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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Nov 18. 2024

나이 듦은 슬픔이더라

커피 사탕인 줄 알고 사 온 게 계피 사탕이네

언니야 톡 좀 똑띠 읽어라 내용을 쫌 보라고!

자매님들 단톡방 대화창에 엉뚱한 대답을 하는 내게 동생이 일침을 준다.


속독하는 버릇이 있어 책을 읽다가 지겨운 부분은 빨리 읽고 지나간다.

한창 책 읽기를 좋아하던 중학교부터 시작된 버릇이다. 지금도 긴 글을 읽을 때 그 버릇은 여전하다.

단톡방에 올라온 여러 글들을 스크롤해서 읽다 보면 내용을 제대로 이해 못 하던 부분속독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단체톡 내용은 물론 많은 양의 글 읽기는 비단 속독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이 들어 글 읽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

문서로 된 것들은 좀체 이해하기가 어렵다. 길게 쓰인 글을 읽다 보면 앞 뒤 문장이 연결이 되지 않아 

두세 번 반복해서 읽어야 그제야 글의 맥락을 알게 된다. 

일을 할 때도 새롭게 업로드되어 공지되는 사항들은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야 이해되었고 문서 작성 후 메일을 보내면 다시 전화로 수정 요청을 종종 받곤 했다. 


숫자라도 읽을라치면 손가락을 하나하나 으며 일, 십, 백, 천, 만 이러고 읽는다.

수리력이 부족한 내게는 나이 들어 숫자를 읽고 계산하기는 성냥개비 열개씩 묶어 계산하던 국민학교 1학년때 배우던 어려웠던 산수 같다.

숫자를 읽지도 못하고 계산도 힘들지만 나이계산이 더욱이 그렇다.

년생이다 그러머릿속이 깜깜하게 암전 되어 계산기를 두드려야만 나이 계산이 가능하다.  

가끔 로그인하는 쇼핑 사이트 비번 찾기는 일상다반사이고 현관 비밀번호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을 때는 잦은 음주로 인한 알콜성 치매인가? 적지 않은 나이이다 보니 치매를 걱정하기도 한다.


듣는 것도 그렇다. 귀가 잘 안 들리는 것도 아닌데 대화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잘 듣지 못한 말은 대충 어림짐작으로 듣고 넘긴다. 그래서 대화중 많이 사용되는 말이 뭐라고?이다.

말귀가 어두워진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말의 구분이 안 되고 긴 상담내용이나 대화나 통화를 길게 하다 보면 내용들은 기억에 없다.

듣는 게 문제인지 기억의 문제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남편이 휴대폰 사용법을 계속해서 물어볼 때마다 목소리가 솔 톤이 된다. 못내 답답하기도 하다.

남편은 몇 년 전부터 상담사와의 통화를 어려워했다.

말이 빨라 알아듣기가 힘들다고 그럴 때마다 자꾸 휴대폰을 넘긴다. 휴대폰을 넘겨받아 물음에 내가 답하면  본인 확인을 해야 한다며 본인을 다시 바꾸라고 한다.

얼마 전 퇴사 후 내 의료보험이 지역의료보험으로 바뀌게 되어 남편 이름으로 지로영수증이 도착하였다.

자동이체를 신청하는 방법이 지로에 설명되어 있었지만 텍스트로는 이해가 안 되어 상담사와 통화 연결을 하던 중 남편이 같이 듣자고 스피커로 통화를 시작하였다. 


"뭐래?" 하고 남편이 묻는다. 역시 상담사의 말을 알아듣질 못했나 보다. 

자동이체 날짜를 정하라는 내용이었다. 남편에게 "의료 보험료 이체날짜를 정하래" 

 "그럼 며칠로 할까" 그러던 중 스피커를 밖으로 "두 분이서 대화하지 마세요"라고 한다.

"죄송합니다 "정중히 사과한 남편은 나의 무언의 손짓에 자동이체일을 결정하였다.


최근 눈에 띄게 심해진 나의 난독 증상은 치킨 주문을 하고서 엉뚱한 치킨을 주문한 걸 인지하지 못하고

맛이 있네 없네 얘길 하다가 "어 왜 이게 배달 왔지?" 하며 그때서야 잘못된 주문을 알게 된다.

언젠가 아홉 살 많던 아는 언니가 "나 늙나 봐" 하면서 커피 사탕인 줄 알고 사 온 게 계피 사탕이 더라며

슬퍼하던 그 말이 요즘 종종 생각난다.


자동차 리모컨을 누르며 티비가 안 켜진다고 하던 남편도 계피사탕을 사 와 슬퍼하던 그 언니처럼 나이가 들어가는 우리는 점점 인지력이 떨어지며 신체적 기능을 잃어가면서 서툴어지며 변화되어 간다.


나이 듦은!

청춘이었던 내가!

중년으로 변해가는 나를!

순순히 받아들여하는 슬픔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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