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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pr 15. 2022

비우자,인생에서

정말 버리고 싶은 게 뭘까


내 인생에서 버리고 싶은 것. 

그게 뭘까? 

나는 뭘 버리고 뭘 채워야 할까? 



인생에서 버리고 싶은 것이라는 질문을 봤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쓰레기통 그리고 냉장고였다.  버린다는 의미는 더 이상 필요가 없거나 갖고 있고 싶지 않아서 버리는 것이 대부분일 거다. 나에게서 버리고 싶은 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이번 기회에 한번 생각해 본다. 나는 언제 물건을 버렸는지부터 생각해 봤다. 이번에도 계절 옷을 정리하면서 아이들 옷장을 갈아엎었다. 분명 3개월 전에 이사할 때도 필요 없는 것들을 한가득 버리고 잘 정돈해서 넣었다. 그런데 다시 열어 보니 또 정리할 것들 투성이었다. 낡아서 더 이상 안 입었으면 하는 옷,  더러워진 옷 등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것들을 정리했다. 입고 싶지만 작아진 옷 또한 정리 대상이었다. 덕분에 별이는 딱 한 철밖에 입지 못한 유니콘 잠옷을 아는 지인에게 물려주었다.  너무 좋아 가지고 있고 싶지만 가지고 있어봤자 관상용으로 둘 수도 없고 정리해야 할 물건이다. 



"당신, 후줄근한 옷 좀 안 입으면 안 돼? 난 그 옷 좀 안 입으면 좋겠어."

남아공에 오고 나서는 옷을 산 일이 거의 없다. 아이들은 자라기 때문에 종종 필요를 위해 사주지만, 지난 5년간 남편과 나는 옷을 거의 사지 않았다. 가능하면 있는 옷 입고, 어쩔 수 없이 너무 춥다며 최근에 수면 잠옷 하나 산 게 전부다. 


"그냥, 버려. 당신이 알아서 버려. 그럼 딱 입을 거 괜찮은 걸로 몇 벌만 추려서 사서 돌려 입으면 되지. 

버려야 새로 살 수 있어. 옷장에 넣어 두고 새로 사면 또 안 버리고 놔둔다고. "  

남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지만, 또 선뜻 버려지지가 않는다. 


매주 목요일은 쓰레기통 수거 날이다. 그럼 일주일간 모아둔 쓰레기를 검은 봉투에 잘 담아서 쓰레기통에 가져다 둔다. 쓰레기 나가는 날 치우지 않으면 남은 오물을 일주일 동안 끓어 안고 있어야 한다. 시기를 놓쳐서 내놓지 못할 때면 밖에 내놓아도 냄새가 진동을 한다.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지 않아 음식물과 일반 쓰레기를 한데 모아 버리는 이곳 문화에서는 모두 다 짬뽕해 놓아 더욱 심한 냄새가 난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깨끗이 씻어 새 비닐로 갈아 놓으면 상쾌하다. 옷장을 싹 비우고 깨끗하게 차곡차곡 정리해 놓으면 장롱문을 열 때마다 뿌듯하기 그지없다. 그냥 일부러 한 번씩 괜히 서랍을 열어 보기도 한다.  냉장고 청소를 한 번씩 할 때면 꽉 차있는 냉장고보다 더 기분이 좋다. 미니멀 라이프를 외치며 하나씩 덜어내고 텅 빈 거실이 오히려 맘에 든다. 


잘 비워야 잘 채울 수 있다. 

비워야 할 것은 비운다고 비웠는데 제대로 비워지지 않아서 덕지덕지 쓰레기가 남아있다면 다 채우고 났을 때 아마 이전의 오물과 섞여 있지 않을까. 


내 인생에서 버리고 싶은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나는 지난날 겪었던 관계의 아픔, 어그러진 관계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미련함을 버리고 싶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었는지 알지도 못하는 그 실타래는 내가 아무리 풀어보려 애써봤자 풀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이곳저곳에서 주워들은 긍정적인 이야기들과 새로운 관계에서 배우는 관계의 미학을 통해 깨닫는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임을.


남녀관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사람과의 관계, 친구와 우정, 선후배의 관심과 애정에서 그릇된 기대와 넘겨짚은 생각들이 만들어 낸 일그러진 그림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안타깝다. 딱 그때의 그 기억과 그 시간만 도려내고 싶다. 더 이야기가 깊어지기 전에 마쳐야겠다.


그런데 정말 버리고 싶은 건 내 몸의 지방들이다. 

웃자,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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