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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y 08. 2022

용이 되기 위해 용을 쓴다.

좌절보단 오기로. 



용을 쓰다 - 힘(용) 들어 괴로워하는 것을 억지로 참는다는 것



며칠 째, 체기가 있다.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고 잘 먹히지도 않는다. 


성장통이라는 게 이렇게 힘든 건가. 


아기가 태어나면 3개월, 6개월, 9개월 단위로 성장통을 심하게 앓는다. 

그야말로 '용'을 쓴다. 그렇게 용을 쓴 덕에 아이가 쑥 자라고 그 시기를 '급성장기'로 부른다. 

오죽하면 '급' 이란 단어가 붙었을까?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뜻은 인생에 태어나서 자라면서 다 겪으면서 시작되는 말인가 보다. 


인생이 순탄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도 순탄하기만 하면 얼마나 재미없을까 생각도 한다. 

그렇지만, 

순탄하지 않은 시간을 만날 땐 나를 요목조목 뜯어보길 시작한다. 


내가 어디가 못났지?
대체 어디가 부족한 거지?
욕심이 너무 많은가?

나를 마구 해체하기 시작하면서 단점만 쭉 늘어놓는다. 

이럴 때는 장점은 어디 갔는지 하나도 안 보이고 단점만 보인다. 

비교대상만 옆에다 데려다 놓고 화도 냈다가 한숨도 쉬었다가 억울하다 소리도 쳤다가를 반복한다. 

덕분에 나는 쭈그리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지금이 딱 그렇다.



 

며칠 전 별이가 학교에서 지난 텀까지 진행된 swimmimg award에서 수상을 했다.

우리 아이들은 공립학교를 다닌다. 4학기로 나눠진 남아공 공립학교는 (사립학교엔 3학기도 있다) 여름 시즌에만 수영을 한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에는 수영 GALA 가 있다. 

별이는 수영을 할 줄 몰랐는데, 이곳 Gym에서 아빠에게 수영을 배웠다. 

그리고 학교 수영팀에 발탁이 되어 수영선수로 활동 중이다.

엄청나게 잘하는 게 아니고, 다른 애들처럼 수영 레슨을 시키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냥 하는 만큼만 한다.

수영은 체력 싸움인데 성장할수록 힘이 딸리는 게 눈에 보인다.

체력이 부족한 게 확연히 느껴지는 별이는 스스로도 본인 체력이 딸린다며 속상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swimmimg award Green bagde와 상장을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기특하다. 

그날 모인 수상자들은 Silver, Gold 그리고 작고 큰 트로피까지 가져간 선수가 많았다. 

심지어 트로피 각 부문을 다 쓸어간 학생도 있었다. 

집에 오는 길에 잘했다 칭찬해주었지만 입이 댓발 나온 별이는 작은 트로피 하나도 받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지 속상한 표정을 감추질 못했다. 


별아, 너 잘한 거야. 너는 다른 애들처럼 수영 레슨도 안 받았는데
여기까지 왔잖아. 그냥 상장도 아니고 그린 배지까지 받았잖아.
너무 잘했어!

알아요. 


칭찬 멘트를 날렸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오는 대답은 퉁명스러웠다. 자존심 상했구나. 아이를 12년간 키워보니 몇 마디만 들어도 아이 기분이 어떤지 파악이 된다. 


나는 남편에게 "쟤는 누굴 닮아서 저렇게 욕심이 많아? 다 잘해야 되나 봐."라고 말해놓고, 못내 속이 찔렸다. 

'날 닮았지 누굴 닮았겠어.'라고 생각했지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이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 닮았지." 


반박할 수 없었다. 

얼마 전 전교 Top 10 안에 들었다고 뛸 듯이 기뻐하며 집으로 온 별이의 상기된 표정에 행복이 가득했다.

외국학교에서 약 200명 중 Top 10에 전교 2등이라니 놀라웠다.  별이는 뭘 해도 중간 이상은 해야 하고, 뭘 맡으면 이왕이면 제대로 해야 되는 내 성미를 닮은 거다. 그런데 또 뭘 할 줄 알면 중간까지만 하고 끝까지 정복하지 못하는 점까지 닮았다. 그래서 더 속상하다. 


나는 어른이 된 지금은 어린 시절 같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 그 장벽을 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며 산다. '용' 쓰는 그런 삶 말이다. 

덕분에 그런 용을 쓰다가 한계를 만나면 속이 뒤틀린다. 

욕심이 많은 게 맞다. 

툴툴 털고 다시 일어나고 싶지만 잘 안될 땐 이렇게 타닥타닥 글로 풀어본다. 

그럼 한결 나아지기 때문이다. 


둘 곳 없는 마음은 오늘 여기 기록으로 남긴다. 

용이 되어서 다시 이 글을 열어보면 피식 웃음이 날 것 같다. 

그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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