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그리고
무관심한 것

by 로마

새해가 되면서 문득, 나는 요즘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물음이 생겼다.


20대 초반 염세적이던 암울한 시기에 읽었던 책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 단편소설에서 천사 미하일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갑작스럽던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에 대한 물음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돼 물어본다.


한 해가 새로이 시작되었으니 지금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되는 걸까?




2024년 마지막날 항공기 사고를 보면서 주위를 둘러보고 안녕함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히 살아온 지난날들을 반성하게 되면서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갑작스러운 의문이 생긴 것이다.


살아오면서 나는 주위사람들에게 안녕을 묻는 안부전화라는 걸 거의 하지 않았다.

궁금하면 톡이나 문자를 가끔 보낼 뿐 전화라는 매개체를 사용하는 일이 거의 드물었다.

연락이 없다 함은 내의식의 흐름은 그저 잘 지내고 있겠지 한다.

그런 의식의 흐름이 누군가 어디를 간다 하면 일이 있어서 가겠지 하지 거길 왜 가는데 하고 더 이상 묻진 않는다. 주위사람이 '그 사람 거길 왜 간데?' 하고 물음 '몰라 일이 있어 가겠지' 한다.

상대방이 말하지 않으면 나는 구태여 더 묻거나 궁금해하지 않는다.

많은 궁금증은 의도치 않게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수도 있으니 적당한 범위 내에서만 묻는다.

그것이 가족도 친구도 형제마저도 그러하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로 이사를 갔을 때이다.

새로 이사 온 내게 인사를 건네며 가족 구성원을 궁금해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추측해하며 물어오던 말들이 무척 불편하고 힘들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건네는 물음은 내게 피해를 주는 것 같은 불편함이었다.

또 그러한 상황에 대면할까 봐 이후엔 시선이 마주칠까, 다시금 말을 걸어올까 봐 후다닥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타인에 대한 무엇이 그렇게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걸까?

왜? 무엇 때문에 선을 넘는 부분들까지 궁금해하며 알고 싶어 하는 걸까?


지나친 호기심과 선을 넘는 물음이 네게 피해를 준다고 느꼈던 나는

타인에 관한 궁금증을 가지지 않게 되었고 상대방이 말하지 않으면 더 이상 묻지 않게 되었다.


때론 '너는 왜 그렇게 무관심하냐?'라고 말하던 이들도 있었다.

내게 그렇게 말하던 그들은 내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나쁘다고 이야기한 걸까?

무관심한 내게 '너는 왜 너 밖에 모르냐?'는 또 다른 표현이었을까?

그렇다면 무관심하고 무심한 나는 이기적이어서? 아니면 개인적이어서 그러한 걸까?




어릴 때 명절이 되면 우리는 큰집으로 명절을 보내러 갔다.

우리 가족은 1남 4녀로 막내가 남동생이다.

딸이 많은 우리 집은 아버지가 아들을 얻자고 아들이 태어날 때까지 낳다가 보니 딸이 넷이나 되었다.

형제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오면 "1남 4녀요"하는 나의 대답 후

남자는 대를 이어야 한다는 남아선호가 심했던 그 시대 어른들이 "아이고, 줄줄이 딸이네"하고 뒤이어 따라오는 딸로 태어난 걸 아무렇지도 않게 나무라듯이 하던 말들을 듣기도 하였다.


남동생이 아기였던 해에 아버지는 큰집에 딸들 우리 자매들만 데리고 가셨다.

70년대 그 시절 우리 집은 차가 없었다.

기차역에서 내려 큰집까지 아버지는 우리를 앞세워서 걸으셨다.

아버지가 맨뒤에서 따라오시면서 딸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줄을 세워서 걸어가게 하노라면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픈 창피함에 혼자 뚝 떨어져 마치 남인 양 따로 걸어갔다.

이후에도 형제가 어떻게 되냐고 하면 딸이 많고 동생이 많다는 게 창피해서 둘째이지만 막내라고 속이곤 했다. 동생이 넷이나 되는 언니는 아무렇지 않게 가족관계를 말하였으나 나는 가족관계를 묻는 게 싫었다.


그때부터 그랬던 건지 내 성향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 내게 대해 묻을까 봐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외면하기도 했다. 관심이 어느 정도 선을 넘으면 내게 피해를 준다고 느껴져 나의 바운더리 안에서 항상 털을 곤두세우고 경계하듯 스스로 방어막을 치고 그 방어막은 또 다른 양상을 띠면서 내가 정한 선을 넘어오면 불쾌함을 겉으로 드러내며 화를 냈다. 그래서 남들이 내린 나의 평가는 차갑고 까칠한 사람이었다.


적당한 선을 원했던 나는 나의 방어기제로 타인에 대해 무관심해졌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무심한 사람이 되었다.




어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생일이었다.

여자친구와 생일을 보내는 아들에게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오후쯤 막내 여동생이 아들하고 통화는 했냐고 물어오길래 톡을 보냈다고 했다.

아들생일에 전화한 통 안 하는 엄마가 어디 있냐는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 나는 여전히 무심한 엄마였다.

오후 늦게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생일을 보내고 있는 아들의 생일날의 일상을 궁금해하며 통화를 길게 했다.


나는 이제 무심함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된 거 같다.

생각만 하고 말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은 영영 모르고 떠날 수도 있으니 의식의 흐름대로 잘 지내고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고 이제는 안부를 궁금해하고 일상을 물어야겠다.


우린 말한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말하지 않고 알아달라고 한다면 그건 욕심이라고...


<사진 출판사 책 표지분 사용>