 발라 통에 넣는 과정까지 모두 해본 경험이 없었기에 유튜브를 엄청 뒤적거렸다. 한국에 있는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레시피를 불러 달라고 했다. 엄마는 엄마 레시피가 대충 감으로 하기 때문에 몇 컵인지 정확히 말해주지 못했고, '대충' 그렇게 넣으라고 했다.

딱딱 맞추어진 계량이 아니고서는 시작할 엄두조차 나질 않았기에 유튜브에서 찾은 레시피와 엄마 레시피를 적절하게 섞어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냈다. 이게 무슨 나만의 레시피인가 싶지만, 의지할 곳이 없었다. 유튜브를 통째로 따라 하기에는 배추의 크기가 그람수, 배추에 맞는 각 양념의 그람수가 딱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김장은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갔다. 새우젓도 없고, 한국 액젓은 비싸서 사지도 못해 피시소스로 양념을 했고, 고춧가루도 한국 고춧가루가 아니니 여태껏 한국에서 먹었던 맛은 꿈도 못 꿨다.

  

몇 번 하고 나니 제법 있는 재료만으로도 맛을 낼 줄 알게 되었다. 요리가 참 재밌고 좋은 건 하면 는다는 거였다. 가끔 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만든 음식은 맛이 있다. 그게 어떤 맛이든.

배추김치로 겉절이도 만들고, 김장도 해보고, 깍두기도 만들어 봤다. 알타리 김치도 만들고, 동치미도 만들고 오이소박이에 갓김치도 만들어 봤는데, 파김치는 결혼 후 15년 동안 단 한 번도 도전해보지 않은 김치였다. 간혹 누가 주면 얼씨구나 받아먹고, 남편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도 귀찮다며 해주질 않았었다.

며칠 전 한국 야채상에게 쪽파를 주문해서 한 다발받아 놓고 고민이 시작됐다.


이걸로 파전을 해 먹어? 아니지, 잘라서 얼릴까? 뭘 할까 고민을 하다 파김치가 떠올랐다. 김장도 하는데 파김치는 왜 어렵게 느껴졌을까,  뭐 까짓 껏 해보자 싶어 유튜브를 뒤졌다. 참 편리하고 간편한 세상, 유튜브에는 없는 레시피가 없다. 파김치를 한다니 남편이 제일 신나 한다. 파김치 레시피를 보고 흠칫 놀랐다.

“진짜 너무 간단한데?”

파 씻고 다듬는 게 일이지 양념은 깍두기보다 간단했다.

잘 씻어둔 파뿌리 댕강 자르고, 상한 꼬리 가위로 똑똑 잘라내면 준비 완료.  

양파 1개, 밥 반공기, 생강 15g을 물 100ml와 함께 믹서에 넣어서 갈고, 고춧가루 2컵, 설탕 1숟가락, 매실액 반컵, 멸치액젓 반컵 넣어서 휘휘 저어 양념을 만들면 된다. 그리고 보울에 넣어서 파 머리 부분부터 양념 바르고 몸통 푸른 잎까지 잘 고루 묻혀서 통에 담으면 진짜 끝이다. 레시피에 있는 대로 그대로 계량을 맞추지도 않았다.

주부 15년 차가 되어 보니 대강 어느 정도 집어넣고 맛보면서 비율을 맞추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되었다. 이런 자신감은 음식을 만들 때마다 맛있다고 말해주는 남편과 아이들의 말이 가져다준 허세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3일간 실온에서 숙성시키면 맛있는 파김치가 된다. 이제 하루 지났다. 이틀 지나면 맛이 어떤지 알 수 있겠지만, 뭔가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에 성공한 기분이다.  


파김치라 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간단한 일도 마음먹기까지 꽤 오래 걸린다. 마음먹고 일을 벌이고 그 일의 끝을 보기 위해서 움직이는 모든 시간과 노력은 만만히 볼게 아니다. 시작이 있으면 뒤처리까지 해야 하는 법이라 더욱 그렇다.


이제 이틀 후 흰쌀밥과 함께 매콤한 파김치 한 젓가락 하며 오늘의 글을 다시 음미해봐야겠다.

그리 자신할 수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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