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OO한 느낌으로 만들어줘요!...네?..

정부지원사업 PPT 제작기. 내용을 시각적으로! 1편 초안 잡기

by 쭈미

가끔 잡코리아 채용 공고에 'PPT 디자이너'라는 직무가 뜨는 것을 보면서

'PPT만 만든다고? 하루종일?' 생각했었는데.

그 직무를 내가 수행하고 있다.


스타트업 디자이너의 숙명인지, 어느새 제안서와 IR 덱 디자인을 붙드는 시간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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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정부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회사 덕분에 PPT는 마치 생명줄 같았다.

투자를 받거나 지원금을 따내려면 텍스트만 잔뜩 있는 밋밋한 장표로는 심사위원들을 이해 시킬 수도 없기에, '잘.만.든.' PPT가 필요했다.

그 덕분에 정갈한 PPT를 만드는 데 모든 신경을 쓰게 됐다.


근데 문제는.

PPT작업이라는 게 생각처럼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 사업지원서를 냈을 때랑 사업을 진행하는 현재는 내용이 많이 달라져서 새롭게 PPT 구성이 필요한데 대표님은 '새롭게 만들건 거의 없을거야' 라는 쿨내 진동하는 반응을 보였다.


(새롭게 만들게 없다뇨... 전 지금 영혼을 갈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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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용한 구글 PPT는 협업하기는 좋은데 UI가 영 뻣뻣한 느낌이었다.

피그마의 자유분방함에 익숙해진 나는 결국 피그마 슬라이드를 열어 다시 PPT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Frame 1000005113.jpg 노란 글씨가 그래픽 필요 부분

아니, 도대체 뭘 만들라는거지...?

페이지에 들어갈 내용 초안을 다른 팀원이 잡아두고 이후에 내용을 들여다보니 멘붕 그 자체였다.

그래픽이 필요한 부분은 '그래픽 필요' 표시만 되어 있고, 무슨 내용을 넣어야 하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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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당황스러워 보였는지, 대표는 목차를 하나씩 짚어가며 '목차에 맞춰서 20장만 만들자'라고 했다.

그 말에 한 시름 놓았지만, 결국 그 속 내용은 여전히 없었다.

'결국 내가 알아서 채워 넣으라는건가...?' 하는 생각에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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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었던 부분은 갓 태어난 회사였기에 비즈니스 모델을 함께 기획해왔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고 있었다.

일전에 제출했던 사업계획서부터 지난 4개월의 흔적을 회의록, 슬랙 기록, 팀원들의 업무 일지를 뒤져가며

우리의 큰 그림과 작은 단기 목표들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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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목차에 맞게 20페이지를 만들고, 얼른 피드백을 요청했다.

근데 피드백을 받으면 받을수록 답답함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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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추진 일정 : 로드맵 형식, 간트 차트 삽입, 주요 작업 항목 5~6개'

와 같은 추상적인 내용만 있었기 때문.

대체 무슨 작업 항목을 말하는 건지, 4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든 것을 찾아서 정리해야했다.

이럴거면 기획자는 왜 있는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만,

'성장'이라는 말에 묵묵히 작업을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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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수정러

초안을 완성하고 피드백을 재요청했지만 컨펌은 계속 미뤄졌다.

'일단 만들고 고치자'라는 마음으로 계속 진행을 했다.

초안을 완성하는 데에는 하루채 걸리지 않았다. 사실 내용이 없어서 비교적 쉽게 완성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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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장표는 폰트의 위계질서와 도표가 들어갈 부분만 커다랗게 두었다.


4일만에 받은 피드백은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

'XX페이지에 OO한 내용을 넣고 싶어요. 내용은 아직 생각 못했는데, %%한 뉘앙스면 좋겠어요.'

추상의 끝판왕이었다.


그럴때마다 내 표정은 진지해지고,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라는 걱정어린 말에

'네 이해했어요. 어떻게 구성할지 생각중이었어요!'

라고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나름 안심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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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하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주어진 일을 해내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든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내가 남았다.

제출기한은 이틀이 남았는데 아직 레이아웃만 잡고 있어 마음이 초조했다.

멋진 PPT를 만들고 싶었는데, 잘될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어쩌면 '멋진PPT'를 단순히 예쁜 장표 라고 생각해서 더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있을 수도 있다.

추상적인 내용들을 구체적인 시각 정보로 변환해야하는 PPT 디자이너로 임해보자 라는 생각에

피드백에 대한 답답함도 조금은 나아졌다.


오늘도 나는 모호한 요구사항 속에서 진짜 의도를 파악하고

내용을 찾아 재구성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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